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사람이 부럽다"

코오롱15만4천볼트 고압송전탑에서 생존의 몸부림 냄새를 맡다

4월 4일 아침, 철탑 위의 세 남자가 단식을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철탑으로 전화를 했다. 왜, 전화를 했는지 모른다. 지난 3월 24일 철탑에 두고 내려온 얼굴이 떠올랐다. 코오롱 조합원이 복직되는 날 올리려고 묵혀두었던 ‘아직 진행 중인 인터뷰’ 파일을 연다.


코오롱 구미공장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코오롱노조가 400여 일을 겪어야했던 길만큼 구미로 가는 길은 험난하였다.

3월 24일 새벽 구미로 가는 길, 메시지가 왔다. “GM대우창원공장 고공농성장 침탈 위기” 구미를 지나쳐 창원으로 왔다. 26일, 창원 집회에서 GM대우 구사대들의 물대포에 카메라 렌즈도, 노트북도 맛이 갔다. 부랴부랴 광주 화물연대로 총회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27일 화물연대 총회를 취재하고, 모처럼 편안한 잠에 들었다. 28일 구미로 갈 계획이었다. 새벽 5시 15분 단잠을 깨는 전화가 왔다. “화물연대 정책부장입니다. 광주에서 총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첨단단지의 송신탑에 2명이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철탑 옆에서 흐르는 15만4천 볼트의 고압전류가 계속 끌어당겼으나, 하루하루를 놓치고, 결국 최일배 코오롱노조위원장이 손목을 끊었다는 소리를 고속도로에서 들어야 했다. 하얀 봄 햇살에 진달래 화들짝 핀 남도에서, 산에 핀 핏빛 진달래꽃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진달래꽃 처음 본 날

29일 화물연대가 서울 집결을 결정하고 광주에서 밤을 도와 서울로 올라갔다. 함께 서울로 차를 몰아가는데, 15만4천 볼트의 전류가 끌어당긴다. 어제 이미 다른 언론에서 철탑에 올라가 취재를 하였다는 말에 구미 취재를 포기했는데, 차는 서울로 가지 않고, 구미로 향한다.

“그냥 전화로 하세요.”
“올라갈래요.”
“생각보다 오르기가 힘든데.”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요.”
  전기철 부위원장

정말 얼굴 한 번 마주하고 싶었다. 22미터 철탑을 오르면서 아래를 한 번도 내려다보지 않고 올랐다.

전기철, 김만수, 문종호.
이들이 철탑에 오를 때 무슨 마음이었을까 만 생각하고 올랐다.

“어제 오신 분보다 잘 올라오시네요.”

머리는 언제 감았을까? 기름기가 잘잘 흐른다.

“냄새 많이 나죠. 씻지를 못해서.”

그렇구나. 감옥보다 더 한 곳에 이들이 살고 있구나. 한 번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살고 있구나.

냄새가 났다. 징한 냄새가 났다. 씻지 못해 나는 냄새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하는 간절한 소망의 냄새로 한 평 남짓한 철탑농성장은 가득하다. 노동의 땀 냄새가 나야할 이들의 몸에 생존의 몸부림 냄새가 났다.

생존의 몸냄새

“취재야 어제 다 했을 테니, 저는 오늘 함께 밤이라도 새고 가려고요.”

아차하면 15만4천 볼트의 고압이 목숨을 앗아갈 철탑에 오른 이들에게 무얼 취재한단 말인가? 해고는 노동자에게는 사형선거다. 살아있는 목숨이 아닌 죽은 자의 부활을 꿈꾸며 오른 철탑에는 칼바람이 무섭게 몰아친다.
  문종호 조합원

“첫 날은 합판도 안 깔렸지요. 철탑 귀퉁이를 잡고, 몸을 철탑에 묶고 추위와 바람에 맞서 밤을 새웠지요. 다음 날 지역에서 연대 오신 분들이 합판을 올려 자리를 만들었고, 그 뒤에 비가 온다는 말이 있어 비 막을 천막을 쳤지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찔하다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철탑에서 내려다보이는 공장이다. 기계는 돌고, 동료들은 일을 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이 더 고생이죠. 살벌해요. 철탑 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못해요. 말 한마디 잘못하면 부장한테 호출 이예요. 회식자리에 가도 술을 마시지 않는 대요. 혹 술 기운에 말 잘못할까봐. 술도 집에 들어가 혼자 마시는 실 정이예요.”

회사가 현 노동집행부 선거에 관여했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알고 있다. 개표함이 열릴 때까지 최일배 위원장이 당선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후보가 75%는 얻을 거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살벌한 공장

하지만 개표함은 정리해고자였던 최일배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400일 넘게 투쟁하는 코오롱 조합원에게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으면, 노조 선거를 이야기 한다.
  김만수 조직부장

공장에서 숨죽여 일하는 조합원들의 마음은, 관리자의 감시에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하지만, 철탑에 향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공장에서 일하며 8시간 동안 동료와 말 한마디 못하고 일한다고 생각해봐라. 일하다 다쳐도 산재처리도 못하고 자기 돈으로 치료를 하는 실정이다. 우리가 이겨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신명나게 일하는 공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겨야 한다.”

조기퇴직을 했던 조합원들은 지금도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인원 구조조정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나 의문이 든다.

“10년에서 20년 이상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구조조정으로 나가는 게 안타까워 노조에서는 스스로 임금삭감을 감수하며, 정리해고를 막으려고 했어요. 조기퇴직자들이 다시 자신의 기계 앞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죠. 정규직이 임금을 삭감할 테니 채용을 해달라고 했지요. 회사의 답은 ‘NO’ 였어요.”

회사의 답은 NO

고공농성 열흘째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고압전류에 몸은 저릿저릿해지고, 온 몸이 퉁퉁 붓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어요. 아침에는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춥고. 밑에 동지들과 말도 제대로 못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폐쇄공포증에 시달려요. 세 명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서로 격려하며 견디는 거예요.”

하지만 철탑 위에서 겪는 고통은 아래에서 싸우는 동지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 한다. 아래에서는 철탑 위를 걱정하고, 철탑 위에서는 철탑 아래를 걱정한다.

“서울에서 동지들이 구속이 되며 싸우고 있는데, 철탑 위에서 아무런 뒷받침도 해주지 못해 안타깝고 미안해요.”

철탑 위 세 남자는 서로 다투기도 한다. 좁은 공간에 달랑거리는 생명을 보듬고 앉아, 철탑 아래만을 바라보고만 있잖니, 그 안타까움이 의견충돌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세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정겨움에 질투가 날 정도이다.

“사회에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 만날 수가 없었어요. 공장에서 함께 일할 때도 몰랐지요. 해고투쟁을 하면서 좋은 친구, 동생, 형님들 만날 수 있어서, 정겨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정겨운 사람을 만나다

김만수 씨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기철 씨가 문종호 조합원이야기를 한다.

여기 문종호 동지는 조합원이 아니에요. 김천공장에서 근무하는데, 김천에는 노조 대신 공제가 있거든요. 2004년 파업이 끝나고 제 발로 찾아와 조합에 가입했어요. 덕분에 정리해고 됐지요. 고압전류가 몸에 안 좋잖아요. 애 못 낳는다는 말이 있고요. 올라 올 때 애 날 필요 없는 사람 골랐는데. 문종호 동지는 딸만 둘이라….”

무거웠던 분위기에 갑자기 웃음이 돈다. 하지만 가족들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는 무겁다 못해 철탑에 가로놓인 합판이 내려앉는 것 같다.

“딸이 컴퓨터를 하다가 철탑에 있는 아빠 사진을 본 모양이에요. 그걸 보고 전화가 왔어요. ‘아빠 내려와. 딴 데서 일하면 되잖아. 아빠 얼굴도 기억 안 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아내가 얼마 전 철탑 아래에 왔어요. 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울먹이는 거예요. 집에 가 본지 2달은 넘은 것 같다.”


“감옥은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아니 체념을 하잖아요. 여기는 유혹 이예요. 하루에도 수백 번 갈등을 하죠. 언제든지 내려갈 수 있잖아요. 가족이 보고 싶어 내려가고 싶은 마음, 골백번 들지요. 내려갈 수 있어도 내려가지 못하는 마음, 만날 수 있어도 만나지 못하는 마음…”

수없이 찾아오는 유혹

밤을 새고 가야겠다고 하니, 거부하겠다고 한다. 비좁은데 내려가라고 한다. 오를 때 전혀 들지 않았던 두려움이 내려가려고 하니 몰려온다. 세 남자를 달랑 놔두고 내려가야 하다니. 철탑을 내려오는 길, 다리가 떨리지 않고, 가슴이 울렁울렁 거린다. 자꾸 눈앞에 안개가 낀다.
바람아 불어라, 바람아 불어라, 흐르는 눈물 싹 날아가게 바람아 불어라.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있는 사람을 철탑에서 내려보면 참 부러워요.”

내 발도 땅에 닿았다. 마음은 15만4천 볼트 고압선에 매달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