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한 수도권지역율동패

“노동절 무대에서 못 만났지만 투쟁의 거리에서”

서울에서 진행된 117주년 노동절 맞이 노동자대회는 싱거운 상징의식으로 마무리되었다. 각 종 구호가 담긴 긴 풍선이 이유 없이 집회 참가자들 머리 위로 날아다녔으며, 참가자들은 그래도 열심히 그 풍선을 머리 위로 쳐 올렸다.

이렇게 진행된 상징의식은 원래 현재의 민주노총을 투쟁으로 새롭게 일으켜 세우려는 문예단위들의 노력이 배제된 결과였다.

  참가자들 머리 위로 날아오른 풍선들

수도권에서 율동으로 투쟁을 만드는 ‘수도권율동패모임’은 4월 3째 주 경 민주노총 문화국으로부터 서울 노동자대회 본대회의 마지막 상징 문선을 제안 받았었다. 비록 한 주라는 짧은 시간이 남은 상황이었지만 노동절을 더욱 의미 있는 노동자들의 날로 만들기 위해 이를 받아들이고 준비를 시작했다.

깨어지는 민주노총의 깃발, 그리고 다시 세워야만 할 깃발

수도권율동패가 본대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징의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34명의 율동패 활동가들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무대 뒤에는 민주노총 깃발이 배경으로 걸려있다. 노동자문예창작단 버전의 ‘가자 노동해방’이 흘러나온다. 97년 이후 노동자들의 삶이 무대를 채운다. 97년 노사정 합의로 통과된 정리해고제 얘기가 나오고 민주노총 깃발의 한 조각이 깨어져 나간다. 850만 비정규직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또 한 조각이 깨어져 나간다. 03년 눈물로 보내야 했던 열사들의 이름이 나오자 또 한 조각이 깨어져 나간다. 강승규 前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건이 언급되자 또 하나의 조각이 깨어져 나간다. 그리고 2007년, 비정규 관련 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 통과로 민주노총의 깃발은 사라진다.

무대를 가득 채운 율동패 활동가들은 이런 혼란의 시대를 온 몸으로 표현한다. 흔들리고, 깨지고, 사라지고... 가자 노동해방의 전주가 고조되자 집회 참가자 맨 뒤에서부터 다시 민주노총의 깃발이 무대를 향한다. 깨져버린 민주노총의 깃발보다 더 크고 더 강한 깃발이 집회 참가자들의 머리를 넘어 무대에 도착하자 율동패 활동가들은 이것을 다시 무대에 걸고 “가자! 노동해방”을 외친다. 그리고 무대를 가득 채운 34명의 활동가들은 전원 쇠파이프를 들고 다시 투쟁해야 함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우리 앞에 있음을 온 몸으로 알린다.

‘철탑 위에서’라는 노래가 대학로를 가득 채운다.

“그대여 아는가! 그 날의 그 함성” “숨막히도록 까마득한 철탑 위에 노동자 가슴에 노동자 피가 흘러 프르른 저 하늘 높이 빛나는 깃발 되어 또 다시 타오르는 그대 위대한 노동자”

  수도권지역율동패는 본대회가 아닌 사전대회에서 문선공연을 했다.

“패배적이라 안 된다”

그러나 15분의 공연 연출안은 민주노총 중앙에서 거부되었다. 민주노총 중앙은 이런 수도권율동패의 공연이 마치 내부적 요인 때문에 민주노총이 깨지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내서 패배적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며 신자유주의 같은 외부적 요인을 깨는 방식으로 연출안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수도권율동패는 이를 받을 수 없었다.

연출안을 마련했던 박현욱 선언 활동가는 “올해가 87년 대투쟁 20주년, 97년 대투쟁 10주년인데 이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앞으로 새롭게 민주노총, 민주노조 운동을 만들어가는 내용을 담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박현욱 활동가는 “우리 내부를 냉정하게 깨부수고 다시 깃발을 끌어올리는 희망을 담고자 했으며, 이 내용은 현 집행부가 주장하는 민주노총을 현장조합원에게, 민주노총 재창립과도 맞아 떨어지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라고 기획의도를 밝히고, “연출단 회의에서도 이가 받아드려졌었는데, 26일 기획연출단회의에서 민주노총 문화국장이 최종적으로 민주노총 중앙에서 내용의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결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2004년에도 2005년에도... 2007년에도

수도권율동패의 공연이 거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5년 노동절에서도 수도권율동패가 짠 연출안은 거부된 바 있다. 2004년에는 11월 노동자대회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사회적 합의’라고 쓰여진 대형 천을 온 몸으로 찢었다. 당시에도 민주노총 문화국 측은 이 공연을 무산시키려 했고, 수도권율동패는 ‘사회적 합의’라고 쓰여진 천을 따로 준비해 결국 이것을 찢는데 성공(?)했다.

당시에도 현장 문예패 공연에 대한 민주노총의 사전검열이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또 다시 발생한 것이다. 수도권율동패는 ‘2007년 메이데이에서 또 다시 문선을 하지 못하게 된 수도권지역율동패의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민주노총 문화국에서 문선요청을 할 때 과거 민주노총 중앙 집행부에 의해 현장 문선대들이 준비한 문선 공연 내용이 거부당했던 것을 이야기하며 이번엔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대답을 받았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수도권율동패는 “10년의 성과도 있었는데 너무 패배적으로만 비춰지지 않을까하는 점을 고민했다”라며 “하지만 철저하게 스스로가 깨어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의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라고 그간 고민들을 밝혔다.

이런 수많은 고민과 자신을 깨버릴 수밖에 없는 고통을 겪은 결과로 나온 공연은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수도권율동패는 본대회가 아닌 비정규, 특고 노동자 관련 사전대회에서 문선 공연을 했으며, 본대회 내내 “투쟁은 패배할 수 있어도 투쟁하지 않는 자, 이미 패배한 것이다”라고 적힌 플랑카드를 들고 이곳 저곳 뛰어다니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선동했다.

  수도권지역율동패는 열심히 기동선전전을 진행했다.

“더 이상 민주라는 말에 먹칠하는 것 볼 수 없다”

수도권율동패는 말했다.

“이번 문선 검열과 통제의 과정을 지켜보며 현 집행부가 도대체 왜 ‘조합원을 민주노총의 주인으로’, ‘민주노총 재창립’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당선되었는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민주노총의 민주라는 말에 먹칠을 하는 이런 비민주적이고 관료적인 행태를 그냥 두고만 봐서는 안되었기에 또 다시 동지들에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노동절 대회의 무대에서 동지들을 힘찬 문선으로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투쟁의 현장에서 힘찬 문선과 투쟁으로 함께 하는 수도권지역율동패가 되겠습니다”

“5월 비정규직 개악법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는 투쟁에서, 그리고 6월 한미FTA를 박살내는 투쟁에서 동지들과 이 거리를 함께 지키겠습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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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 노동절 , 수도권율동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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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 담당부서가 그런거지 지도부가 그런걸로 하면 안돼지 않남여? 보다가 한말씀 드림니다요. 암튼 문화선전국 이쉐이들 ㅉㅉㅉ

  • 파견법철폐

    에~~휴~~민주노총 그만 둬야 것당~~힘도 않나고

  • 몸짓

    정확히 얘기하면 수도권본대회 상징의식을 제안받은 것이 아니라, 수도권본대회 율동문선을 제안받았던 것입니다. 제안을 받고 수도권지역의 율동패들이 모여 올해 메이데이에 어떤 내용을 담을까 고민하면서 그런 기조와 연출안을 만들었습니다. 헌데 수도권대회 상징의식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던지라 기획연출단 회의에서 율동문선대의 기획안이 상징의식으로 확장된 것이지요. 그리고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얘기한 김에 마저얘기하면 문화국장이 아니라 문화부장이랍니다.
    그리고 문화미디어실도 그렇겠지만, 지도층에서 거부된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습니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것 뿐입니다.

    집회에 함께하면서 여러가지로 많이 속상했습니다. 유인물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이렇게 투쟁하는 동지들이 많은데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정말 가슴아팠습니다.
    그리고 올해 메이데이 판이 뻔하니까 집회에 결합하지 않겠다고 한 주위 활동가동지들이 많아서 더욱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 내부의 문제들..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지만 말고, 함께 소리높여서 바꿔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동지들!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