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옮기는 것 뿐입니다"

[인터뷰] 출국 앞둔 아노아르 전 이주노조 위원장

  지난 21일 만난 아노아르 이주노조 전 위원장

지난 21일 오후, 출국을 5일 앞두고 있는 아노아르 동지를 이주노동자방송국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 달 전 방송 녹음을 부탁받고 처음 방송국에 왔을 때도 ‘이제 곧 나라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었지만,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방송국의 새 녹음실에서 ‘아노아르의 세상보기’란 프로그램의 첫 방송을 녹음했었다.

아직도 일 년 동안 보호소에서 보낸 후유증으로 ‘복잡한 생각을 조금만 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었다. 아직도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도 했었다. 한국에서 11년간 일하며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투쟁을 해온 아노아르 동지. 일 년간 보호소 생활을 하며 얻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여전히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한국정부는 그에게 비자 연장을 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면, 더 ‘큰 일’을 당할 것이라고 협박을 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나라로 보내는 것’을 결정하였고, 오늘 22일 오후, 아노아르 동지의 환송식을 연다고 한다.

법무부는 한 이주노동자 활동가를 일 년간 보호소에 가둬 놓고, 정신병을 얻게 한 다음 치료도 제대로 해 주지 않은 채 이제 출국 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단체들도 뻔히 그 사정을 알면서 그런 현실 앞에 항의조차 하지 않고 그를 보내려 하고 있다.

그는 결국 지난주 월요일 ‘26일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샀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민단체가 마련한 환송식을 하루 앞두고 그를 만났다.

어떻게 나라로 돌아갈 결정을 하게 되었나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집안, 건강, 비자 문제 등입니다.

건강상태는 어떤가요?

기억력이 0%입니다. 조금만 신경 써도 머리가 많이 아픕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잠이 잘 안 옵니다. 월요일에는 병원에 다시 약을 받으러 가야 합니다.

의사는 뭐라고 하나요?

약도 계속 먹고,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했어요. 쉽게 건강이 좋아지지는 않는다고, 마음을 편하게 먹고, 즐겁게 지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에 의사가 약을 먹더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갖지 못하면, 약이 별 소용이 없다고 했다고 한 적이 있다.)

의사와 상담은 얼마나 자주 하나요?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습니다.

집안의 문제는 어떤 것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했었는데요.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오랫동안 이주노동자 운동을 함께 해 왔고, 명동성당 농성투쟁 때도 샤말 단장이 납치되었을 때도 농성투쟁단장을 했었습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초대 위원장으로 일 년 간 보호소에서 투쟁하여 결국 일시보호해제로 나온 것은 이주노동자 운동에서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라로 가는 마음이 어떻습니까?

힘들어서 포기하는 것 아닙니다. 다른데 가서 계속해서 활동할 겁니다. ‘자리를 옮기는 것’뿐입니다. 좋은 일 만들어서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노조에 관심 갖고 있는 조합원, 활동가들이 있어, 노동조합이 잘 될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주노조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한국사회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은 한국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결혼을 해서 살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행복 할지 모르겠지만, (결혼을 해서도 계속해서)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바꿀 계획이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으로 노동자로 살 권리, 문화 알리고 차별 없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 운동의 목적입니다.

그동안 이주노동자 운동을 통해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여러 문화에 대해 관심도 많아졌습니다.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사회 조직들이 더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 아니니까. 그렇지만, 노조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비자 등 한국의 여러 가지 상황이 나쁘지 않다면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갈 결정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어떤 조직이든, 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잘 되는 조직이라면 긴 안목으로 다음 '세대(generation)'를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이제 ‘안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지고 노조를 앞에서 이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책임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내가 없어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결의를 가진 조합원들이 잘 만들어 갈 것으로 믿습니다. ‘나만 끝까지 책임지고 가겠다’는 생각은 조직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도 이제 아시아 차원의 국제연대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나라로 돌아간 사람들을 다시 조직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일을 제가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들을 책임지고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신의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나라로 돌아가면 한편으로 오랫동안 못 만났던 가족들을 만나게 되니 기쁘지 않나요?

아직 떠날 준비도 안 되어 있어 많이 불안합니다. 아는 사람들에게 (제가 떠난 다는 것을) 많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떠나게 되니 할 말이 없어서요.

만나지 못한 조합원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요?

그동안 저를 많이 사랑해 주고, 함께 하고, 생각보다 많이 아껴준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노동조합 게시판을 통해 조합원 동지들에게 글을 쓰려 합니다. 동지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노조에 남아 이주노조를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많이 연대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회, 이주노동자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 알려주고, 이주노동자 권리 찾기 위해 연대해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투쟁에 승리하는, 노동자로 살 수 있는 시대 올 때까지 많이 연대하고 지지 부탁합니다.

힘들 때, 어려울 때, 활동가들에게 힘 실어주고, 챙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할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활동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방송국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려주지 못하는 현실을 방송을 통해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전 세계에 알려주고, 많은 지지 받을 수 있게,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방송은 언제나 ‘힘 있는 것’입니다. 오래 오래 좋은 일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이 주전 '아노아르의 세상보기'로 첫 방송을 했던 아노아르 전 위원장이 녹음실에 다시 앉아 보았다.


(전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