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시밀리로 전송된 강의요청서의 주문 내용은 제법 까다로웠다.
“1. 시민법 하에서 소유권의 의미
2. 사회법으로서의 노동법의 성격과 한계
3. 회사 부분 매각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
4. 영업 양도에 있어서의 고용 승계
5. 정리해고의 법리와 노동조합의 대응 방안”
3, 4, 5는 가끔 다루던 내용이어서 만만한 편이었지만 1, 2에 대해서는 체계적 정리가 필요했다. 나는 나름대로 강의 준비를 열심히 했다. 노동법 교과서도 뒤적였고 변호사들의 논문도 몇 개 봐야했다.
교육장소에 도착했으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봐도 모른다 하고 게시판에도 별 다른 내용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겼으면 미리 나한테 연락을 했을 텐데…’
연맹에 전화해보았더니, 몇 달째 텐트를 치고 농성하던 어느 노동조합에서 조합원들이 모두 연행되는 바람에 비상이 걸려서 연맹 간부들은 한 명도 교육에 내려오지 못했단다. 어렵사리 몇 사람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했다.
“아, 소장님 오셨군요. 저희가 방금 전까지 토론을 하다가 머리라도 좀 식힐 겸 지금 강가에 내려와 있습니다. 소장님도 이쪽으로 오시지요. 다시 돌아나와서 2키로쯤 오시다 보면 오른쪽 강변에 커다란 텐트가 하나 보일 겁니다. 바로 거깁니다. 빨리 오시지요.”
부지런히 오던 길을 다시 돌아나가다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커다란 천막이 하나 강가에 보였다. 차를 세우고 가까이 가서 보니 천막 옆에는 벌써 커다란 솥이 하나 걸려있고 뭔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 사람이 잘 익었는지 살펴보느라고 국자를 휘젓는데 가느다란 갈빗대가 여럿 보이는 게 한 눈에 보기에도 개고기가 틀림없다.
“이거 한 두 시간 삶은 게 아닌데 그래.”
내 말에 위원장이 답한다.
“벌써 네 시간 째 푹 삶은 겁니다.”
특공대 몇 사람을 일찌감치 강가에 내려보내서 단단히 준비를 했단다.
위원장은 애써 강의 듣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느라고 반듯한 돌 몇 개를 주워다가 주섬주섬 자리를 만드는 시늉을 냈지만 한 쪽에서는 벌써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찬물에 연신 손을 담궈가면서 칼질을 하느라고 바쁘다.
동작이 재빠른 사람은 벌써 몇 점 주워 먹은 눈치다.
위원장이 “강의부터 듣고 먹자고… 강의부터 듣자니까…” 하고
다그치니까 사람들은 상을 차리다 말고 ‘에이, 김 샜다’는 표정으로 엉성하게 둘러앉는다.
“강의 길게 안하겠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나는 나름대로 목청껏 ‘시민법’과 ‘사유재산제도’와 ‘소유권’과 ‘사회법’과 ‘노동법’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사람들은 내 얘기가 귀에 안 들어오는 표정이었다.
몇 사람은 나하고 눈을 맞추면서 열심히 듣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지만, 입맛만 쩍쩍 다시면서 먼 산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30분쯤 되었을까… 때 마침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팽팽하게 당겨 쳐진 천막을 때리는 빗소리에 내 목소리는 완전히 묻혀버려 내 귀에도 잘 안 들릴 지경이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강의안을 접어 옆자리에 던지면서 말했다.
“우선, 멍멍이부터 먹어조지고 봅시다.”
사람들의 표정에 비로소 생기가 돌더니 깻잎과 마늘과 양념장이 솜씨 좋게 바윗돌 위에 차려지고 분위기가 금새 왁자지껄해졌다.
“와, 이거 정말 잘 삶았네. 누구야? 누구 솜씨가 이렇게 좋은 거야? 냄새가 전혀 안 나잖아.”
“그 사람은 회사 그만두고 이거 하면 되겠구만. 개고기 장사하면 굶지는 않겠어.”
“뭘 넣고 어떻게 삶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맛이 정말 예술이군.”
“그거 못 가르쳐주지. 이게 밥줄이 될텐데 절대로 못 가르쳐주지. 우헤헤”
자기들끼리만 떠들기가 미안했는지 누군가가 나한테도 곁다리로 신경을 써준다.
“소장님도 이렇게 강가에서 개고기 드시면서 강의해보기는 첨이시지요? 이런 것도 해 보셔야 돼요. 하하”
나도 주섬주섬 몇 점 집어 먹었는데 내 앞의 접시에는 금새 껍질만 남았다.
“나한테도 고기도 좀 줘봐. 여기는 맨 껍질만 있어.”
“아이구, 소장님 개고기 드실 줄 모르시는군요. 껍질이 진짜에요.
먹을 줄 아는 사람은 껍질만 먹는 거에요. 일부러 챙겨줬더니… 고기 좋아하시면 에따 여깃수. 내 꺼하구 바꿉시다.”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나는 미낀덕거리는 껍질은 영 별로였다. 뽀오얀 수육이 나한테는 제격이었다.
고기가 대충 처분되고 이어서 솜씨 좋게 끓인 ‘탕’이 작은 그릇에 담겨 한사람 앞에 하나씩 돌았을 때, 연맹 위원장이 서울에서 허겁지겁 도착했다.
퍼붓는 소나기 소리를 안주 삼아 연맹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가 눈물을 찔끔거렸던 얘기는 아꼈다가 다음에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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