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가 27일 테러로 사망함으로써, 총선을 2주 앞둔 파키스탄의 정치 상황이 요동치고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인접하고 있는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에서 무샤라프 대통령과 부토 전 총리의 권력 분점을 통해 안정을 꾀하려고 했던 미국의 전략에도 큰 충격이 되고 있다.
27일 파키스탄인민당(PPP) 총재 부토 전 총리는 는 내년 1월 8일 예정된 총선에서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하고 현장을 떠나려는 와중에 총격에 이은 자살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같은 장소에 있던 20여명도 사망했으며, 10명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파키스탄인민당(PPP) 대변인은 “파키스탄이 민주주의로 평화적 이행을 하는 데 있어 마지막 희망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무샤라프 대통령과 권력 분점 협상...그러나 순탄치 않은 길
89년 이슬람권 최초로 여성 총리에 당선된 부토 전 총리는 96년 군부가 집권한 후 부패혐의를 받고 8년간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선으로 무샤라프 대통령과 권력 분점 협상에 합의한 후 지난 10월 18일 파키스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귀국 후에도 부토 전 총리는 계속해서 생명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 10월 18일 귀국환영 집회에서는 폭탄테러로 200여명이 사망했으며, 이달 초에도 선거 사무실에 괴한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반 무샤라프 세력을 결집하는 구심으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부토 전 총리는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 표적이 되어 왔다. 또, 11월 무샤라프 대통령이 집권연장을 꾀하며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행동에 제약을 받기도 했다.
누가 부토를 죽였나?
부토 전 총리가 암살된 직후 알 카에다 아프가니스탄 총사령관이자 대변인인 무스타파 아부 알 야지드는 “우리는 무자헤딘을 척결하겠다고 공언한 미국의 가장 소중한 자산을 제거했다”며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것은 이들(부토 전 총리와 무샤라프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중요한 승리이다. 이들은 알 카에다와의 투쟁에서 서방편을 들었으며, 무자헤딘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고 무스타파 아부 알 야지드는 아시아 타임즈와의 전화통화에서 밝혔다.
미 중앙정보국(CIA)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부토에게 증오를 표시해 온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이들이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특히 자살 폭탄테러라는 점은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사용하고 있는 수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부토 총리의 사망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게 된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을 비롯한 산하기관도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요동치는 파키스탄 정국
부토 전 총리가 사망한 후 부토 전 총리의 핵심 지지 지역이었던 카라치에서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시위에 나서고 있으며, 곳곳에서는 방화와 폭력사태가 일어나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부토 총리의 숙적이기도 했던 야당 지도자 샤리프 전 총리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치르는 것은 무샤라프 대통령 하에서 불가능하다.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는 선거를 보이콧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다른 여당에 대해서도 총선 보이콧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부토 전 총리와 무샤라프 대통령과의 권력 분점 거래를 주선함으로써 파키스탄 정국의 안정을 꾀하려고 했던 미국의 시도도 전면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인접하고 있는 핵 보유국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에 전략적 중요성을 갖고 있는 파키스탄을 안정화 시키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 테러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미국은 무샤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변호사를 대거 검거하고 부토 전 총리를 가택연금 하는 상황에서도 무샤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으며, 총선을 통해 군부정권에서 민주화로 이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