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병 직(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송창식의 노래「사랑이야」의 시작 부분이다. 이런저런 가치판단을 떠나,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가사의 가요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가 발표 직전 당시의 사전검열제였던 심의에 걸렸다면 언뜻 이해가 될까. 그것도 가사 때문에. 더더군다나 외설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라면.

「어느새 시냇물 하나 이렇게/ 흘려 넣으셨나요」

이렇게 그 다음 구절을 이어서 예시하면 어떨까. 조금 ‘깊게’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올 것이다. 그리곤 폭소를 터뜨릴 것이다. 감시의 눈동자의 교묘한 해석이 던져주는 엉뚱함은 상상을 절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분별력을 가지면 한결 예측가능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해석력도 심각하다.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대상의 내용이나 의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달라지면 더러 오해가 발생한다. 그런데 그 오해가 권력을 휘두르는 국가기관의 것일 때엔 삶 자체가 고통이다.

이해의 차이, 해석의 다양성을 부정하거나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덜 세련되고 더 성숙할 필요가 있는 우리의 문화풍토에서는, 그런 유의 행진이 장려되어야 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예술품을 대하는 각양각색의 반응은 어느 한쪽에 강제력이 발동되지 않는 한 바람직한 현상이라 해 두자.

그러나 공공의 성격을 띠는 약속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규범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한 규범의 표현수단이 되는 언어는 다양해서는 곤란하고 분명해야 바람직하다. 여러 엇갈린 해석이 가능한 규범의 한자락을 잘못 붙들었다간 불의의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 봐도 해석이 전혀 개입할 여지가 없는 명확한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절도를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행위로 기술했지만, 전기와 같은 무형의 에너지가 포함되는가 논란이 되었다. 게다가 ‘타인’은 누구이며, ‘절취’와 ‘허락받지 않고 잠시 빌리는 행위’의 경계는? 이렇듯 법률의 문장과 단어는 항상 해석에 의한 가치재충전을 요한다.

그래서 법학에도 일반해석학이 동원된다. ‘법문의 가능한 의미’가 무엇인가 가끔 논쟁이 벌어진다. 사용된 단어의 의미는 원래 확정된 것이어서 발견의 대상인지, 아니면 미확정 개념이어서 형성과 재창조의 대상인지도 어렵다.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지만, 법문의 의미에도 폭이 있다. 그 범위에만 들어서면 합리적인 해석이 되는 것이고, 벗어나면 금지된 유추나 확장해석인가. ‘개념의 핵’을 발견하지 못해도 ‘개념의 뜰’에만 들어서면 만족스러운가.

법학이 이다지 고상하단 말인가. 물론 그런 영역도 찾아보면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법률가들은 일의 처리에만 신경을 곤두세울 뿐, 그 도구 사용의 정확성에는 관심이 없다. 관습에 따라 행할 뿐이다. 그것이 법률가들의 ‘직업에토스’인지 모른다. 그 반어적 예를 지금의 감사원장이 지난날 변호사 시절 글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수필을 검사가 기상천외의 해석을 한 탓에 고초를 겪은 바가 있다.

「누군가 미국에 갔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자 ‘걸어가시오'(WALK)라는 글이 보였다.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 건너려고 한발짝 떼는 순간 빨간불과 함께 ‘걸어가지 마시오'(DON’T WALK)라는 글자로 바뀌었다. 그러자 그는 주저없이 ‘뛰어서’ 길을 건넜다.」

이것도 해석의 한 예다. 그런데 그런 기발함을 가끔 공안검사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을 대충 훑어보면, ‘국가의 존립’,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태로움’, ‘이적’, ‘간첩’, ‘찬양’, ‘고무’ 등을 해석할 때 우리의 지식 수준과 다름을 안다. 조금 더 놀라운 것은, 뒤를 이어 법관들은 검사들이 서둘러 쳐 놓은 ‘인식의 울타리’ 안에서 좀처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석을 둘러싸고 골치아플 때 흔히 말한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또는 평론가)의 것이라고. 그러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표출되는 즉시 공안검사의 것이 되고마는가. 그리하여 그들이 반세기 동안 전수되고 있는 이중의 잣대에 즉흥적 상상력을 발동하여 마음대로 해석하여도 생각의 차이로만 치부해버릴 것인가. 웃고만 넘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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