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의 학살과 테러,

미 정부 책임있다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 마틴 맥클로린, 2/27

미국 정부가 과테말라에서 자행된 학살과 국가 테러를 지원하고 돕는 등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었음이, 2월 25일 발간된 “과테말라, 침묵의 기억”이라는 유엔의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아홉권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역사규명위원회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내전기간 동안 자행된 조직적인 고문과 학살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고 있다. 34년 동안의 내전은 1996년에야 종식되었으며, 20여 만명이 학살되었고, 대부분은 마야 인디언들이었다.

위원회는 독일의 법률가인 크리스챤 토무샤트와 두 명의 과테말라인(변호사 에드가 발셀스와 마야인 교사 오띨리아 룩스 꼬띠)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활동은 삼년전의 유엔 감시하 정전 협약의 조항들에 의거하고 있다. 비록 보고서가 미국 국제개발국의 부분적인 재정 지원을 받았으며, 미 정부측 인사들을 비롯, 학살에 연루된 어느 누구의 이름도 공개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밝혀낸 사실들은 과테말라와 미국에 대한 통렬한 고발에 다름 아니다.

위원회는 내전 당사자 9,200명 모두의 증언을 청취했고, 42,000명의 죽음과 관련한 상황들을 조사했다. 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살해된 93%는 과테말라 정부와 군부에 의한 인권 유린이 야기한 것이었으며, 반면 오직 3%만이 1996년 무장을 해제한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GNRU)의 좌익 게릴라들에 의한 것이었다. 4%는 누구의 책임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전 마야 마을들을 파괴시켜버린 학살들은 불성실한 진술의 소산이나 상상 속의 허구가 아니다. 과테말라 역사에 정말로 벌어졌던 일들인 것이다”라고 보고서는 말한다.

위원회는 “정부 최고위 당국자들은 인권 유린 사실들의 대부분을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명령하기까지 했다”고 결론짓는다. “군대의 명령 체계를 고려해 볼때, 정치적, 행정적 책임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린들에 대한 직접적 책임이 군부와 현정부의 최고위 인사들에까지 미친다.”

학살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었다: “목적이 모든 것을 정당화해준다고 믿으며, 군부와 정부 보안군은 맹목적으로 반공주의 투쟁을 밀고 나갔다.

법적 원칙이나, 가장 기초적인 민족적, 종교적 가치에 대한 그 어떤 고려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인간적 윤리의 외양마저도 완전히 벗어 던진 것이다.”

최악의 잔학행위는 1980년대 초에 벌어졌다. 에프레인 리오스 몽뜨 장군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였고, 로널드 레이건이 백악관에, 알렉산더 헤이그가 미 국무장관으로 있었다. 과테말라군은 거의 600회에 달하는 학살을 저질렀다. 소위 초토화 작전 중, 엘 끼체라는 한 주에서 고지 마야 인디언의 절반 이상을 학살했다.

크리스챤 토무샤트는, 1981년에서 1983년까지의 과테말라 정부정책을 “마야인들에 대한 학살”로 묘사했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약 83퍼센트는 마야 인디언들이었으며, 이크실이라는 한 마야 부족은 전체 마을의 70내지 90퍼센트를 파괴당했다.

토무샤트는 미국정부가 20년 이상 과테말라의 테러 행위들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정부와 기업들은 이 나라의 원시적이고 불공정한 경제 구조를 온존시키기 위해 강한 압력을 행사해왔다.”

또한 미국정부가, 당시 자행되었던 학살을 알고 있었으며, 인디언들에 대한 잔학행위를 고무시키기까지 했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많은 수의 인디언 여성들이 살해되기 전 강간당했으며, 게릴라 운동에 동조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에 대한 조직적인 고문도 있었다. 이런 행위들은 정부군을 비롯하여, 무장 경찰, 준군사 조직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미중앙정보국(CIA)은 “몇몇 불법적 작전들”을 지원했으며, 미 국방부의 아메리칸 군사학교(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있는 악명높은 훈련기관으로, 한 세대에 걸쳐 라틴 아메리카의 장교들에게 대게릴라 전술을 가르쳐 왔다)는 “무장 대치에 있어서의 인권 유린에 관한 주요한 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과테말라의 내전이 최고조에 달한 것과 때를 같이해서, 니카라과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반군이 결성되었고, 또한 엘 살바도르의 살인정권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 원조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동안 실제로 중앙 아메리카 전체가, 과테말라에서 파나마까지, 미국의 입김하에 반공주의 테러에 사로잡혀 있었다.

과테말라 시에서 있었던 보고서 발간 기념 집회에서 보고서의 요약이 읽혀지는 동안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에 대한 찬동을 표시하며 환호했다. 대부분은 내전 기간 동안 살해되거나 “사라진” 이들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몇몇은 “에프레인 리오스 몽뜨는 피노체트와 똑같은 자”라고 외치며 학살 책임자들의 이름 공개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정부 관리들과 군대 장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은 위원회로부터 보고서 사본을 받는 것조차 거부했다.

아르수는 최근 학살들이 초급 장교들의 지나친 열정에서 기인한 것이라 비난한 바 있다. 보고서는 특히 이러한 논점을 거부하고 있다. 토무샤트는 “초급 장교들이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행동했으며, 상관들의 명령을 받지 않고 저지른 월권 행위요, 실수였다는 변명은 우리 조사에 비추어볼때 근거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와 비슷한 조사를 진행했던 카톨릭 주교의 운명을 놓고 본다면, 이 보고서의 과테말라 군부와 정부에 대한 포괄적인 고발은 특별히 용기있는 것이었다. 조사를 시작한 며칠 후, 후안 호세 헤라르디 주교는 벽돌에 맞아 살해되었던 것이다. 살인자들은 아직 밝혀지지도, 처벌받지도 않고 있다.

과테말라 주재 미국 대사 도날드 플랜티는 학살과 국가 테러들에 미국이 연루되었다고 밝힌 보고서의 명확한 결론을 흐리려고 시도했다. “보고서가, 과테말라인들이 다른 과테말라인들에게 저지른 학대 행위들에 초점을 맞춘 것은 타당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내부적인 분쟁의 결과였다.”

“과테말라, 침묵의 기억” 보고서는 중미의 이 피압박국에 가해진 미 제국주의의 오랜 역사적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국제 테러리즘”과의 지구적 전쟁의 지도자라는 클린턴 정부의 주장에 대한 결정적인 반박이다. 오히려 워싱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라크의 무력한 민간인들을 폭격하고, 쿠르드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 같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납치하거나, 혹은 콩고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무자비한 독재자들을 훈련시키고 무기를 대어주는 등, 1980년대와 마찬가지로 국가 테러리즘의 지도적 전문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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