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언론이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언론의 탄압사례가 줄을 잇는다. 대학 곳곳에서 신문배포 중지 더 나아가 신문발행 중지가 자행되고 있다. 심지어 “소수 운동권 학생들의 입장을 싣는다”며 기자들을 모두 해임하고 신문사를 폐쇄시키는 몰상식한 일까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탄압사태 밑에는 대학언론을 학교의 홍보지로 인식하는 기능주의적 사고가 깔려있다. 대학종합평가제가 진행되면서 대학언론이 대학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당국의 대학언론 탄압은 단순히 일회적인데 머물지 않고 지속될 전망이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논리는 90년대 후반 들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대학언론의 위기의 본질을 외부에서 찾을 수만은 없다. 외적요인을 과도하게 강조할 경우 주체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거니와, 탄압 이전에 대학언론이 학교 안에서 대학인들로부터 외면당해 온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학언론은 90년대 들어 읽혀야 한다는 현실과 운동성을 담아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고심해 왔다. 하지만 대학사회에서 진보성과 대중성은 결코 분리해서 고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물론 읽혀야 한다는 현실을 고려해 기성 제도언론의 감각적 편집을 배워야 한다는 발상에 담겨있는 대학언론인들의 고민을 몰라서가 아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감성적 편집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언론에서 더 중요한 대중성의 잣대는 얼마나 대학인들에게 정확하고 올바른 현실인식을 보여주는가에 있다. 가령 우리가 80년대 대학언론에 대해 이데올로기가 과잉되어있다는 비판을 할 때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 과잉이 문제였다해서 탈이데올로기 담론이 마치 대중성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이데올로기 과잉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대학언론의 위기극복은 무엇보다 대학언론인들이 말 그대로 대학인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데서 찾아야 한다.
90년대 후반 대학인들에게 대학을 졸업한 뒤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단연 실업이다. 바로 그 대학인들의 구체적인 위기의식을 대학언론이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대학인들과 함께 숨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학언론 위기의 본질이 있다. 실업문제와 노동문제를 총체적으로 보고 이것이 오늘의 대학인들의 삶에 근본적인 규정력을 지니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짚어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나 언론개혁 등 대학언론들이 진지하게 제기할 수 있는사회적 의제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깔려 있다. 학내문제만 하더라도 제도권 중심의 강의 편성에 맞서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듣고 싶은 강의들을 조직적으로 요구하도록 대학언론이 학내 여론을 조성해야 하며 과도기적으로 학생회나 대학언론 중심의 제2대학 강좌를 마련해 새로운 대학문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강좌를 열고 토론마당을 마련해도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항변도 있다. 그러나 어려움이 전혀 없다면 누가 구태여 운동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현실적인 어려움, 현실적 장벽이 있기에 바로 운동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학생운동과 대학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오늘의 대학언론에 ‘지침’을 줄 수는 없다. 4월혁명 이후 40여년 동안 대학인들 은 언제나 스스로 토론을 통해 시대적 과제를 떠맡아왔다. 90년대말 오늘의 대학인들에게 그것이 한낱 전통만으로 남아있다면 이는 대학인만의 비극에 그치지 않을 터이다.
[필자: 손석춘]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