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가 대학 본고사 출제문제의 오류를 지적해 '불경죄'로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995학년도 성균관대 본고사 수학과목 채점위원이었던 김명호 교수는‘수학Ⅱ 7번’(‘공간 벡터에 대한 증명’) 문제의 출제상 오류를 지적한 후 학교당국에 의해 교수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후 96년 말 한국을 떠났던 김명호 교수는 작년 3월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다시 법정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지난 해 9월 서울 중앙지방법원 민사 제 23부는 "(성균관대 측의) 재임용 거부 결정은 피고에게 주어진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적법한 것"이라며 김 교수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이에 김명호 교수는 서울지방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지난 해 10월 18일 서울고법에 항소를 접수시켰으나, 석 달이 지나가도록 서울고법은 별다른 이유없이 재판일정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민교협은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고, 재판부의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촉구했다. 민교협은 탄원서에서 "김명호 교수 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은 법원이 여전히 구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아니면 자기반성과 인권존중의 길로 나아가는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이 사건은 인권존중과 사회정의 구현의 시대적 요구에 걸맞게 종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1975년 교수재임용 제도가 생긴 이래 2003년까지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는 총 439명이다. 국회는 지난 해 6월, 재임용 탈락 교원이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한 '대학교원 기간임용제 탈락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된 교수들의 실질적인 구제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탄 원 서
존경하는 이용훈 대법원장님,
‘국민을 섬기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법원, 국민과 함께 하는 법원’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대법원장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탄원서를 올리는 저희들은 전국 각지의 여러 대학에서 약 1500명의 진보적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의장입니다. 이렇게 탄원서를 올리는 것은, 민교협 회원 전체를 대표하여 현재 교수지위 확인 청구 소송 중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교수 (이하 김명호 교수로 표기)가 한시바삐 대학에 되돌아 갈 수 있도록 김명호 교수 사건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김명호 교수는 1995년 1월 대학입시 본고사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에 대한 출제교수들과 그를 비호한 당시 대학당국의 보복조치로 두 차례에 걸쳐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당하고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1996년 2월 끝내 재임용에서 탈락 당했습니다. 1995년 성균관대학 대학입시 본고사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추후에 국내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공인되는 바 있습니다. 나아가 김명호 교수가 그 오류를 지적한 것 때문에 출제교수들과 그를 비호한 당시 대학당국에 의해 승진탈락과 정직 3개월 등의 불이익을 당하다가 최종적으로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지의 사실입니다.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명호 교수는 그간, 재임용에서 탈락당한 다른 많은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재임용 거부는 학교의 자유재량’이라는 저 악명 높은 1986년의 대법원 판례 때문에 97년 부교수지위확인 소송에서 패소 당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이 판례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재임용이 당연하다’는 1977년의 판례를 대법원이 합당한 명분과 적절한 절차를 밟음이 없이 스스로 뒤집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003년 2월 재임용 관련 구 사립학교법 제53조의 2 제3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판정한 것과, 2004년 4월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던 김민수 전 서울대 교수가 대법원에서 승소한 것은 법원이 권위주의 시절 자신이 저질러온 잘못을 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일로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닙니다.
교원의 지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정과 김민수 교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힘입어 김명호 교수는 작년 3월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다시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작년 9월 21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민사 제23부 나 (부장판사 이혁우)는 연구실적 등에 하자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학점부여 등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같은,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당한 이유를 들어 교수지위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한 김명호 교수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판결은 대학교수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법원이 진정 자시쇄신의 길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앞으로 반드시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 치욕스러운 판결입니다.
작년 10월 18일 김명호 교수는 서울지방법원의 판결에 불복, 서울고등법원 민사 제14부 다(부장판사 이상훈)에 항소를 접수시켰습니다. 그런데 민사소송법 199조를 따른다고 하더라도 5개월 이내에 재판을 끝내야 하니 3월경에는 선고를 내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고법은 사건접수 이후 이미 두 달 반이 넘었음에도, 1심 패소 판결에의 정면 반박자료 입수를 위한 문서제출 명령 등과 관련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변론 준비기일도 두 달이나 간격을 두고 정하는 등 재판 일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서울고법의 이러한 재판 진행을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훼손하는 고의적인 지연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장님께서 이런 점들이 즉각 시정되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아울러 앞으로 있을 김명호 교수 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은 법원이 여전히 구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아니면 자기반성과 인권존중의 길로 나아가는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 저희들은 대법원장님께서 2심 재판이 ‘국민을 섬기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참으로 공정한 재판이 되도록 , 진실의 승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는 재판이 되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된 김명호 교수 사건은 부교수 승진 탈락 때부터 계산한다면 이미 10년을 넘기고 있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사건은 인권존중과 사회정의 구현의 시대적 요구에 걸맞게 종결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 사건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 요구됩니다. 대법원장님께서 결자해지의 자세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 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인권 신장에 기여하지 못한 과거사 청산의 시급함을 인정하는 대법원장님 아래서, 법원이 이제 자기정화 능력을 발휘해 잘못된 판결을 신속하게 시정하는 길로 나아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06년 1월 9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일동 드림
김석진 (경북대 교수)
김세균 (서울대 교수)
이중호 (전북대 교수)
주경복 (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