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위기와 21세기 대안 헤리클리버 강연회

지난 15일 서울대에서는 대학생신문사가 주최한 해리 클리버 교수의 강연회가 있었다.

텍사스 주립대 교수인 그는 이날 “신자유주의 위기와 21세기 대안들”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국제연대센터(PICIS)는 최근 사파티스타 운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대안의 운동’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 그의 강연을 정리하고,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그의 생각을 나눠갖고자 한다.

이 글은 국제연대센터의 강연회 참가자 중 한 사람이 작성한 것이다.

그의 강연은 신자유주의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시작됐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가 위기에 빠진 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기에 케인즈주의가 ‘대세’를 이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시작되고 케인즈주의가 더 이상 과거의 효용성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신자유주의는 득세하기 시작한다. 시장기구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전 지구를 자본의 천국으로 만들려는 신자유주의의 시도는 맨 처음 그렇게 시작한다.

위기는 어디서 왔는가? 혹은 누가 위기를 초래했는가?

해리 클리버는 대답한다.

케인즈주의는 20여 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을 노동만 하도록 내몰았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일터에 가고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 휴식한다. 사람들의 삶은 바로 이 ‘노동’을 기준으로 구성된다. 생활 속의 한 부분이 ‘노동’이 아니라 ‘노동’ 자체가 생활인 것이다. 물론 노동하지 않는 시간은 노동하지 않는 시간일 뿐이지, 다른 어떤 시간도 아니다.

60년대 후반, 20년에 이르는 ‘고된 노동’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다른 것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이 노동과 일에 묶여 있는 것을 거부했다. 클리버는 이를 ‘문화적 혁명’ 같은 것이라 했다. 시민권 운동, 학생운동, 반전운동, 여성운동, 그리고 제3세계에 대한 서방의 연대.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다른 것’을 찾으려 했던 노력의 산물이었다. 사람들은 단지 ‘휴식할 시간’을 바랬던 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 창조할 시간,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원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신좌파적 운동’이라 부르는 그 움직임들. 노동조합과 전위당과 그리고 공산주의를 위한 단 한번의 혁명만을 꿈꾸던 사람들에겐 왠지 낯설게 보였던 바로 그 운동들이 케인즈주의가 지배하던 60년대 말의 자본주의를 뒤흔들었다.

해리 클리버는 이런 운동들이 자본주의 위기를 발생시켰다고 설명한다. 위기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위기는 물론 이런 저런 ‘자본주의 자체의 메카니즘’에 의해서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저항의 힘이었다. 전세계적으로 거세게 불어왔던 운동의 물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지게 한 것이었다.

잠깐 꺼림직한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지게 한다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도 한국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 때문일텐데… 사람들의 저항이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다니. 그렇다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저항하지도 말고, 운동도 꿈꾸어선 안되는 것인가?

약간만 뒤바꿔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저항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결코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그저 착취하고, 때때로 필요할 땐 사람들에게 파이의 한 조각을 남겨주기도 하지만, 그 욕망을 허용하지는 못하는 체제라는 것. 사람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을 때 자본주의는 그들을 억압해 버리거나 혹은 자신이 위기에 빠져 버릴 뿐이라는 것.

클리버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신자유주의는 전세계적인 운동에 대한 전세계적 ‘반동’이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민중에게서 자본가로 부를 이전시켰다. 석유위기는 그 첫번째 예였다. 비싸져버린 석유를 사기 위해 지출한 소비자들의 돈은 석유수출국기구 OPEC으로 넘어갔고, 이 돈은 다시 유럽과 미국의 은행을 통해서 서구자본가들에게로 대출되었다. 물론 자본가들은 이 돈을 이용해 맘껏 돈을 벌었다.

외채위기는 그 두번째 예다. 80년대 초 남미에서 외채가 급증한 것은 미국이 이자율을 급격히 인상했기 때문이었다. 70년대 내내 미국 등 해외 자본을 도입해 경제건설을 추진하던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은 돈을 갚기 위해 또 다시 돈을 빌리는 악순환의 미로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IMF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댓가로 구제금융을 해주었고, 구조조정의 결과 노동자들의 임금은 줄어드는 대신, 모아진 잉여는 해외로 빠져나갔다. 결과적으로 수백억달러가 남미에서 국제은행시스템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외채로 인한 비슷한 경향은 90년대 멕시코 위기와 얼마전 아시아 위기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이렇게 각 나라를 빚에 시달리게 하고, 각국에 대한 자본의 통제를 강화시킨다. 자본은 항상 고이윤을 찾아 움직이며, 보다 현실적으로는 불안정한 나라에서 보다 안정적인 나라로 움직인다. 세계경제는 이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곳의 위기는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퍼지고, 급기야 전세계로 파급된다.

대안은 무엇인가?

다시 국가통제를 강화하고, 재규제화를 진행시킬 것인가? 하지만, 이런 신케인즈주의적 방책은 대안이 아니다. 이런 식은 이미 70년대 이전에 실패했다. 다른 걸 찾아야 한다. 우선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반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그래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통해서 대안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사람들간의 차이를 그 자체로서 존중하고 그러면서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 이것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

현실적으로 이런게 가능한가? 클리버는 사파티스타가 바로 그렇단다. 사파티스타는 멕시코 남부의 어느 정글 속에 있는 농민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 속에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일하고 함께 살 수 있는가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똑같게 만든 것이 아니라, 다름 자체를 인정하고 함께 어울릴 가능성을 실험했다. 사파티스타의 운동이 모든 저항운동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차이를 넘어서 연대를 펼쳐나가는 과정이다. 정글 속 농민들은 다른 게릴라 운동들과는 달리, 대안적 운동의 방식으로서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또한 세계의 다른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96년 사파티스타는 세계로부터 온 수천명의 사람들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논의했었다. 97년 스페인에선 이를 이어 회의가 계속됐다. 작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있었던 PGA는 이러한 그들의 노력을 계승했다. PGA는 올해 6월에도 전세계로부터 대장정을 시작하여 자유무역협정과 초국적기업에 대항한 싸움을 조직할 것이다.

해리 클리버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반박하거나 혹은 찬동할 마음은 없다. 난 단지 그의 주장을 심정적으로 수긍할 따름이다. 내가 보기에 클리버의 매력은 이론의 심오함에 있지 않다. 사파티스타 운동을 일군 치아파스 농민들의 삶에 천착한 그의 현실에 대한 성실함이 마음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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