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의원단은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참으로 잔인하고 참담"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노사관계로드맵의 저지와 노사관계를 민주화시키는 진정한 로드맵을 관철하기 위해 의원 전원이 총력을 기울였으나 안타깝게도 힘의 정치, 수의 정치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평했다. 아울러 "악법을 저지하지 못한데 대해 노동형제들에게 고개숙여 사죄를 올린다"며 "국회가 악법을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처리한 것은 노동자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라 규정했다.
민주노총도 8일 "민주노동당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노동법 개악안을 강행처리한 것에 대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며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을 진행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11일부터 조준호 위원장 단식 및 총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 로드맵 관련 노동법 개악안이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8일 저녁 민주노총의 국회앞 투쟁/참세상 자료사진 |
"민주노총이 오히려 투쟁수위 낮추는가"
그러나 노동법 개악안의 환노위 전체회의 통과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노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전국활동가조직준비위원회'는 9일 발표한 '비정규개악 강행에 이어 노사관계로드맵 처리가 강행되는 작금의 사태에 대한 성명서'에서 노무현 정권 퇴진과 열린우리당·한나라당의 해체를 주장하는 한편 "열우당의 기만적 노사관계로드맵 수정안에 부응하여 투쟁전선에 혼란을 초래한 민주노총 집행부와 민주노동당을 비판한다"는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은 7일 밤 11시 30분경에 소집한 산별대표자회의에서 민주노동당의 요청에 따라 노사관계로드맵 수정안의 수용문제를 다뤘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에 수정 제안한 안은 확대한 필수공익사업장 범위의 일부 축소, 대체근로 범위를 50%로 축소,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 축소범위 일부 조정 등, 주지하다시피 '조금 완화된' 노동법 개악안이었다.
전국활동가조직(준)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노총 집행부는 8일 오전 7시 투본대표자회의, 다시 당일 오전에 재차 투본대표자회의 소집, 오후 3시에 또 한 차례의 투본대표자회의, 공공연맹과 상의없는 필수공익사업장노조 대표자회의 소집 등을 통해 "집요하게 수정안을 수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전국활동가조직(준)은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노동자 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이 열우당의 수정안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하지 않고 수용여부 결정을 민주노총에 넘긴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며 "당의 물리력을 동원하여 노동법 개악안 처리를 결사저지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수용으로 '원만한 처리'를 원한 것은 아닌가"라고 강도높은 비판을 펼쳤다.
아울러 지도부가 수정안 수용여부를 위해 회의를 거듭하는 동안 7-8일 국회 앞 상경투쟁대오가 방치된 점, 8일 저녁 국회 앞 투쟁 마무리에서 조준호 위원장이 "더이상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돌던지는 투쟁은 그만하고 현장을 조직하자"고 발언한 점 등을 들어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하는 집행부라면 간부들의 선도투쟁이라도 조직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으면 언제 투쟁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에 대해 "형식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데 그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얄팍한 정치놀음을 중단하고 의원직 사퇴를 걸고 투쟁하라", 단병호 의원에 대해서도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으로서, 전노협 초대 위원장이자 민주노총 전 위원장으로서 작금의 사태에 직면하여 의원직 사퇴를 걸고 투쟁하라"고 제안했다.
민주노총 집행부에 대해서는 "일련의 상황을 볼 때 집행부는 조합원 대중으로부터 준엄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남은 기간에 위력적인 총파업 투쟁을 조직할 능력이 없다면 강력한 선도투쟁이라도 조직하라, 그간 집행부가 오히려 투쟁수위를 낮추는 데 주력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라면서 "의지가 없다면 책임지고 물러나라", "삭별결의까지 했으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투쟁을 실천하라", "단식투쟁으로 생색내지 말고 대중투쟁을 조직하라"고 주문했다.
▲ 12월 7일과 8일 진행된 상경노숙투쟁 기간 동안 민주노총은 3번의 투본대표자회의를 소집해 열린우리당이 제안한 수정안 수용여부를 논의했다./참세상 자료사진 |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에 책임전가 말고 단호한 투쟁하라"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노동자의힘'도 1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의 동요가 투쟁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의힘은 "국회 일정에 종속되어 방어적 총파업 선언과 철회를 반복해왔던 것과는 달리 투쟁을 시작하는 듯 했으나 노동자대회를 거치면서 기대는 절망으로 변했고 전국적 총파업은 커녕 집회투쟁조차 힘있게 조직하지 못했다"고 민주노총 지도부를 비판했다.
아울러 "'수정안'에 대해 사실상 수정안을 수용하자는 입장과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인 민주노총 지도부는, 왜 수정안 수용불가 입장이 모아진 투본회의를 3번에 걸쳐 진행했는지, 왜 필수공익사업장노조들을 따로 불러 의견을 물었는지 현장의 노동자들은 납득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의 행보에 대해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라며 "노동자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정당이라면 민주노총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수정안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열우당의 기만적 행위를 폭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의힘은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지도부의 타협적 행보로 투쟁전선이 이완된 것이 사실이고, 일부로만 제한되어 있는 총파업투쟁 상황 극복에 악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나 이를 이유로 투쟁을 방기할 수는 없다"며 "분노를 담은 거리투쟁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노동악법 폐기투쟁을 조직하자"고 주장했다.
이같은 제기들이 속속 수면 위로 드러나고 당분간 '노동법 개악 책임론'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집행부의 행보에 자타의 냉정한 평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