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퍼를 들이받은 동아시아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98/10
필립 S. 골럽
1997-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전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발전 모델의 붕괴는 “19세기 말 이래 세계자본주의의 두 번째 위대한 시
기”(1)-안정된 성장, 자유무역 및 세계경제 통합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동아시아의 기적은 세계화의 초석이며, 미국식 시장자유화와 탈규제의
효율성 및 힘을 보여주는 독특한 예로 간주되어졌다.
아시아의 불경기로의 급격한 후퇴는 이러한 유토피아적 시각을 심대하게 훼손
하였다. 거대하고 급격한 자본유출(2)이 야기한 아시아 위기는 규제되지 않는
집합적 시장행태의 파괴성과 기본적 비합리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년이 조
금 지나지 않아 위기는 아시아 신흥국가들과 전염병이 걸린 러시아, 동구, 남미
의 사회, 경제를 좌초시켰으며, 국제 상품 시장에서 디플레이션을 확대시켰다.
특히, 위기는 신흥국가들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들이 규제되지 않는 국제금융
시장의 폭발성에 직면했을 때, 노출시켰다. 산업화된 아시아 신흥국가들은 금융
시장의 성급하고 사려깊지 않은 시장개방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국제통화기
금이 15년 전에 제안한 대로, 아시아 신흥국가들은 금융에 대한 탈규제 및 자본
자유화를 선호했는지도 모른다(비록 산업분문에서의 통제경제정책(dirigism)이
금융자유화보다 동아시아의 이전 성공을 잘 설명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기는 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발전경로를 뛰어넘으면서(3) 일련의 붕괴 조건이 생겨났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경제, 사회적 비극을 일으켰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전통적 견해는 근대성을 향한 아시아라는 탄환의 후
퇴를 목격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하바드 대학의 제프리 삭스는 그러므로 위
기를 “예견하기는 힘들지만 종종 급속한 경제성장을 야기하는 금융의 불안정성
이 반복되는 패턴의 일부”(4)라고 보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이와 같은 전후 최대의 금융위기를 “시장 자본주
의 및 법이 지배하는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5)에서 중요하
지만 불행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아시아적 “발전모델”을 비
난하고 있다.
위기는 “소위 일본 및 동아시아 발전모델이 주었던 신뢰를 파괴시켰다”(6)고
한다. -그리스펀이 말하기를, 혁신과 적응이라는 냉혹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와 대비하여, 동아시아는 케케묵은 산업보호주의와 완전한 탈규제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무능하며 의지가 없기에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
다. “동아시아의 현 위기는 다음과 같은 데에 그 근원이 있다. 즉, 일부 동아시
아 국가들이 상당한 부분을 산출하는 데에는 정부 지도에 따르면서도 세계 경쟁
가운데 자국 시장을 개방하려고 애를 썼다.”(7) 그 함의는 명백하다. 만약 이
나라들이 그들의 시장을 신자유주의 원칙 및 지배 이데올로기에 부합하게 완전
히 탈규제하였다면, 그들은 위기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적어도 충
격을 감소시켰을 것이다.
이 밑 빠진 가정은 현재 아시아에 대한 서방정책을 안내하고 있다. 97년 후반
및 98년 초반에 발표된 IMF 대출 계획에 의거해 아시아는 위기에 영향받은 나라
들이 자국 경제를 더욱 개방하여야 하고, 국제 투자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하여
야 하며, 금융시장에 대해서 탈규제화하여야 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도입하
며, 산업에 대한 간접적인 보조금 및 석유, 난방연료, 식료품 등 생필품에 대한
직접적 보조금을 철폐할 것을 요구받았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대국 11위인 남한
은 사회적 파장과 관련없이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완화 및 재벌해체 압력을 받고
있고, 금융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및 태국은 국제가
격에 맞도록 생필품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반면에 세
계 제2 경제대국이자 주요채권국인 일본은 고색창연한 보호주의를 포기하고 마
구잡이식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미덕을 받아들이라는 미국의 끈질긴 압력 아래
자국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동북아 국가들이 자신들의 항복 문서 조항을 협상할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남한과 일본은 전체적으로는 아닐지라도 구조개혁-2차 대전 이래로 수립된 그들
의 제도적 관습 및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사회적 규율에 대한 대가인 안정적 노
동시장)에 대한 위협으로 인지되고 있는-에 대한 이러한 기술적 요구의 대부분
에 대해서 저항해 왔다. 그들의 특유한 발전 궤적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 대
한 저항을 설명해 주고, 많은 면에서 사회적으로 중화된 유럽대륙의 전후 자본
주의와 유사하다. 또한, 역사적 이유 때문에, 유럽이나 일본 모두 미국식 자유
방임자본주의 채택이 암시하는 사회적 긴장과 불평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면에서 아무리 심각하게 실수를 했다 할지라도(사회적 위계의 고정, 완
고한 형식주의 및 가부장제), 일본의 전후 발전모델은 부정할 수 없는 성공사례
였다. 1980년대 중반에 관한 미국문헌이 과장됐을지는 모르지만 일본이 세계를
정복하는 도상에 있다고 하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산업정책, 국가 및 주요 산
업, 은행과의 교호(interweaving)를 선호하는 선택적 국가간섭 및 보호로 특징
지워지는- 일본의 보호주의는 결국 일본을 독립적, 경제적, 기술적 힘과 상대적
으로 평등한 사회로 만들었다. 현재 일본에 대한 대다수 미국 비판자들은 아주
편리하게도 일본 모델이 19세기 미국과 독일의 산업관행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
실을 잊고 있는 듯하다.
일본 모델
산업에 있어서 근대성을 달성한 최초의 비유럽 국가로서 일본은 자연히 1960,
70년대 아시아의 신흥공업국의 모범이 되었고, 특히 남한과 대만의 경우에 그러
하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일본의 보호주의 관행을 따랐으며, 다른 동아시아 국
가들은 1980, 90년대에 그 경로를 따랐다. 신흥공업국 및 동남아시아에 대한 일
본의 직접투자의 거대한 흐름은 그 후의 예외적인 붐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본모델은 아시아 전후 발전에 있어서 특수한 도구였던 것이다.
이것은 연고주의, 정실자본주의 정책결정과정의 불투명성이 동아시아의 한 때
떠오르던 경제의 사망에 기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아시아 지
도자들에 의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떠들썩한 방어가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
화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 자체로서 작년 위기에 기여했다. 그러나,
보다 근저에 깔린 원인은 대규모 자본유출에 의해 움직이는 탈규제된 세계시장
의 폭력성과 비합리성에서 밝혀야 한다. 일본, 혹은 동아시아 공히 미국의 논자
들이 주장하듯이 현재 일어난 일에 대해서 주책임자가 아닌 것이다. 일본 대장
성 차관인 에이주케 사카키바라는 일본이 아니라 그 지역으로 자본이 과도하게
유입됐기 때문에 위기가 일어났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우리는 그가 주장하는 것
에 의하면 아시아 위기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
기”(8)를 목도하고 있다.
위기는 자율규제되는 자유시장 유토피아라는 전선을 후퇴시킬 수 있는 계기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사가 칼 폴라니가 그의 자유시장 태동사에서 주장
하듯이 “자율조정되는 시장은…어느 한 시기에도 사회의 인적, 물적 구성을 완
전히 제거하고는 존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을
육체적으로 파괴하고, 그의 환경을 황무지로 전화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9)
현재 아시아에서 진행중인 파괴를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일본은 깊고도
긴 경기후퇴 속에 있고, 남한은 파산으로 비틀거리고 있으며, 동남아시아는 공
중분해되고 있으며, 중국은 다음 차례다. 공황은 단지 제1단계일 뿐이다. 새로
운 금융 폭풍을 피해간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행성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
역은 매일매일 디플레이션이라는 끝이 안 보이는 나선형 터널로 떨어지고 있으
며, 그것은 냉혹하게 세계경제로 확대되고 있다.
평가절하에 의한 수출 증진에 의하여 이 지역의 회생이 가능할 것이라는 일반
적 주장은 논점을 벗어났다. 이 가정은 생산품이 포함하는 수입부품을 고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신용위기는 신용을 고갈시키며 무역을 위한 금융비용을 엄
청나게 과중하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10) 수출이 정체되거나 감소하
는 동안, 동아시아 원자재 및 부품 수입이 붕괴했다. 설혹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어디에다가 수출할 것인가? 통상정책이 무
례한 보호주의자 의회에 의하여 좌우되는 미국에다?
비극의 규모는 사회적 영역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억압의 소용돌이에 휘감겨
중산층은 프롤레타리아가 되고, 프롤레타리아는 극빈층이 되고 있다. 위기 후
동아시아 계층 구조는 기적이 일어났던 시대를 이루었던 봉건적 질서로 회귀할
것이다. 피라미드 말이다. 그 최고층에는 군대에 의하여 보호되는 대부호라는
한 줌밖에 안되는 계층이 있고, 그 밑바닥에는 제소리를 낼 수 없는 빈자들로
구성된 피라미드 구조로. 경제적 축소는 대부분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결여된
나라에 뒤따른다.
국제노동기구에 의하면, 인도네시아의 노동인구 중 40%가 위기 전에도 실업상
태였다고 한다. 태국에서는 수십만 노동자들이 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것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더욱이 사람들을 농촌으로 보내는 것
은 도시에 사는 자신의 친지인 노동자들에게 의존하게 하여 농촌 지역을 더 빈
곤화시킬 뿐이다.
이미 자신의 경제적 힘이 고갈되어 버린 나라에 대해 가혹한 정책을 부과함으
로써, 국제적인 금융기구들은 1930년대 초반의 자살 정책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
다. 만약 사람들이 1929년 공황을 완충시키기 위하여 엄청난 팽창정책을 사용했
었다면, 영국, 미국, 독일의 중앙은행은 신용을 더 축소시키지는 않았을 것이
다. 독일연방은행 총수 한스 루터의 말을 빌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후주
(1) David Hale, “The World Economy After the Russian Revolution, or Why
the 1990’s Could be the Second Great Age of Global Capitalism”, Kemper
Financial Services, Chicago, 1991.
(2) IMF와 국제결제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위기의 첫 6개월간 1천억 달러 이상
이 동남아시아와 남한에서 유출되었다.
(3)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동남아시아 각국의 경제는 단기 주식투자와 은
행대출의 유입을 생산적으로 흡수할 수 없었으며, 이는 결국 전통적인 투기
부문, 특히 부동산으로의 과잉투자로 귀결되었다. 그리하여 외부 유입은 상
당부분 거품에 기여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 폭발한 것이다. 90년대 초반
신흥 시장에 대한 전체 유입의 절반 이상 혹은 천5백억 달러가 단기 투자였
다.
(4) Steven Radelet and Jeffrey Sachs, “Asia’s 후주
(5) 앨런 그린스펀 98년 4월 2일 워싱턴 D.C. 미국편집인연합 연차총회 연설
(6) Donald K. Emmerson, “Americanizing Asia?”, Foreign Affairs, 77 (3),
May-June 1998.
(7) 그린스펀, 위의 글.
(8) 르몽드 98년 5월 12일자 세르쥬 마르띠
(9) 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Beacon Press, 1957, p3.
(10) “South Asia feels the chill”, Lemonde diplomatique, English Internet
edition, December 199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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