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이 처음에 머리띠를 매고 나왔을 때, 대부분은 파란색이었다. 붉은 색과 파란 색의 양면 머리띠를 조합원들은 대부분 파란 색이 보이는 쪽으로 매고 나왔다. 하기는 노동조합 위원장조차 “처음부터 빨강색으로 매기는 좀 뭐해서요…”라고 말꼬리를 흐렸으니까…
평균 나이가 마흔살을 훌쩍 넘긴 아줌마 노동자들은 생전 처음 해 보는 파업을 그렇게 시작했다.
바로 길 건너 태광하이테크 노동조합의 파업 투쟁에 지원을 나갔을 때였다. 정문 앞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비조합원들은 단정하게 사복으로 갈아입고 삼삼오오 정문을 빠져나갔다.
“우리가 당신 회사 문제 때문에 이렇게 와서 싸워주고 있는데, 당신들은 나 몰라라하고 그렇게 빠져나갈 수 있어?”
누군가가 볼 멘 소리를 했을 때, 그 목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앙칼지게 말했다.
“저게 바로 10여년 전의 우리들 모습이에요. 10여년 전에 박영진 열사가 우리 회사에서 분신했을 때, 몇 명의 동지들이 그 투쟁에 동참하자고 우리에게 호소했을 때, 우리는 모두 도망가다시피 빠져나갔잖아요. 그 사람들이 모두 구속되고 해고된 후, 우리는 지금까지 박영진이란 사람이 우리 회사 출신이란 것도 까맣게 잊고 지냈잖아요. 우리는 다 잊고 있었지만 이번 파업을 지원하러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마다 모두 박영진 열사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때 우리가 그 젊은 사람들을 도와서 좀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 회사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때 우리가 그 투쟁에 동참하지 못하고 저 사람들처럼 도망치듯 빠져나간 잘못에 대한 벌을, 지금 이 파업 투쟁으로 갚고 있는 거에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가 속삭이듯 옆사람에게 말했다.
“우리가 역시 위원장 하나는 잘 뽑았어.”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적은 수의 남자 조합원들을 제외하고 여성 조합원들 중에 ‘아가씨’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기혼자들이었다. 왜일까… 그렇게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할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 달에 얼마나 받습니까?”
내 물음에 한 아줌마 동지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 10년째 다니는데요, 요즘 한 달에 45만원쯤 받아요.”
그 아줌마 노동자들이 쏟아지는 소나기에 흠뻑 젖은 채 잠긴 회사 정문 앞에서 하루 종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삼복더위의 뙤약볕 아래에서 몇 시간씩이나 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밥과 물조차 주지 않는 회사에서 하루 종일 굶으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당하고 당하다가… 참고 참다가…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알량한 한 달 45만원조차 1년이 넘도록 제대로 주지 않고 있으니 ‘여기서 더 이상 참으면 병신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파업이 보름을 넘겼을 때, 조합원들의 머리띠는 대부분 붉은 색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어느 누가 단 한번도 “붉은 색으로 바꾸어 매자”고 선동한 적이 없었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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