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편집간사가 되어 2년의 임기를 끝낸 후, 2019년부터는 연구간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편집간사는 학술지 발행, 연구간사는 학술대회 개최 관련 업무를 한다. 간사를 처음 맡았을 때는 겁이 났었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몰랐지만 간사 업무에 치여 괴로워하는 동학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4년차 간사가 되었다.
![]() |
처음엔 간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학술지 관련 문의에 내 판단대로 대응했다가 꾸중을 들었다. 지도교수에게 하소연 했더니 ‘간사의 직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란 대답을 들었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대응하되, 그에 벗어난 상황에서는 이사에게 문의하라는 것이다. 그 후로 나와 동학들은 간사를 ‘부엉이’라고 부른다. 학회의 임원진이 작성한 편지를 이곳저곳에 나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학회에서는 매해 두 차례 기획주제를 갖고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회장이 제시한 비전을 이사진이 구체화시켜 기획주제를 확정하면 연구이사가 발표자를 섭외한다. 그러면 간사가 발표자들에게 원고를 수합하고 학회 개최를 위한 장소, 식사 장소를 섭외하는 등 진행을 위한 구체적인 사항을 준비한다.
학회에는 연구윤리, 논문투고, 논문심사규정이 있다. 이 규정은 학술지 투고 범위, 편집양식, 심사결과 판정 기준에 있어서는 구체적이지만, 간사의 업무 범위나 수당 등에 대해서는 명시돼 있지 않다. 간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또 업무에 대한 수당은 임원진의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 동일한 학회여도 회장의 생각에 따라 간사 수당의 지급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간사로 있는 학회에서는 1년 간사 수당으로 학회 종신회원비와 동일한 금액인 50만 원을 지급한다. 작년까지 일했던 또 다른 학회에서는 별도의 간사 수당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며, 한 해는 15만 원을, 그 다음해에는 30만 원을 지급했다.
간사의 업무 범위는 이사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해당 팀에 부과된 업무를 이사와 간사가 한 팀이 되어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가 일을 얼마만큼 수행하는가에 따라 간사의 업무량이 정해진다. 편집간사였을 때 편집위원이 심사위원 후보를 정해주면 심사위원 섭외는 내가 해야 했다. 다섯 명의 후보 중 세 명을 섭외해야했는데 투고된 논문의 심사위원을 모두 기한 내에 섭외하기 위해서는 많은 심사위원에게 연락을 취해야했다. 나는 세 명의 간사와 함께 일해 업무 강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회가 한 부분에 한명의 간사를 두고 있다. S동학의 경우 혼자 33개의 논문의 심사자를 섭외한 적도 있다. 단 한명도 거절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 99명에게 연락을 취해야했던 것이다. 반면 나의 후임으로 일하고 있는 편집간사의 경우 심사자 섭외를 편집이사가 한다. 편집이사가 심사위원을 모두 섭외한 후 이메일 주소를 전달하면, 심사원고 발송 업무부터 간사가 수행하는 것이다.
학술지의 등재지 유지 여부가 판단되는 학술지평가, 각종 지원사업에 대한 서류는 이사가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 또한 업무 배분 정도에 따라 간사가 담당하는 일의 양이 달라진다. J 동학의 경우 모두가 일을 미뤄 홀로 학술지평가를 준비했다.
최근에는 학술지 편집을 출판사가 아닌 간사에게 맡기자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출판사에 부담하는 편집 비용이 꽤 크기 때문에 간사에게 위임하는 것이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학술지 편집 담당 간사를 별도로 둘 경우, 1년에 학술지를 세 번 발간하므로 간사 수당 50만 원을 3으로 나누면 편집비용은 약 16만 원이 든다. 간사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학회에서는 공짜로 편집을 할 수 있다.
간사 수당을 업무 시간으로 나누면 턱없이 부족하다. 50만 원을 최저임금인 8590원으로 나누면 약 58시간이다. 연구간사의 경우 일 년에 두 번 학술대회를 진행하므로 한 번의 학술대회에 29시간을, 편집간사는 일 년에 세 번 학술지를 발간하므로 한 학술지에 19시간을 일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업무 시간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학회가 회장의 일을 ‘돕는’ 형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교수가 학회의 회장이 되면 회장과 연이 있는 사람이 이사가 된다. 그리고 회장 혹은 이사와 연이 있는 사람이 간사가 된다. 그리고 이중에 임금을 받는 것은 간사가 유일하다. 제자가 많은 교수가 주로 학회 회장직을 맡는 것은 번거로운 학회 일을 도울 사람이 많아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친구로부터 간사 일을 하는 것이 교수 임용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의 대답은 ‘아니’였다. 간사 업무를 하면서 많은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학회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파악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학문적 지평을 넓혀주거나 취직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부탁받았고 수락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 역시 부여된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2년간 간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하게 되는 것이 간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