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IMF 이후 열악한 작업환경과 높은 노동강도는 노동자를 더욱 갉아먹고 있다. 아래의 기사를 보면 이황화탄소가 아닐 뿐, 원진레이온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작업환경측정이나 특수건강검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민주노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검진을 해도 노동과정을 모르는 전문가들이 마음대로 판정을 하기 일쑤이다. 그나마 사회적 문제로 부각이 되어야만 겨우 양심적인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다.
이상관 산재노동자의 자살에서 보이듯이 이 사회의 산업안전 관련 법과 제도는 무용지물일 뿐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이 많다. 현장에서 노동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투쟁하고 바꿔내지 않는 한 법과 제도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2 원진레이온 부르는
구미공단 화섬업체들
실을 짤 때 진동하는 요란한 기계소리와 화학물질이 반응할 때 내뿜는 매캐한 냄새.유기용제를 다루는 경북 구미공단의 화학섬유 제조업체는 매일 이런 소리와 냄새로 꽉 찬다. 이곳 노동자들은 귀마개와 마스크 따위의 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에 나서지만 악취와 소음 공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겉치레 환경보호시설이 있고 화학물질의 독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괜찮은 게 아닙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병들어 갑니다.’
10년 가까이 직업성 피부병에 시달려 온 것으로 밝혀진 공단 안 동국합섬(주) 제2공장 노동자들은 질환의 주범으로 열악한 작업환경을 꼽는다. 낡은 공기정화 시설이 화학물질이 반응할 때 나오는 가스를 제때 환기시키지 못해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는 것이다. (중략)
노동자들은 지금의 환기시설도 용량이 부족하거나 낡은 것이 많아 무용지물일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김아무개(32) 씨는 ‘현재의 공조시설로는 화학물질이 탈 때 내뿜는 유독가스와 이와 뒤섞인 수증기 등을 제대로 걸러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2공장에서 3개월 일하다 피부병과 희귀암인 외이도선암에 걸려 투병중인 정희양(36) 씨는 ‘몸뚱아리 하나로 살아왔는데 이제 시력과 청각마저 잃어가고 있다’고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지난 89년 3월 입사해 8년 동안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하는 1공장
에서 일해온 정씨는 97년 말 2공장으로 옮겼다. 그는 이듬해 초까지 3개월이 채 지나기 전에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피부질환에 걸렸다. 정씨는 ‘1공장 근무 때 난청을 앓긴 했지만 피부병은 생기지 않았다’며 ‘2공장에서의 짧은 근무기간에 피부병
과 함께 암이 생긴 것은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중략) 회사쪽 설명과는 달리 이 공장에서 발생하는 직업성 질환의 심각성은 지난해 5월 한국산업안전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소장 강성규)가
벌인 역학조사 결과에서 엿볼 수 있다. 설문조사와 건강검진을 병행한 당시 조사에서 간기능 이상 소견자가 조사 대상자의 20%, 피부질환자가 31%로 나왔다. 90년대 초 노조 간부를 지낸 한 노동자는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제2의 원진레이온 사태를 몰고 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피부병 문제가 불거지자 노동부는 최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지시했다. 노동단체들도 별도의 역학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 7월 28일 동국합섬의 실태 파악을 위해 구미에 온 황영호 섬유연맹 위원장은 ‘신뢰성 있는 실태조사를 위해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와 전문기관이 공동 참여하는 역학조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략)
(한겨레, 1999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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