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원 기자 |
삼성에스원 '세콤'에서 지난 8월 부당해고를 당한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소속의 조합원 2명이 21일 새벽 6시를 기해 양재동 화훼단지에 위치한 40여 미터 높이의 세콤 대형 광고판에서 7시간여 농성을 벌였다.
좁은 사다리를 타고 광고판 기둥을 오른 이들은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경인본부 소속의 지모 씨와 전모 씨로, "세콤 부당해고 철회하라", "범죄집단 세콤 각성하라"는 글귀가 적힌 광고판 기둥 폭과 같은 너비의 현수막 2개를 앞뒤로 내걸고 기둥에 매달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들이 세콤 광고판에 매달린 지 한 시간쯤 지나자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조합원 20여 명과 민주노총 경기본부 간부들이 도착했다. 농성에 들어간 조합원들은 아래쪽을 향해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해결된다면 여기서 죽어도 좋다, 사장을 불러달라"며 "가정행복 붕괴해버린 에스원을 타도하자", "삼성이 하면 합법이고 노동자가 하면 불법이냐"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조합원 2명이 대형 세콤 광고판 기둥에 매달려 있다./이정원 기자 |
'경비업법 위반' KT텔레캅 캡스는 직접고용, 세콤은 1700명 해고
김오근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위원장은 "경찰의 질의회시 공문 한 장으로 1700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이 해고됐고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이를 삼성측에서 질의했으며 사측의 잘못은 명백하다"면서 "그동안 청와대, 삼성본관 앞에서 집회와 1인시위도 하고 민주노총 집회에 참석하는 등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정당한 투쟁을 했지만 사측은 노동자, 해고자라는 단어를 썼다고 1인당 백만 원, 2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토로했다.
동종업으로서 세콤과 똑같이 '경비업법 위반' 지적을 받은 KT텔레캅과 캡스는 회사에 직접고용됐다. 김오근 위원장은 이에 대해 "삼성은 무노조경영에의 타격이나 경쟁사 후발주자의 성장을 우려해 영업전문직의 비율을 줄이려 했을 것이고, 근본 대책은 되지 않지만 정부가 내놓은 특수고용보호대책을 삼성이 미리 인지하고 4대보험 적용을 기피하려고 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이정원 기자 |
"역시 삼성..." 첨단장비 동원해 농성현장 몰래 촬영 적발
오전 8시 30분경부터는 소방사다리차를 포함한 119구조차량 4대와 구급차, 경찰 병력 100여 명이 도착해 광고판 아래에 있던 조합원들을 에워싸고 에어매트리스를 설치하는 등 강제 진압을 시사하기도 했다. 긴장된 상황이 몇 시간 이어지는 가운데 사측에서 파견된 직원이 맞은편 고속도로 갓길에 차량을 세워놓고 첨단 장비들을 동원해 조합원들을 촬영하는 것이 적발돼 조합원들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사측 직원 차량의 트렁크에서는 몸체가 자유자재로 꺾여 몰래촬영이 가능한 대형 망원렌즈(일명 코브라렌즈)와 각종 도청장치들이 쏟아져 나와 '미행 감시 도청의 고수' 삼성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사측 차량과 함께 오전 10시경 도착한 최중락 삼성에스원 고문은 전 경찰수사반장이라는 직함답게 경찰 간부들의 호위를 받으며 농성장소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억울하니 대표이사에게 우리 요구를 전해달라, 진실을 밝혀달라"는 조합원들의 호소에 "법대로 해"라는 말로 일관해 조합원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 오랫동안 매달려 농성을 벌이던 2명의 노동자들은 위험을 고려한 동료들의 간곡한 설득에 농성 돌입 6시간 40분만인 낮 12시 40분께 자진해산하고 현재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 농성현장을 몰래 촬영하던 사측의 차량에서 나온 장비들/안창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