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13일 ∼ 1999년 12월 19일 : 제318호
해외통신원 리포트
김정호
<뉴욕·재미 언론인>
미국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동양종교·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WTO나 IMF를 통한 지배는 계속돼
미국을 필두로한 서양의 정신세계는 이미 한계에 달했으며 21세기는
동양의 정신을 통해서 서양의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어느
분야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이러한 담론들이 더욱 유행
하고 있는 데 이러한 관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서양인들의 뿌리는 헤브라이즘에 근간을 둔 기독교과 헬레니즘이지만
자신들의 정신과 문명의 한계가 많다고 주장하는 지금 동양사상은 자
기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열어줄 열쇠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일반인들에게도 깊숙히 침투해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내가 사는 아파트만해도 단전호흡과 기공강좌가 무
료로 1주에 2회씩 열린다. 무료라는 말은 그만큼 보편화되었다는 이야
기다. 서점에 가보면 사주팔자, 풍수, 손금, 관상, 기공, 태극권, 도가양
생술, 동양음식 조리법에 대한 책들이 널려있다. 아예 한 섹션을 차지
하고 있을 정도이다. 일반인들에게 이 정도니까 인문, 사회과학을 전
공하는 학자들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동양에 대한 흠모와 몰입은 이
미 상당한 수준이고 그들이 내놓은 연구성과는 우리가 “아이구, 형
님!”하고 대접해야 하는 경지에 도달해있다.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이 이것도 비판적으로 봐야한다. 이들이 이렇게
동양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 역시도 이들이 지난 수 세기
동안 해온 것처럼 제국주의적 사고의 연장이지는 않을까? 서양인들은
왜 동양에게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는가? 문제는 “뭐가 아쉬워서”로
귀착된다.
우리 우리는 정치·경제·사회·군사·사상·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가 결
코 이들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경험하면서 늘 오그라들고 주눅들어하
지 않는가? 그런데 왜 이들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는
가? 나는 그 저의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한 번도 평등한 파트
너인 적이 없던 상대가, 언제나 큰 형님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늘 우
리를 멸시하고 우습게 보던 상대가 갑자기 “우리는 평등해, 사실 우
리는 너희에게 배울 것이 너무 많아. 잘 부탁해” 이러고 있으니 의심
스럽지 않느냐는 말이다.
미국사람들이 잘 쓰는 말로 현실은(The fact is…) 한편에서는 동양의
정신을 통해서 배우자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동양에 대한
수탈과 착취가 병행이 되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의 이런 동양에 대한 구애를 마냥 예쁘게 봐 줄 수만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21세기에도 서양의 모든 것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극단
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인들을 포함한 서양일반의 이런 이중
성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의 중들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주면서 많이 배워가라는 식으로 이들을 대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동양정신을 향한 이들의 끊임없는 구애와 흠모가 이들이 스스로 “이
제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이후에도 지속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서점에 깔린 동양관련 연구서와 일반인들의 동양문화에 대한 열
광 속에서 IMF로 상징되는 국제금융자본의 전횡을 보면서 정말 묘한
착잡함에 빠져들었다. 미국,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나라이다. 미국과 맺었던 지난 한 세기의 인연은 결코 평등하지
못했다. 아직도 우리는 이들에게 “만만한 상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
다. 언제 우리는 이들에게 정당한 상대로 인정받을 것인가? 우리 모두
의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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