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한 집' 구하는 ‘홈리스’들이 바라는 주거권운동은?

[활동가 100명에게 들은 주거권운동 이야기](3)

“평생 집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아야 한다는 게 완전 블랙코미디”이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앙케이트에 답변을 보내준 활동가들도 대부분 집 걱정에 그늘이 져있다. 전세 혹은 월세를 또 올린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독립하고 싶은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등 귀가길 발걸음을 무겁게 할 고민들이 쏟아진다. 주택은 상품이 아니라거나, 1가구 1주택이라거나 좋은 얘기 많지만 “누가 집 소유하라고, 준다면 낼름 가질란다”는 얘기 앞에 주거권운동이라는 말은 머쓱하기만 하다. 누구나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운동

활동가들 자신이 겪는 문제와 주거권운동이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답변도 많았지만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가능성에 기대가 모이기도 했다. “어디에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가 각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일 테고 주거에 대한 계획은 “‘어떤 삶의 지향을 가질 것인가’와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주거권운동은 “치솟는 집값에 나 역시 집을 장만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집 장만이라는 목표에 매진하다보면 삶의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생각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활동가들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

그래서 “자신의 주거 상태가 권리가 박탈된 상태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이나 "공간을 꼭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증명할 수 있는 활동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램은 주거권운동의 중요한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보편적이고 정치적인 의제로 만들어야

그러나 많은 활동가들이 주거권은 아직 정치적으로 충분히 벼려지지 않은 의제라고 여기는 듯했다. 많은 활동가들에게 주거권은 여전히 철거, 빈곤 등에 딸린 부분적 의제로 여겨졌고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동안 주거권과 관련된 문제는 오히려 “재산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침해받으면 안 되는 것’으로서만 얘기된 측면”이 있고 “사회운동의 수면으로 떠오르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사회운동은 개발사업이 추진될 때 “그 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임대주택이 있어야 하는 이유조차 설득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주거권이 보편적인 권리로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하는 답변들이 적지 않았다. “집 없는 서민들이 집 부자를 질시하고 이런 소유구조를 개탄하면서도 집을 소유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게 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생명들에게도 함께 할 기회를

새로운 담론은 반자본, 생태의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담아내야 한다는 제안이 많았다. “돈이 있어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패러다임에서 주거, 식량은 사회구성원들이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공공재로서의 주택, 거주 공간으로서의 주택 개념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면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주거의 문제를 거주권의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사회구조의 변혁을 위한 전체적인 접근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한편, “주택 내구연한이 지나고 나면 쓰레기 더미”가 되는 아파트단지들로 채워지는 현실에서 “환경파괴와 자원고갈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등 생태적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담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즉, “공간과 계급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새로운 담론의 생산과 확산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그동안 살 땅을 빼앗긴 다른 생명들에게도 함께할 기회”를 줄 수 있는 생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먹고 살 것을 고민했더니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더라

자연스럽게 주거권운동에 대한 기대는 지역운동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수 십 년 동안 익숙해져 온 사람들과의 관계, 지역의 문화, 역사, 자연스런 환경 등 장소로서 기억되는 공간들이 편리함을 이유로 완전히 무시되어온” 현실에서 “주거의 권리는 단순히 내 집, 내 공간을 넘어서는 지역과 마을, 공간에 대한 권리로서 확대 인식되어야” 한다. 그런 만큼 주거권운동이 지역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주거권운동의 다양한 의제들이 반드시 지역으로 수렴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최근 사회운동에서 지역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경향이 투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맥락에서 지역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이 주거권을 적극적으로 의제화 할 필요도 있을 듯하다. “지역에서 먹고 살 것을 같이 고민했더니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주거권운동과 지역운동이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집 안’에서의 정치도 담아내야

이때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균질하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주거 공간의 독점은 자본가와 철거민이라는 계급 관계에서뿐 아니라 일상적인 권력 관계에도 적용”된다. 가사노동을 비롯한 재생산의 책임이 여성에게 전가되고 청소년, 여성들이 가정 안에서 폭력에 노출되는 등 주거권운동은 ‘집 안’에서의 정치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중산층 정상가족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주거 자원이 분배”되는 현실에서 가족을 전제하지 않는 ‘개인’의 인권 차원에서도 주거권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또는 ‘누구와’ 사느냐”, 즉 다양한 공동체들이 “기초적인 생활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원”이라는 측면에서 ‘집’을 다루어야 한다. 또한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살만한 집’의 조건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도 모아야 한다.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차이에 열려있는 보편성을 담지하도록 주거권의 개념 자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햇빛 아래 화분 내어 놓을 집 하나’, 복덕방에서 구해보자

결국 실천의 문제일 것이다. 활동가들은 아파트 광고를 바꿔야 한다는 아이디어에서부터 주거권에 대한 교육, 대중적이고 급진적인 직접행동의 조직, 공동주거의 실험 등까지 다양한 방향의 실천을 제안했다.

한 청소년 활동가는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기회도 없었던 것 같다”고 하며 아쉬움을 토로했고 어떤 이는 사회운동 주체 스스로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조 간부들의 부동산 투기를 저지하는 싸움”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따끔한 지적도 있었다. 이번 앙케이트에서 노동운동진영의 활동가들 답변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 다양한 영역에서의 인식 차이들을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햇빛 아래 화분 내어 놓을 집 하나”라는 소박한 꿈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하나는 건넌 것이 아닐까. “주체형성과정이 또한 ‘주거권’이라는 개념을 사회화시켜가는 과정”일 것이라는 말처럼 주거권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권리이며 바로 나의 일상의 문제가 될 때” 많은 활동가들이 바라는 주거권운동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고민들이 8월 31일에 열릴 '살만한 집을 구하는 홈리스들을 위한 복덕방'에서 흥겹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앙케이트 관련 질문

-귀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집과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인지, 또한 현재 집/주거와 관련해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입니까?

-누구나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지금 한국의 사회운동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주거권운동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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