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연대, 변혁 사회운동 포럼’ 둘째 날인 1일(토) 3시 성균관대학교에서는 해외 한국기업의 노동자들과 한국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한데 모여, 해외 한국 자본의 실태를 고발하고, 해외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한국 기업의 노동탄압 및 인권 유린에 대한 대응을 모색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제조업 진출이 활발해지고, 한국 자본의 해외투자 생산액이 1990년대 들어서는 자본의 해외진출이 외국자본의 국내진출을 초과하게 되어 한국의 사회운동에서도 여기에 대한 대응이 긴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재 많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섬유, 의료, 신발, 전자 등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동남아, 베트남, 중국, 중남미 지역에서 생산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기업도 자동차 및 중공업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외 진출을 활발히 하고 있다.
"해외진출 늘어날수록, 인권문제 양상도 다양화"
그러나 해외 한국기업의 노동인권 침해사례 유형 및 사례발표에 나선 최미경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에 따르면, “이런 한국 기업의 투자가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을 하더라도 강제노동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자금을 대고 대우 인터네셔널이 공사를 하고 있는 ‘마닐라 남부 통근열차 프로젝트’에 대한 현지주민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국민의 세금인 ‘공적 개발원조(ODA)'를 활용해 대우 자본이 진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오히려 투자국인 필리핀에서는 “철로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쫓겨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미경 사무국장은 “한국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수가 늘어날수록, 인권문제의 양상도 다양해 지고 있다”며 한국 기업 문제에 대한 관심을 요청했다.
필스 전, “농성하던 여성 눈가린 채 도로에 버려”
이번 워크샵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필리핀 여성 노동자들의 증언이었다.
워크샵에 참가한 필리핀 청원 패션 노조 집행위원장 플러리는 “파업을 시작한 후 사용자들이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 협상에 나서는 대신 피켓라인을 부수고, 출입증을 압수했으며, 농성자들에게 전달되는 음식을 막았다”며 현지 한국 기업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을 고발했다. 필리핀 현지 청원 패션 노동조합은 필리핀에서 정한 법적 절차를 거쳐 노조설립신고를 한 합법적 노동조합이다.
플러리는 노동조합이 “합법적인 파업을 했지만, 기업주는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시켰다. 해산당한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수출자유지역 경찰들에 의해 오히려 형사고발을 받았다”고 전했다.
필리핀 현지 기업들은 파업을 위해 부패행위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발했다. 플러리는 “기업주가 노동부에 노동조합 허가를 취소하라고 진정했고, 이렇게 되면 모든 파업이 불법이 된다. 사용자측에 유리한 결론을 얻기 위해 루머를 흘리고 30만 페소(600만원)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에 ‘(주)일경’을 본사로 두고 있는 필스 전 노조 집행위원장인 네를리도 유사한 일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네를리는 “파업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들이 해고되었지만, 필리핀 법에 따르면 합법적 노동조합의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해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왜 정부기관이 법을 집행하지 않고, 이 법을 가지고 조작하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필리핀에서 노동상담을 하고 있는 활동가 세실은 필스 전이 “8월 6일 새벽 필스전 공장 앞 농성장에서 자고 있던 여성 노동자 2명을 괴한 10명이 테이프로 팔다리를 묶고 눈을 가린후, 이들을 트럭에 태워 경제자유구역 옆에 위치한 고속도로 변 웅덩이에 두 사람을 던지고 떠났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해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노동자연합 조직활동가도 한국 기업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 자신도 한국인이 투자했던 빅토리아 가먼트 노동자이기도 했던 수하르토 조직활동가는 인도네시아의 한국기업들이 정부와 결탁해 노동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노동법을 어기고도 버젓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출처: 청원 공장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플로리 집행위원장] |
“못사는 나라와의 연대는 그 사회운동의 바로미터”
"민중적-민주적 규제" 대안으로 제시돼
여기에 대해 장대업 아시아 다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ATNC) 캠페인 코디네이터는 아시아 초국적 기업 투자의 특징을 살펴보면, 아시아에서 아시아로 투자하는 비율이 높다며, “아시아가 부각되는 이유는 아시아에서 자본의 회전속도, 시장의 넓이, 노동착취가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특징을 분석했다. 아시아 지역이 초국적 기업의 투자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장대업 코디네이터는 “노동비용을 억제하고 사회적 민주화를 파괴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낮은 비용을 찾아간 만큼 투자한 사회의 제도적 장치를 파괴하면서라도 이윤을 쫓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장대업 코디네이터는 이런 투자자들이 하는 제도적 파괴행위가 “IMF, 세계은행 등이 하는 일과 똑 같다”고 설명했다.
장대업 코디네이터는 이런 아시아 초국적 기업에 대한 대응의 방향으로 ‘민중적-민주적 규제’를 제시했다. 장대업 코디네이터는 ATNC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ATNC가 “자본 수출국과 수입국 사이의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의 연대를 이루어내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런 활동을 통해 자본의 파괴적인 행위들을 개별기업 안에서건 국가적인 수준에서건 양국 노동자와 민중의 힘에 근거를 둔 규제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소비자 운동이 자율적이기 때문에 강제력이 없다는 지적과 노동자들을 대신하는 ‘대리주의’의 문제를 한 발 넘어서는 주장이다.
아울러 장대업 코디네이터는 “못사는 나라와의 연대는 그 사회운동의 바로미터”라며 한국의 많은 사회운동단체들이 해외 한국기업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토론을 통해 해외기업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한국 사회운동의 철학적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도 공감했다. 이제 해외 한국 기업의 노동권, 인권 유린의 문제를 소수의 전문가들만의 고민을 넘어 전체의 문제로 끌어안기 위한 한국 사회운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