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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권회승 기자 |
중증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 맨몸으로 한강대교를 건넜다. 27일 중증장애인 30여 명은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건너 서울시가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노들섬까지 기어서 행진했다.
그간 전국장애인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인단체들이 요구해온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요구에 대해 서울시는 지난 26일 “시기상조”라며 “법 개정 이후 검토하겠다”는 공식적인 거부의사를 밝혔다.
장애인들은 서울시의 입장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날 불편한 몸을 아스팔트 위에 내던지고,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넌 이유는 중증장애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어떤 이들은 다리 대신 손으로, 어떤 이들은 굴러서, 어떤 이들은 말 그대로 기었다. 장애인들은 이날 온몸으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가 필요한 이유를, 그리고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를 만들겠다며 7천억을 쏟아 붇고, 장애인의 날 하루 행사에 2억을 쓸 수는 있어도, 중증장애인들의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는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나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방기한 채 ‘비정한 가족’을 운운하는 사회. 이 사회에 대해 장애인들은 온몸으로 절박한 그들의 현실을, 그리고 그들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날 행진은 가장 느린 장애인의 속도에 맞춰 진행되었다. 박현 씨는 “장애인들은 항상 세상의 속도에 뒤쳐져 살아왔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가장 느린 우리 동지의 속도에 맞춰 함께 노들섬까지 가자”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싣는다.
박경석, “활동보조인은 곧 생존의 문제”
장애인은 오페라는커녕 영화 한편 보러 나가지도 못합니다. 오늘 우리 장애인들은 기어서라도 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되는 노들섬 까지 갈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집구석에 쳐박혀 살 수 없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은 곧 생존의 문제입니다. 최근 언론에서 영국에서 온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를 살아있는 비너스라 칭송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활동보조인이 있었기에, 또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나라에 살았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는 것은 활동보조인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또 장애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알려내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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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석 씨/ 사진 권회승 기자 |
양영희, “이 투쟁은 모든 중증장애인들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활동보조인서비스는 간헐적이고, 선별적인 것이 아니라 제도적이고, 안정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제도화되지 않으면, 예산에 따라 언제 또 바뀔지 몰라요.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이렇게 기어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장애인들의 조건입니다. 지원받다 예산부족하면, 다시 집구석에 쳐박혀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동정을 바라고 기어가는 것 아닙니다. 우린 이 투쟁에 이 땅에서 사는 모든 중증장애인들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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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희 씨/사진 권회승 기자 |
문애린, “이렇게 기어서 다리를 건널 필요도 없었겠죠”
휠체어에서 내려 아스팔트 도로를 기어간다는 게 무서워요. 그래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이 바로 활동보조인서비스에요. 그나마 여기 모인 장애인들이야 의지가 있어 이렇게라도 집밖에 나와 투쟁하고 있지만, 다른 장애인은 나올 수조차 없어요. 활동보조인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도 다른 동지들이 이렇게 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도화되어서 우리도 비장애인들처럼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엇이든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잖아요. 활동보조인이 있었다면, 이렇게 기어서 다리를 건널 필요도 없었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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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애린 씨/ 사진 권회승 기자 |
박영희, “방 안쪽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저는 집에 손님이 오면 방 안쪽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방안을 기어다니는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린 오늘 한강대교를 모두가 다 보는 앞에서 기어갑니다.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집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올 수 없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힘들어도 가봅시다. 도대체 오페라하우스가 무엇이길래 몇 조를 들여 지으면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는 못한다고 하는지 힘들어도 가서 직접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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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희 씨/ 사진 권회승 기자 |
박현, “오페라하우스에 들이는 돈으로 당장이라도 제도화할 수 있습니다”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이렇게 기어가는 것과 같다는 장애인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왔습니다. 오페라하우스 건설에 7천억을 들일 돈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할 수 있습니다. 기어서 노들섬에 갑니다. 오늘 오페라하우스 보다 더 가치 없는 장애인의 존재를 알려내려 합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도 이렇게 기어다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되면 뭐가 제일 하고 싶냐고 물어보니, 원하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게 우리의 삶입니다. 바로 장애인의 삶입니다.
39일 동안 시청 앞에서 노숙노성을 하며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서울시로부터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우리도 심심해서 도로점거하고, 투쟁하는 것 아니에요. 오늘 이 투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투쟁 결의하면서, 많이 착잡했어요. 동지들이 이 자리에 기어서 투쟁하고 있는 것 마음 아픈데, 한편으로는 그래도 동지들이 웃으면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게 기분 좋고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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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 씨/ 사진 권회승 기자 |
이규식, “활동보조인서비스는 보편적 복지가 되어야 해요”
지금은 자립생활센터에 있는 장애인들 일부만 활동보조인서비스를 받아요. 방에서 아예 나오지도 못하는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아요?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이들은 계속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정부는 선별적이고, 시혜적으로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공하려하지만, 우리는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보조인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지금도 활동보조인이 있다면,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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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식 씨/ 사진 권회승 기자 |
이승연, “너무 힘들지만, 꼭 해야하는 일이에요”
너무 힘들어요. 힘들고 걱정도 되는데, 꼭 해야하는 일이어서, 안하면 안 되는 일이어서 하는 거예요. 다만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파요. 전 그나마 가끔 앉을 수도 있지만, 기어서 갈 수밖에 없는 동지들도 많잖아요. 제가 보기에도 안타까운데, 평생을 본 부모나 가족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안타깝고, 마음 아파했겠어요? 우리는 오늘 하루 이렇게 하는 거지만, 대부분의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이 없어 평생을 집안에서 이렇게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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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연 씨/ 사진 권회승 기자 |
최용기, “활동보조인서비스는 당당한 우리의 권리입니다”
가고 싶어도, 동지들과 함께 가고 싶어도 전 기어갈 수조차 없는 중증장애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장애인들이 시설과 집에 쳐박혀 살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그 책임을 가족에게만 다 떠넘기고 있습니다. 그러다 가족도 책임지지 못하면, 스스로 자신의 가족을 죽여야 하는 현실이 지금의 한국 사회입니다. 장애인들은 이 사회에 살고 있지만, 이 사회는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우리의 권리임을 알리고 보장받고자 합니다.
2시부터 시작된 이날 행진은 8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행진도중 최진영, 이승연, 박현 씨가 탈진으로 병원으로 긴급하게 이송되기도 했지만, 이날 장애인들은 결국 노들섬까지 행진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