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16일 ‘철도공사의 손배소 즉각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철도공사 관련 기사를 쓰면 형사고소나 손해배상 소송을 각오해야할 것이라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며 “언론 길들이기를 위한 악의적 의도의 묻지마 아니면 막가파식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철도공사의 언론탄압 저지’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구성할 계획이다.
![]() |
▲ 언론연대, 인터넷기자협회, 인터넷언론네트워크 등 언론단체들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철도공사의 손배소 즉각 철회 및 이철 사장 퇴진을 촉구했다. |
이날 기자회견은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되었으며 언론연대 등 언론단체를 비롯해 전국철도노동조합과 KTX 승무원들이 참석했다.
철도공사, ‘프레시안’ ‘참세상’에 ‘허위사실 보도 및 유포’ 손배소 제기
철도공사는 지난 9월 26일과 13일 ‘프레시안’, 여정민 기자와 ‘참세상’ 발행인, 이꽃맘 기자를 상대로 각각 5천 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 9월 28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프레시안이 소위 ‘전 KTX 승무원 문제’와 관련하여 약 2년 간에 걸쳐 총 78건의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수들의 주장인 ‘코레일의 취업사기’라는 허위사실을 여과 없이 적시하고, ‘KTX 승무원 등 직접 고용된 비정규직들을 기업들이 속속 외주화했다’는 식으로 보도하여 마치 코레일이 전 KTX 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한 뒤 외주화 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등 코레일과 임직원의 명예를 악의적으로 훼손했다”고 소송제기 이유를 밝혔다.
문제가 된 ‘프레시안’ 기사는 지난 2006년 11월 28일자 ‘“KTX문제, 철도공사의 ‘취업사기’에서 시작”’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기사는 ‘KTX 승무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교수모임’이 주최한 기자회견을 기사화한 것이다. 프레시안은 이 기사에서 “이날 기자회견은 철도공사와 KTX승무원들의 주장이 다를 수가 있으며 KTX승무원들이 무엇 때문에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싸울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며 “KTX 승무원 문제는 철도공사의 취업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기자회견 참석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사실관계를 벗어난 보도나 허위사실 유포 등의 행위는 코레일과 임직원들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므로 더 이상 방치하기가 어렵다”며 “앞으로도 허위사실 보도 및 유포가 분명하다면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리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사법적 판단을 구할 계획”이라며 프레시안의 보도를 반박했다.
지난 9월 13일 제기된 민중언론참세상에 대한 철도공사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경우도 ‘허위사실 보도 및 유포’ 혐의가 씌워졌다. 철도공사는 민중언론참세상으로 보낸 소장에서 “참세상의 이꽃맘 기자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성명서을 인용 보도하여 원고 등의 명예를 악의적으로 훼손하는 내용이 인터넷 망을 타고 급속하게 전파되도록 하였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8월 23일 실린 ‘이철 사장 퇴진 찬반 투표에 지사장들 “금품살포”’라는 제목의 기사를 문제 삼은 것으로 이 중 “철도공사가 금품살포 등으로 투표를 방해하고 있다는 노조의 문제제기”를 성명서를 통해 인용보도한 부분과 “이철 사장은 지사장과 단장에게 사표를 강요하고, 사표를 저당 잡힌 지사장은 자신과 지사 간부들을 이철 사장의 방패막이로 현장에 내몰고 있다”라는 철도노조 성명서 인용 부분 등을 문제 삼았다.
철도공사가 '명예훼손'이라며 근거삼은 해당 기사는 8월 23일 등록되었으나 유원균 철도공사 언론담당팀장이 "'하계수송 격려금'이 지급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이철 사장 퇴진 찬반투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며 "'금품살포'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해 옴에 따라, 최초 등록시간에서 6시간여가 지난 후 '정정보도문'과 함께 수정돼 현재는 "철도공사 '하계수송격려금' 지급에 노조 "금품살포" 주장"이라는 제목으로 등록돼 있다.
노동자 손배가압류 이어 언론에까지....“언론 길들이기”
그러나 언론연대 등 언론단체들은 배달호 열사 등 노동자들의 죽음을 불렀던 손배가압류에 대해 노조에서 ‘신종노동탄압’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유사하게 철도공사의 손배소 제기가 ‘신종언론탄압’, ‘언론 길들이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손배소를 통한 언론탄압의 시작을 알린 사람으로 남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철도공사의 손배소 제기가 개별 언론사만이 아닌 언론 전체의 문제임을 시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사람이 바뀔 수 있나. 바뀌어도 이렇게 바뀌어도 되는건가. 민주화투사로 언론자유와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이철 사장이 되려 언론의 재갈을 물리려고 하고 있다”며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은 과거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후안무치한 짓”이라며 손해배상소송 즉각 철회와 동시에 이철 사장 퇴진을 촉구하면서 언론에 대한 손배소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 |
한편 1990년 10월 당시 노동부장관이 나서서 ‘노동운동의 준법질서 확립’을 위한 대책의 하나로 노조 측의 위법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으며, 94년 3월에 대법원은 동산의료원 사건에서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책임을 최초로 부과한 바 있다.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 청구액 때문에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어지는 등 2000년 들어 손배가압류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될만큼 민사상 손배소는 기업들이 적극 활용하는 대응 형태로 굳어져왔다. 철도공사의 언론에 대한 손배소에 대해 직접당사자 뿐만 아니라 언론계 전체가 반응하는 것은 전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셈이다.
또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이나 반론,정정보도 요청 등의 언론 피해 구제를 위한 방식을 취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철도공사로부터 5천만원의 손배소를 당한 직접당사자인 이꽃맘 민중언론참세상 기자는 “철도노조의 의혹 제기를 근거로 보도한 것은 이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며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반론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철도공사 쪽에 밝혔음에도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 채 손배소를 제기한 것은 돈으로 언론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여정민 기자를 대신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하영 기자는 “6여 년 전 고 배달호 씨가 손배가압류 때문에 자살한 사건을 시작으로 노조에 대한 사측의 손배가압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바 있다”며 “직접 손배소 당하고 보니 (손배가압류 당한 노동자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하영 기자는“소장을 보면 KTX 관련 78건의 보도를 해온, 전문가인 여정민 기자가 ‘취업사기’라는 허위사실을 알면서도 보도한 것으로 악의적 보도라고 철도공사는 주장하고 있다”며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철도공사의 취업사기 였는지 아닌지를 밝혀내 KTX 승무원 문제로 소송을 끌고 갈 것”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공대위 활동에 보조를 맞추면서 기사를 통해 정면 대응해간다는 방침이다. 소송 철회를 요구하기 보다 소송을 통해 철도공사의 고용문제를 짚고 넘어가겠다는 것.
‘프레시안’은 지난 9월 27일 ‘철도공사, ‘프레시안’에 5000만 원 손해배상청구 소송’ 기사에서 “‘프레시안’이 약 2년 간에 걸쳐 취재해 온 KTX 여승무원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비정규직인 줄은 알았지만 채용 및 교육 과정에서 1년 후에 정규직 보장을 약속한다는 장담을 수도 없이 들었다’는 것”이라며 “‘철도공사의 취업사기’라는 표현은 당시 기자회견을 열었던 교수모임의 조 모 교수가 한 말”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또 KTX 여승무원들의 증언을 따 “KTX 여승무원들이 정규직 전환 약속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의 소송대응 향방에 따라 KTX 승무원 투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쟁점이 되었던 KTX 승무원 문제와 맞물려 소송 과정 및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