보건의료가 서 있는 자리와 미래는?
월러스타인은 자본주의의 전개로 인한 결과와 변화의 하나로 민주화를 들고
있다. 그리고 민주화는 1991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의 혼란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릴 것이라 하
고 있다. 그 이유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주화란 우선적으로 세가지에 대한 평등권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즉 합당한 소득(직업 그리고 나중에는 연금), 자녀를 위한 교육
기회 그리고 적절한 의료시설이다. 민주화가 진행되면 될 수록 사람들은 이
세가지를 누리기를 주장할 뿐 아니라 각각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최저선을
정기적으로 높일 것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 요구수준에서 이 세
가지를 누린다는 것은 러시아, 중국,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부국들에서조
차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일이다.”(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p34)
그리하여 그는 실제로 모든 사람이 위와 같은 민주적인 요구를 더 많이 누
리는 유일한 길은 오늘날 우리가 지닌 세계자원의 분배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를 놓고 향후 25-50년 동안 긴 정치토론
이 벌어질 것이며, 이 토론은 전 세계적 정치투쟁이 될 것이라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저명한 사회학자의 말은 작금 우리사회의 현실에서도 그대로 드
러난다. 건강보험 재정파탄, 공교육의 위기, 연금개혁 등 우리 사회에서 정
치적 쟁점으로 드러난 사안들이 위와 연관된 것이다. 이 사안을 두고 지금
우리 사회는 일상적인 정치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투쟁의 양상은 격렬하고
폭발적으로 전개되기도 하고, 개별적인 수준의 불만 토로에서부터 조직적이
고 집단적인 흐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보건의료 부문만을 놓고 보더라도 작년에 의약분업 실시과정과 올해의 건강
보험 재정파탄(사실 이는 몇 년전부터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에 이르기
까지 전 사회적 관심과 흐름의 가운데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월러스타인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 사회 보건의료의 체계가 형성된 이래 처음으로 맞닥뜨
린 위기의 시기이자 또한 이행의 시기인 것이다. 작년의 의사 폐·파업과정
에서 의약분업 실시를 두고 누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는 해방이후 50년 동안 형성되어온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공급체계
와 구조, 경향이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또
한 1977년 실시 시작 이후 1989년의 전국민 확대 실시로 인해 20여년동안
형성되어온 의료보험제도가 이제는 보건의료공급자, 그것의 실질적인 주체
인 민중, 이들을 매개하는 국가차원에서조차 아무도 만족하거나 각각의 요
구들을 충족시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보건의료
의 변화를 둘러싼 ‘진통’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진통’은 해방 이후 48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기까지 3년
동안에도 있었다. 당시 의료계에는 해방이후 보건의료의 변화방향을 둘러싸
고 대립이 있었는데, ‘일제잔재의 청산’ ‘자주적인 의료체계의 건설’ ‘의료
의 사회화’를 지향하는 세력과 ‘민간위주 보건의료 공급체계’ ‘전문화 강화’
‘미국식 의료’ 등을 지향하는 세력이 존재하였다.(미군정기의 우리나라 의료
제도. 신좌섭. Healthcare Review. 2001 여름호) 결국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전자의 지향은 좌절되고 후자의 지향과 요구대로 한국의 보건의료는 형성되
고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는 77년 의료보험제
도가 실시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국가의 방임’속에서 자유롭게 의료공급자
의 요구와 바램대로 자기 모습을 갖춰나가게 되었다. 결국 우리나라 보건의
료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민간위주성’ ‘대형병원으로의 자원 집중’
‘과도한 전문화 경향’ 등은 이때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이 90년대 들어 의료공급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면
서, 또한 의료보험제도라는 사회적 규제가 전국적, 전국민적으로 제도화되
게 되면서 이제는 의료공급자 모두를 만족시켜 줄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그래서 의료공급자의 일부는 그 불만족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의료보
험제도라는 ‘사회적 규제’의 강제에 있다고 하면서 이를 ‘의료사회주의’라고
규정짓고 이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장하기까지에 이르렀으며, 아울러
의약분업 또한 의사와 약사의 ‘전문적 역할’제고라는 측면보다, 자신의 진
료의 자율성(의사들의 주장에 의하면 ‘의권’)을 침해하는 제도로 인식하기
까지 하고, 그것의 대안으로 ‘선택분업’을 내걸기도 한다. 말 그대로 그들
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싶은데 현재의 의료보험과 의료제도는 이를 제
한하고, 억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의 원천으로 이들은 ‘시장’을
동경하며, 그러한 시장의 천국인 미국식 의료를 자신의 이상향으로 삼고 있
기도 하다. 물론 이를 공식적으로 천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의 부작용 또한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시장’에서 자유로운 것은 자신이 아니
라 ‘자본’임을 본능적, 체험적으로 항상 겪고 있다. 개업하고 있는 의사들
이 평소 만날 때 가장 먼저 많이 하는 대화가 ‘병원의 경영과 운영’쉽게 말
하면 ‘환자 많이 보느냐?’라는 질문이다.(이 질문은 사적인 자리에서 나에
게도 제일 많이 물어보는 말이다. 물론 나에게는 금기시된 질문 중의 하나
이다. 이유가 뭘까?)
민중의 입장에서도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구조는 불만족의 대상이다.
‘대기 3시간 진료 3분’이라는 말은 이미 일반화되었으며, 의료보험제도도
지속적으로 부담은 늘어나는데 그것의 포괄범위나 혜택은 나아지지 않으니
여전히 병원비는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형성된 민주화와 사회구조의 변화
에 대한 열망은 자연스럽게 삶의 질과 연관된 부문에까지 확장되어 그것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현 제도와 정책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해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 대중운동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은 그것의 전개과정과 관점에 대
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설립 준비기부터 주요하게 ‘사회개혁’을 요구해
왔고, 그 중의 하나로 보건의료개혁은 꾸준히 제기해 오다가 올해에는 ‘공
공의료 강화’라는 구호로 자기가 바라는 보건의료의 미래상을 추상적이나
마 제출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러한 미래상과 현실과의 거리는 가
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일상화되고 있는 구조조
정과 불안정 노동의 확대는 의료와 복지에 대한 요구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럼 국가는? 사실 우리사회의 보건의료 구조에서 국가의 역할은 거의 제
로에 가깝다. 단지 있었다면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전국의 무의촌을
없애야 한다며 전국의 군단위 별로 보건소를 짓고, 읍·면단위로 보건지소
를 짓고, 주요한 지역에 의료원을 지은게 거의 전부이다. 이것이 의료공급
체계에서 국가가 해온 역할의 전부이다. 이때 만들어진 공공의료기관이 현
재까지도 유일하다. 세계 어느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
국사회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하다 못해 자본과 시장의
천국인 미국도 30%를 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10%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기 시작한다. ‘방임’에서 이
른바 ‘개입’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개입’의 방향은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것처럼 보인다.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의 실시를 통하여 그것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일지라도 노동자·민중의 의료 요구를 충족시
켜주려 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온갖 규제의 철폐로 본격적으로 ‘자본’
이 보건의료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 준다. 이 시기부터 ‘의
료자본’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의사 개인이 자수성가(?)하
여 ‘병원자본’을 형성하였다면 보다 본격적으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보건의료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보건의료부문에 80
년대 말부터 대형화·전문화·고급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호텔같은
병원’을 내건 모 재벌병원이 그것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의 실시는 노동자·민중의 의료접근권을
향상시키는 효과(그나마 반쪽짜리 효과이다)도 있지만, 자본과 시장의 입
장에서 보면 ‘수요’를 늘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개입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 ‘무질서한 시장을 질서
있는 시장’이란 구호하에 보다 구체적이고 중·장기전망하에 계획적으로
시행된다.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은 그 이전 정권부터 실시하기로 했던
사안이지만 김대중 정부 들어서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 것은 이제 보건의
료구조의 성격 자체가 ‘개입’이 없이는 내적 모순을 해결해 나가지 못하는
‘곪을 대로 곪아가는’ 형국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입
은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비용을 마련하는 게 여의치 않은
한국사회 물질적·경제적 구조와 토대 때문에 많은 혼란과 그 나마 그 계
획자체도 많은 굴절을 겪어 나간다. 민중도, 의료공급자도, 국가도 아무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결국 앞에서 언급한 현재 보건의료에서 겪고 있는 ‘진통’이 순산으로 이어
질지, 지속적인 고통을 겪다가 결국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
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비용의 마련 여부이며, 또한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정치적 힘의 역관계’라는 점이다.
자본과 노동이 그 비용을 나누어 부담하여(그것이 조세의 형태이든 사회
보험의 형태이든 국가의 관장하에) 형성되었던 ‘복지국가’는 자본축적이
위기를 겪음에 따라 그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하여
노동자·민중의 생활, 삶의 질과 관련한 요구마저 뒤로 후퇴하는 것는 아
니다. ‘복지국가의 위기’는 결국 그 구조 및 체제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적 구조의 ‘압축성장’처럼 의료 및 사회복지영
역에서도 ‘압축성장’하여 ‘복지국가’라는 단계를 건너 뛰어 ‘포스트 복지
국가’의 상황으로 바로 치달았으며, 국가의 개입전략도 결국 서구유럽에
서 일어나고 있는 복지국가의 후퇴(대부분 ‘개혁’이란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것의 정책과 거의 동일하다. 다만 우리 사회는 ‘질서와 합리화,
‘근대’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한 나라의 제1
정당이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이러한 전략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딱지
붙이는 무식함, 알맹이 없는 화려한 겉포장을 ‘중산층서민을 위한 정책’
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지금 현재 ‘현실 가능한’ 전략이라고 말하는 합
리성,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점증하는 요구와 그 요구를 얻기 위한 싸
움의 치열함에 이르기까지 ‘부도난 건강보험’처럼 우리 사회의 보건의료
가 어디로 갈지 혼돈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월러
스타인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해보면,
“카오스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나오겠지만,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 될 것이다. 다르긴 하지만 반드시 나으리라고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p54)
그래도 지금 그러나 단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대중운동·
사회운동이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현재의 보건의료’가 ‘미래’가 된다면
보다 나아지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다. 이것이 우리 운동의 ‘도덕적 책무’라고 하는 것을 ‘도덕주의
자’라고 하기엔 우리 보건의료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고,
우리 운동이 나아갈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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