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일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된 개헌 국민투표가 찬성 49.3%, 반대 50.7%의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침착하다. 이번 개헌 국민투표 부결의 원인을 베네수엘라 국내외에서는 무엇으로 진단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번 개헌투표 부결이 남긴 과제는 무엇인지를 3차례에 걸쳐서 연재한다.
해외의 주류 언론에서는 이번 개헌 부결에 대해서 ‘차베스 독재에 대한 심판’이며 ‘민주주의의 승리’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번 개헌 국민투표 부결이라는 결과를 앞에 놓은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승복은 ‘독재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은(por ahora)"...차분한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은 "포토피니시(육안으로 승부 판정이 어려워 사진판독으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로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민중들이 선택한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차베스 대통령은 "1992년 2월 4일 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해내지 못했다. 지금은(por ahora)"이라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지금은(por ahora)"이라는 말은 1992년 2월 4일은 차베스가 군부대 내의 지지자를 규합해 쿠데타를 도모했으나, 실패하자, TV연설에 나와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차베스는 1998년 12월 집권에 성공했다.
다시 개헌을 추진하지 않는한 차베스 대통령은 2013년 대통령직에 다시 도전할 수 없게 되었다. 차베스를 대신할 인물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번 개헌의 패배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주의 운동에게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친 차베스 진영의 움직임은 차분하고 냉정해 보인다. 차베스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호세 빈센트 전 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이 재취임한 후 공을 들여왔던 PSUV가 대중들을 개헌 찬성에 투표하도록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기비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친 차베스파 루이스 타스콘 의원도 “만약 비판이 없다면, 자기비판이 없다면 절대로 혁명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개헌의 실패가 차베스 지지자들이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 아니라, 차베스 지지자들이 개헌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PSUV 당원은 600만, 찬성 득표는 400만
차베스가 재집권한 후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 제안된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SUV)에 등록된 당원은 600만 명, 그러나 이번 투표에서 개헌찬성은 400만 표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차베스 대통령이 재당선 될 당시 득표는 700만, 여기에 비추어 본다면 개헌 지지득표는 300만이나 모자란다.
이번 개헌국민투표에서 기권은 45%에 이른다. 차베스 대통령도 개헌운동기간 동안 기권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왔다. 이런 점에서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SUV)은 이번 개헌 국민투표의 과정에서 기민한 대응을 조직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전히 형성 중에 있는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은 “전국적으로 대단히 불균등한 질을 갖추지 못했고, 기민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호주의 진보적 미디어인 그린레프트의 필자인 스튜어트 먼크턴은 “풀뿌리 수준에서 핵심 선거운동의 기구들은 새롭게 형성된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SUV)의 집단들이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SUV)가 여전히 형성의 과정에 있으며, 정치적 조직적 발전이 전국적으로 매우 불균등했다는 사실로 인해, 반대파의 거짓에 싸우고 효과적으로 개헌을 선전할 수 있는 핵심세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사실의 이면에는 전국선거운동기구 내 “각기 다른 부분에서 뽑혀진 대표들은 해당 유권자들에 대한 조직적 연관성이 적거나 없었다”고 지적했다.
PSUV, 대중과 커뮤니케이션 전략 부재 드러나
특히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법률 용어로 가득한 69개의 개정안을 대중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부재와 기민한 대응을 조직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연임제한 폐지’를 비롯한 33개 조항과, 의회에서 ‘비상사태시’ 기본권 제한이라는 내용의 의회 개헌안이 분리되어 제출되면서, 더욱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헌의 성격과 내용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공히 지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형성 중에 있는’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의 치명적 결점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은 출범 논의 당시부터 차베스 지지파들 내부에서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교적 온건 차베스파로 분류되는 포데모스(Podemos: 우리는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공산당(PCV) 등은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SUV)으로의 통합을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은 차베스 대통령이 21세기 사회주의로 가는 핵심 과제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탄력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온건 차베스 진영뿐만 아니라, 좌파 내부에서도 차베스의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에 대한 비판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뉴욕시립대학 수하타 페르난데스 부교수는 “친 차베스 정당들은 관료주의, 부패 등으로 민중진영에서 비난을 받았으며, 민주적 내부 메커니즘을 결여했으며, 분파주의적 노선을 넘어 협력하는 데 실패했다. 정당의 군인들은 일반 민중들과 의미 있는 관계의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며 논쟁을 통하지 않은 위로부터의 정당통합이 “엘리트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정부 내 관료주의 “청산”계기, 자성의 목소리
차베스를 당선시켰던 지역 공동체의 지지를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을 통해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제시켜가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수하타 페르난데스는 이번 개헌 실패에 대해서도 차베스가 교훈을 얻고, 아래로부터 “지역의 리더십”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개헌의 실패는 차베스 노선을 지지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구래의 관료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온건적, 기회주의적 차베스 정당에 대한 대중들의 심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린레프트의 스튜어트 먼크턴은 차베스 지지세력 내에서 높은 기권율이 나온 것에 대해 “많은 좌파들의 결론 중 하나는 차베스 라인에 서 있는 주, 지장 정부의 관료적이고 부패한 관행에 대한 ‘처벌’이라는 결론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반대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아마우리 곤잘레스라는 이름의 베네수엘라 활동가는 만약 민중들이 ‘처벌’의 의미에서 기권을 했다고 한다면, 현상유지를 위한 보수적인 지향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오히려 민중이 그런 ‘처벌’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면, 개헌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번 개헌안에는 노동자 위원회, 지역위원회를 강화하는 법안들이 개헌 내용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베스를 지지하는 의원들을 비롯한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SUV)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세력에서도 이번 계기를 이런 관료제와 부패를 “청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호세 빈센트 전 부통령은 정부가 정부 내에 만연한 관료제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