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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상을 일해도 최저임금에 간신히 걸리는 기본급을 받으며, 주야 맞교대와 휴일 특근을 해도 연봉 2000만원. 아이들 학원비는 고사하고 나날이 늘어나는 마이너스 통장 액수에 한숨짓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노조를 만들었지만, 회사는 교섭 장소에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교섭에 응하라고 적법한 파업에 들어가자마자 날아든 것은 직장폐쇄와 성탄절 연휴 폐업.
입사 10여 년에 7차례, 업체이름도 기억 안 날 정도로 하청 회사들이 바뀌었지만 당연하게 고용이 승계되었기에 한 번도 하이닉스ㆍ매그나칩이 자신의 직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하청회사가 문을 닫고는 이제 공장에도 들어오지 말란다. 부당하다 항의를 하니 “공장 출입도 안 되고, 공장 앞에서 집회도 하지 말라”는 가처분 판결이 떨어졌다. 청춘을 바쳐 일해 온 공장 정문 앞에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 공지 팻말과 하루 일당 25만원을 받는다는 용역깡패가 버티고 가로 막고 있다.
철바리케이트 너머 용역업체 직원과 마주선 하이닉스ㆍ매그나칩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비통함이 서려 있었다. 그 대치선에서 사내하청 입사 12년차 오병웅(40) 씨를 만났다.
노동자 고통분담 속 최대흑자, 최저임금 인상분 맞추려 하청노동자 상여금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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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웅 씨는 “IMF 당시 원하청 노동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상여금 600%를 삭감하며 고통을 분담했는데, 이후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자 원청 정규직은 다시 800%로 상여금을 원상 복귀하였지만 하청업체는 원상복귀가 되지 않았습니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게다가 IMF이후 정체된 월급은 2003년까지 기본급 62만원에 머물고 있었고, 주야맞교대, 철야근무를 해야 150만원을 수령했다. 2004년 인상된 최저임금에 맞추기 위해 기본급이 67만원으로 올랐지만, 상여금은 200%로 삭감되었다.
오 씨에 따르면 93년 우양OM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하청 노동자들과 원청 직원과의 급여 수준은 비슷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본급 인상과 상여금 등의 원상복귀 격차가 커지면서 현재 임금은 원청 정규직 급여의 절반 수준이다.
주야간 맞교대로 200시간이 넘는 OT수당을 받아도 연봉 2000만원.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는 학원은 고사하고 학교 보내기에도 빠듯하다. 주간근무 날이면 야간에 공사장 노가다 일을 하고, 아내는 새벽 두시에 일어나 우유와 녹즙 배달, 건물 청소로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마이너스 통장 1천만 원과 임대 아파트 보증금 1천만 원 대출은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동료들이 10년 이상을 근무했지만 70%가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고, 신용불량자인 동료들도 있다.
어디가면 이렇게 일하고 이 돈 못 받을까 싶기도 하지만, 청춘을 바친 회사를 떠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냉동기 운전을 한다는 오씨는 “내가 다루는 관리장비에는 이제 도사”라며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드러냈다.
폐업,가처분, 손배가압류, 게다가 "민주노총만은 안 돼"
하이닉스와 매그나칩 공동으로 하는 사내하청 12개 업체, 700여 명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수준을 개선하고자 지난 해 10월 22일 성훈테크놀로지, 인화, 에프엠택, 안호산업, 4개의 하청업체 동료들이 뭉쳐 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상급단체로 정했다. 그러자 회사는 바로 7개 업체에 관리자들이 주축이 되어 유령노조를 만들고 상급단체를 한국노총으로 정했다.
노조설립 후 하이닉스ㆍ매그나칩은 해당 업체들이 곧 폐업에 들어갈 것이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았고, 노조는 12월 15일자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설립 단계부터 원청노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응답이 없었죠. 매그나칩 분사로 위원장이 새로 당선되어 축하화한을 들고 찾아도 가보았는데, 정말로 없었던 것인지 자리에 없다는 소리만 듣고 물러나왔죠. 현장에서는 원청노조에서 하청노조관련 입단속을 시키고 있다, 구사대 준비 중이라는 소리까지 횅횅 합니다”
오 씨는 원청노동자들은 외려 맘으로 힘을 보탠다고 하면서도, 원청노조의 무관심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는 못했다. 공식적인 통로는 아니지만, 회사 측에서는 원청처럼 한국노총으로 바꾸지 않으면 노조는 어림없다는 얘기를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폐업 얘기가 흘러 나왔지만 설마 하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연휴 새벽에 노조가 설립된 업체 3곳이 폐업에 들어갔죠. 아무것도 모르고 출근을 해서 정문의 공고를 보고야 폐업 사실을 알았습니다”
공장은 이미 사측이 고용한 용역깡패 400여 명이 막고서 출입이 불가능했다. 이 날 하루 공장에 진입하려는 시도를 하다 10여 명의 동료들이 부상을 당했다.
10년 일한 직장에서 180여 명이 하루아침에 쫓겨난 허망함. 비정규직이 이런 거구나 하는 절망감. 10년 일하고도 67만 원 기본급을 받아온 자신 앞에 일당 25만 원의 용역깡패를 내세운 회사에 대한 분노.
그런데 회사는 이것도 모자라 조합원 54명에 대해 출입금지,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게다가 35명을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고발하고, 60명에 대해 8억원의 손배가압류까지 청구했다.
회사는 노조 탈퇴 회유도 끊임없이 진행했다. 그리고 가뜩이나 놀라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고, 가처분 결정서를 보내며 조합원들이 마치 크나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겁을 주었다.
“남들은 돈 주고도 안 빠진는다는 살이 노조 시작하고 8kg은 빠졌네요”
"회사는 불법파견 논란 수습, 지역내 비정규투쟁 확산 막으려는 것"
“노조 설립 후 교섭에 일절 응하지 않던 사측이 11월 10일 5차 교섭에야 경총(충북) 사무국장과 노무사에게 교섭권을 위임하고 교섭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사측은 교섭에서 불성실한 태도를 일관했고, 결국 파업에 이른 거죠”
오 씨는 노조 설립 업체만 폐업에 이른 것에는 하이닉스ㆍ매그나칩의 개입이 반드시 있다고 보고 있다. 말이 하청업체지 지금까지 하청업체 사장은 원청 관리자가 퇴임하면 예우상 거치는 ‘바지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비난이 받을 것이 빤한데도 무리하게 기습 폐업을 한 것은 비정규직 노조 싹을 자르겠다는 것도 있지만, 불법파견에 대한 문제를 비껴가려는 생각도 있다고 봅니다. 지난 해 11월 노조가 제기한 불법파견 진정 결과에 대해 회사가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거죠”
오 씨는 회사가 상시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화 부담을 덜기 위해 유령 도급업체를 세우고 불법파견을 행해왔다고 주장한다.
93년 입사 이후 2년 안짝으로 업체가 바뀌고 업체 사장이 바뀌었지만 동료들은 그대로였다. 자동계약갱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진 퇴직을 하기 전까지 회사에서 짤리는 일은 없었다.
오 씨가 아침에 출근하여 처음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서 원청 엔지니어의 작업지시를 확인하는 것이다. 원청 직원과 혼재해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냉동기운전ㆍ공조ㆍ전기ㆍ크린룸 설비 등 생산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작업 시 모든 작업지시나 관리, 작업완료보고 등 모든 업무가 원청 관리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하청 동료들이 사용하는 작업도구나 컴퓨터 등 모든 사용물품이 원청의 것이다. 오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간의 하청업체는 업무나 경영상 전혀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 되고, 이는 불법 파견의 가능성을 농후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충북권에서 비정규직 노조로는 저희가 가장 규모있는 편인데, 지역으로 비정규 싸움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 차단하려는 것도 있다고 보고요, 그러니까 교섭에 경총까지 개입한 거겠죠”
하이닉스ㆍ매그나칩 투쟁이 개별사업장의 문제를 넘었다는 인식들은 이미 지역으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와 민주노총 충북본부 연대집회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성명도 있었다.
민주노총이 새해 첫 집회를 청주에서 열며, 하이닉스ㆍ매그나칩 투쟁을 비정규 투쟁의 시발로 선포한 데 이어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는 1월 말 하이닉스ㆍ매그나칩 문제 해결을 위한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그나마 이제껏 제대로 해준 거 하나 없는 아이들 생각하면 안쓰럽고 걱정도 앞서지만, 내 자식들 비정규직 되는 세상 막는 게 이 길이라는 걸 늦게나마 알고 나서는 싸움이니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오 씨의 마지막 말은 스스로에 대한 당부이자 격려이기도 해 보였다. 겨울 댓바람 노상에서 맞는 오병웅 씨의 새해가 춥지만 희망을 내포하는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