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졸 학력을 서라벌예대 중퇴로 속인 한때의 자칫 실수로 인하여 25년 동안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뭐 당사자야 괴로웠겠지만 이현세 씨의 만화를 즐겨보는 사람들 가운데 그가 서라벌예대를 중퇴했기 때문에 그의 만화를 각별히 재미있게 보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만화만 잘 그리면 그만인 것을, 천하의 만화가 이현세 씨도 졸업도 아닌 중퇴의 학력으로 속였을 정도였다면 그가 지녔던 학력 콤플렉스가 얼마나 컸던가를, 그리고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가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 동국대 신정아 씨 학력 위조사건은 잘못된 것이지만, 한 개인의 엽기적인 사기행위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학벌주의에서 나아가 교육의 불평등과 함께 근본적으로 빈곤의 대물림으로까지 고착화 되어지는 것으로 읽혀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얼마 전, 역시 한 일간지의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를 다룬 기사를 살펴보면, 위와 같은 주장이 결코 비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부의 2005년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에 따르면 고졸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대졸 이상 임금은 154.9로 1.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지난해 중앙고용정보원의 청년패널 자료에서는 실업계고 졸업자의 월 평균 임금은 95만 원으로, 인문계고 졸업자(114만 원)보다 낮았으며, 취업률도 3.3%포인트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서울대 신입생 10명 중 약 4명의 아버지 직업이 전문.관리직 의사.법조인 등 전문직이었고, 기업체 고위 간부 등 관리직에 해당하는 학생의 비율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듯 학벌이 개인의 경제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라는 것이다.
하긴 누군가는 학벌을 신계급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쥐뿔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학력을 팔아 계층을 상승시키는 것이 이사회에서 소위 잘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만연해 있는 잘못된 문화는 학연.지연의 패거리 문화로 변형되거나, 학벌이 없으면 얼굴이라도 받쳐줘야 한다는 외모지상주의로 또 다른 새끼를 치고 번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굴절된 문화들은 장애 및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을 낳고, 결국 사람과 사람간의 소외와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불평등이 만연해 있는 이상 동국대 교수 신정아 씨의 학력 조작과 같은 사건은 빙산에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어느 사회보다도 운동 진영 안에서는 학벌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의 고졸 학력은 한때 구로지역으로 노동운동을 하러 취업을 할 때도 유리하게 작용을 하였던 것 같다. 그 시절 웃기는 이야기 한 토막 하자면, 90년대 초 남산에 있는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애들이 내 학력을 가지고 폭력까지 써가며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서울 강북에 있는 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믿지를 않는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라고 너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생난리를 피는 것이다. 기분은 좋드만.
걔네들 생각에 성명서나 유인물 같은 것을 쓸 정도면 최소한 대학은 나와야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뭐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는 나보다 학력이 안 되어도 성명서 유인물쯤 작성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뿐더러 유명대학을 나온 이들보다 더 똘똘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력과 관련해서 뜨끔한 적도 있었는데 아들 녀석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 녀석이 큰 소리로 아빠는 어느 대학을 나왔냐는 것이다. 순간 나는 좀 당황하여 기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조용조용히 아빠는 학창시절에 인생에 대한 남다른 고민이 많아서 뭐 대학은 못가고 어쩌고저쩌고... 밥 먹자 응?
식사를 하는 내내 머릿속으로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하게 들었다.
녀석이 커서 “아빠 나 대학 안 가고 공장 가서 노동운동 할꺼야” 하면?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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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기 님은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으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