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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고용확대대책에는 뭔가 다른 게 있다. ‘전략’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따라 온다는 것 말고도, 노무현 정부의 고용확대대책에는 앞에 항상 ‘사회적’, ‘사회서비스’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전략’, ‘일을 통한 빈곤탈출 전략’에서 최근 ‘사회서비스 확충전략’까지. ‘사회적 일자리’라는 말에는 언뜻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멋들어진 냄새가 풍긴다.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자 한 개인은 물론 사회의 생존까지 책임진다는 엄숙함까지 묻어난다. 노동자에게 ‘일’을 주어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게다가 그 일은 ‘사회적’이기까지 하니 한국 사회 최대의 화두인 빈곤문제가 금방이라도 해결될 듯 하다. 그러나 과연 노무현 정부의 고용창출전략에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뭔가 특별함이 있을까?
19일 서울대학병원 임상의학연구소 강당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고용확대대책의 핵심인 사회적 일자리 창출전략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정부의 사회서비스 확충전략,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가장 최근 발표된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을 중심으로 정부 고용확대대책의 문제점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함의를 짚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이날 토론회는 공공연맹 사회복지업종본부, 민중복지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 빈곤사회연대, 사회진보연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이 공동 주최했다.
이정호, 99년 1천만→04년 200만→06년 80만 명으로
현정희 공공연맹 사회복지업종본부장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첫 발제를 맡은 이정호 공공연맹 정책국장은 IMF 이후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현재의 참여정부까지 이어져 온 고용확대대책의 난맥상을 짚는 것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현재까지 각 부처별로 발표한 크고 작은 고용확대계획은 10여개를 넘어서고, 범정부적 차원에서 고용확대계획을 수립하고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은 서너 차례이다. 이중 단연 ‘돋보이는’ 계획은 IMF 직후인 1999년 초, 김대중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1천만 개 창출 계획’과 노무현 정부 들어 지난 2004년 범정부적 차원에서 발표된 ‘일자리 2백만 개 창출 계획’.
이정호 정책국장은 우선 김대정 정부의 ‘1천만 개 창출 계획’에 대해 “전체 실업자가 100만 명도 안 되었던 시점에서 일자리 1천만 개를 창출한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고 지적한 뒤 “7년 전의 과오를 씻기라도 하듯, 이후 발표되는 일자리 창출계획은 그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1999년 1천만에서 2004년 200만 명으로, 이번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에서는 다시 80만 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2004년에 정부가 발표한 계획은 2008년까지 진행되는 것인데, 정부는 또 다시 일자리 창출 계획을 내놓았고, 이번에 나온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창출 계획은 2004년에 발표한 계획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며 “정부는 앞뒤도 맞지 않고, 뒤죽박죽 섞인 계획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정부 고용확대정책의 난맥상을 지적했다.
일자리 대책 쏟아냈지만 실업률 제자리,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
이정호 정책국장은 정부의 고용확대정책의 난맥상과 함께 그 정책적 효과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난 해 연평균 실업자 수는 2001년 이후 최대치인 88만7천 명에 달했다. 또 취업준비자로 분류돼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청년실업규모는 3년 전에 비해 15만 명 늘어난 48만 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이정호 정책국장은 “정부는 수없이 많은 고용확대 계획을 발표하는데도 이 나라의 실업률은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점은 그간 발표된 계획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음을 반증한다”며 “청년실업이 전체 실업자의 절반이 넘는 규모라는 점만 보더라도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일자리 확대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일자리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간단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서비스 계량화, 짜깁기를 위한 낡은 관료적 발상"
한편, 이정호 정책국장은 지난 달 20일 정부가 발표한 ‘사회서비스 확충전략’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복지서비스에 대한 접근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사회서비스 공급에 부족한 인력이 약 90만 명쯤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복지서비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지, 계량적으로 얼마나 필요하다고 통계를 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며 “복지서비스에 대한 이 같은 계량화 자체가 짜깁기를 위한 낡은 관료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정호 정책국장은 사회서비스의 공공적 기능을 강조하며 “수익과 이윤을 창출하는 내용이 아님에도, 정부는 80만 명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총량적 발표에만 치중했다”며 “고용확대 계획에서 확충, 창출, 늘리기, 확보와 같은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정부의 발상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최예륜, “‘사회적 일자리’, 신자유주의적 ‘노동연계복지’의 일환”
이어 발제자로 나선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차장은 정부의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 추진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사회적 일자리’, ‘일을 통한 빈곤탈출’ 등 참여정부의 일자리․복지정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가며, 이번 정부의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을 비판했다.
최예륜 사무처장은 우선 정부가 시종일관 고용확대정책의 핵심 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사회적 일자리’에 대해 “기존의 자활공동체 등 빈곤층의 자활을 위한 흐름들을 제도화하는 가운데, 조건부 수급 규정을 두고 복지 수급자에 대한 노동 강요를 정당화하는 논리의 하나로 기능했다”며 “이는 각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장기실업자나 빈곤층에게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는 유럽에서의 사회적 경제나, 제 3섹터와는 개념이 상이하며 노동과 복지를 연계하는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라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최예륜 사무차장이 말하는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은 ‘노동연계복지’로 요약된다. 즉 노동능력 유무에 따라 빈민을 분리하고, ‘취업 가능한’ 빈민에 대한 국가의 원조를 폐지해 이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는 정부 전략의 일환으로서 ‘사회적 일자리’, 그리고 최근 법안이 추진 중인 ‘사회적 기업’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사회정책, 경제성장 과제에 종속․노동조건 하향평준화 종용”
이렇게 봤을 때, 정부 고용확대대책의 성격은 보다 분명해진다. ‘양극화’ 담론을 유포하며, ‘사회적’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있지만,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은 “성장잠재력 확충의 일 요소에 불과하고, 경제성장의 과제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예륜 사무차장은 “이런 상황에서는 금융세계화로 인한 부의 편중의 문제는 언급되지도 않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근로소득의 평준화 논의는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종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예륜 사무차장은 이 같은 기조아래 추진되는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핵심 문제점을 △규모는 늘어나더라도 정부 지원은 축소 △저임금 일자리 △한시적이고 불안정한 일자리 △노동빈곤층을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노동정책 등으로 짚은 뒤 “일자리 창출이 빈곤을 해결하는 방안이라는 논리는 납득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사회서비스 확충전략, 필수적 사회서비스 완전 시장화하겠다는 것”
한편, 이날의 핵심 주제였던 정부의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에 대해 최예륜 활동가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요구가 확대되고 있는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완전히 시장화하여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재정지원방식을 줄이고 소비자에 대한 바우처 지원방식을 강화한다는 것은 겉으로는 서비스 수요자에 대한 직접적 지원의 형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빈곤층이 시장에서의 서비스 구매조건을 갖추도록 하는 조치이며, 경쟁적인 서비스 시장을 통해 제공되는 차별적 서비스 혜택을 정당화하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서비스 시장에 뛰어든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택할 수 있는 방식은 극소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화 전략과 대다수 빈곤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가격경쟁 뿐”이라며 “이는 서비스 수혜자가 겪게 될 차별적 상황을 양산하는 동시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에 대한 심각한 노동권 위협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또 최예륜 활동가는 “보편적 사회서비스 확충이 아니라 규제완화와 시장화를 통한 서비스부문의 확대는 빈곤층이 노동을 통해 빈곤에게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못할뿐더러 서비스 혜택의 차등화를 확산할 것”이라며 “이는 빈곤층이 사회서비스를 상품으로 구매해야 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권에 대한 선택을 제약받는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사회서비스 확충전략, 무엇이 문제인가’(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