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22일 ∼ 1999년 11월 28일 : 제315호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가 절실한 때

아직도 높은 미국 주류사회

벽 넘어설 계기를 마련해야

지금 뉴욕에 살고 있는 마이클 김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민 온 이른

바 1.5세 교포다. 학창시절 뛰어난 학업성적은 물론 풋볼팀 주장, 학생

신문 편집장 등을 두루 거치며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좋은 추천서를

받고 아이비리그의 명문대학에 진학했다. 마이클은 학부에서 정치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 한 후 항상 바라던 로스쿨에 입학했다. 졸업과 동

시에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무난히 합격한 그에게는 유명한 로펌에서

경험을 쌓은 후 맨해턴 중심가에 자기 사무실을 내려는 야무진 꿈이

있다.

30대 초반의 야심만만한 변호사 마이클은 한 번도 한국계 미국인이라

는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그런 레이블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특히 주로 백인들과 어울리며 보낸 대학시절은 그로 하여금

그냥 ‘미국인’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 그에게 미국사회는 공정

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는 곳이다. 자신의 피부색이나 인종적 배경은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오직 실력으로 승부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이클의 경우는 얼마든지 한국계 이민자의 또 다른

성공담으로 기록될만 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새로운 용어에 익숙해져

야 한다. 그것은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다. 자신의 노력여하

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성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목표지만 유리로 된

천장이 놓여있어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현실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

다.

1.5세, 2세라고 불리는 많은 교포 젊은이들이 미국사회는 공정한 룰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중에는 유리 천장을

깨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에게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숙명적인 꼬리표가 붙

어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태어나서 자라온 미국사회에서도, 부모세대

의 모국인 한국사회에서도 공정한 승부의 장을 발견할 수 없게 된 그

들이 최종적으로 택하는 무대는 미국 주류사회로부터 섬 같이 고립되

어 있는 교포 커뮤니티이다. 그곳이야말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자

신들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장황하게 교포 젊은이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우리 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재능과 역량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사장되

어 가는 안타까움에서다. 아랍세계 한 가운데 떠있는 작은 섬 같은 이

스라엘이 1억명 아랍인들과의 경쟁에서 버티는 것은 미국의 경제, 언

론, 정치계를 움직이는 막강한 유대계 미국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

기에 가능했다. 21세기에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리드할 것임이 분명한

중국의 잠재력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서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화교들이 있기에 더 커지는 것이다. 유대인들과 중국인들의 미국

이민사도 우리 교포들의 그것만큼이나 척박하고 힘든 것이었다. 그러

나 그들은 “다른 백인들보다 조금 더 잘해라”(Do a little better

than other whites)면서 자라나는 세대들을 격려하고 고무시켰다. 물

론 그들에게도 유리 천장이라는 같은 현실이 주어져 있었지만 몇 세

대에 걸친 부단한 노력 끝에 이제는 당당히 미국 주류사회에도 자신

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인들의 미국이민도 거의 한 세기에 가까워졌다. 부모세대의 눈물

겨운 노력 끝에 겨우 뿌리를 내리게 되었지만 젊은 세대들은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 이들을 고무시키고 일으켜 세울 방법은 없

는 것일까? 그래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사장되어가고 있는 이들

의 역량을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일

까? 이제부터라도 해외동포들의 잠재력에 눈을 돌려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 구성이 절대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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