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노조 선관위 "선거 무효" 선언 후 잠적

선관위장 압박 등 사측의 개입 뚜렷

최근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노조 집행부 선거에서 당선된 바 있는 (주)코오롱에서, 선거관리위원장이 선거무효를 선언한 뒤 사측 관리자들과 함께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코오롱노조 선거관리위원들은 28일 오전 10시, 선거에서 탈락한 김홍렬 후보측의 이의제기에 따라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김홍렬 후보측이 21일 개표 당시 6장의 쟁의행위 찬반투표 용지가 투표함에서 함께 나온 것을 이유로 선거무효를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자리에서 조현문 선관위장은 간담회가 시작되고 두시간쯤 지난 12시경, 갑작스레 "회의를 시작한다" "선거무효를 선언한다"고 말하고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선거무효선언, 법률적 효력은 없어

  코오롱노조 정리해고자들의 회의모습 [출처: 코오롱 정투위]

개표 당시 선관위는 투표함에서 쟁의행위 찬반투표 용지가 나온 것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고 지난 21일 당선 확정공고를 낸 데 이어, 상대편 후보측의 다른 이의제기와 관련 25일에는 2차 당선공고를 내고 선거 종결을 선언한 바 있다. 2차 당선공고에서 선관위는 "10대 임원선거와 관련 더 이상의 이의제기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발표했었다.

이 투표함이 지난해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사용된 정황이 확인됐고, 투표참가 인원수와 투표용지의 숫자 역시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선관위원장의 선거 무효 선언은 법적인 효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가 선거 무효 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규정상 선관위원 2/3의 참석과 2/3의 찬성이 필요하다. 또한 선거가 끝난 후 3일내에 이의제기를 해야하나 김홍렬 후보측이 선거 후 일주일이 지난 27일에야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도 선거규정에 어긋난다.

신임 집행부는 무효선언과 관련 민주노총 법률원에 의견서를 요청했으며, 현장 조합원들로 구성된 상임집행위가 구성되는 대로 이취임식 날짜를 발표할 예정이다.

최일배 신임 위원장은 "선관위장은 선언은 법적인 효력이나 의미가 없고 우리는 이에 관계없이 일정대로 갈 것"이라며 "8월 초에 인수인계를 끝내고, 15일쯤 이취임식을 대신하는 집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관위장, 사측 관리자들과 함께 잠적

이번 선거 무효 선언과 관련해 사측이 개입한 정황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선거무효선언 후 신태석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정투위) 대표와 얘기를 나누던 조현문 선관위장을, 사측의 김승재 총무과장 등 관리자들과 용역 경비들이 뒤쫓아와 반 강제적으로 데려간 것.

이날 선거무효선언 직후 조현문 선관위장은 코오롱노조 사무실에서 노조 관계자들에게 "벗어나고 싶다" "힘들어 못살겠다"고 하소연을 한 뒤, 평소 친분관계가 있는 신태석 정투위 대표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신씨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에 사측관리자들이 조씨를 다른 차량에 태우고 가려다가 실랑이가 벌어졌고, 당시 현장에 있던 구미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의 도움을 얻어 조씨는 신태석 정투위 대표의 차를 타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결국 사측은 이들을 미행한 끝에 차량 3대로 신씨의 차를 가로막은 뒤 조씨를 데리고 사라졌다.

조현문 선관위장 "나도 효력이 없다는 건 안다"

조현문 선관위장은 차 안에서, "나도 (선거무효 선언의)효력이 없다는 건 안다"면서도 "선거 무효 선언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고 신태석 정투위 대표는 전했다.

조현문 선관위장은 이전에도 누차 "정말 해도 너무한다" "징그럽다"며 이번 선거와 사측의 개입을 비난하고, 이날도 "어차피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이왕 사람이 모인 김에 간단히 미팅이나 하고 빨리 끝내자"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그동안 심적인 괴로움을 느껴왔으며, 이날 선거무효선언은 이같은 사측의 압박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신태석 대표는 "그는 조합활동을 하던 사람이긴 하지만, 현재 조합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측의 한마디에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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