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방화 목격자, "노숙인들께 죄송합니다"

노숙인 두 번 죽이는 표적수사와 근거 없는 비난 여론

숭례문 방화사건을 계기로 '노숙자'라는 특정집단을 겨냥한 비난 여론이 이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큰 가운데, 화재 당시 목격자가 노숙인 단체에 사과의 뜻을 전해 주목된다.

경찰과 언론 등에 화재 목격 증언을 한 이모 씨는 17일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실사) 홈페이지에 '죄인'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려 "언론과의 최초 인터뷰 당시 용의자 인상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노숙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노숙인을 폄훼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발언이 노숙인 분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드린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목격자 이모 씨는 곧이어 이동현 노실사 상임활동가와 직접 통화해 사과의 뜻을 거듭 전달하고 후원금을 입금하기도 했다.

  숭례문 방화사건 목격자 이모 씨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의 글 [출처: 노실사 홈페이지 w w w . h o m e l e s s a c t i o n . o r . k r]

화재사건 본질은 간데 없고 노숙인에게 책임 전가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여러 언론에서 노숙인을 겨냥한 추측성 보도가 봇물을 이룬 것은 한 네티즌이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서부터로 보인다. 이 네티즌은 해당 글에서 "숭례문 근처에서 노숙인들이 '확 불질러 버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적었다.

사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이 글에 대해 많은 언론이 앞다퉈 '제보'로 다뤘고, 심지어 지난 11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긴급회의에서는 "노숙자가 불을 지르겠다고 했다는 경고글이 올라왔는데 이를 무시했다"는 질타가 이어지기도 했다.

수사당국도 최초에 서울역 인근 노숙인을 대상으로 표적수사를 진행했으며, "노숙인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목하기도 했다. 이같은 선입견은 2005년 1월의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과 수원역 영아살해 유기사건 등에서도 나타났던 것으로, 당시 경찰은 노숙인 범행 가능성을 놓고 탐문수사를 강행했으나 두 사건 모두 노숙인에 의한 범행이 아니었다.

노숙인 단체 노실사는 지난 13일 이같은 현상을 우려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노실사는 이 성명서에서 "'노숙자 차림', '노숙인으로 보이는'이라는 개념이 정의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사당국이 객관적이지 못한 제보에 기초해 노숙인을 '범죄 집단'인 양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노숙인을 희생양 삼는 언론 보도도 노숙인을 혐오와 기피의 대상으로 각인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숙인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이런 와중에 애꿎은 노숙인들의 가슴앓이만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고립돼 있는 노숙인들은, 숭례문 화재사건의 본질은 흐려진 채 이의 책임 전가로 '범죄 집단'으로까지 지목되자 탈 노숙의 희망 대신 다시 한 번 좌절감에 빠지게 됐다.

지난 16일에는 노숙 경력이 있는 강모 씨가 방송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50대 여성의 얼굴을 때려 불구속 기소되는 사건도 있었다. 강모 씨는 15일 밤, 이 여성이 숭례문 앞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던 당시 "평소 노숙자들이 숭례문 누각에 오르는 것을 방치하는 등 관리가 부실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자 격분한 나머지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노숙인모임 '한울타리회' 김재호 씨는 "힘 없는 노숙인들에 대한 편파적 견해를 버려 달라"고 호소했다.

노숙인 당사자 모임인 '한울타리회'의 김재호 씨는 노실사를 통해 본지에 전달한 글에서 "언론과 경찰이 왜 무슨 일만 터지면 노숙인을 범죄자로 지목하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실제 일어난 일인양 과대 보도하고, 힘없고 가진 것 없다고 노숙인들에 대해 편파 보도를 한 언론들은 정확한 기사를 써 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이명박 당선인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속히 수습하고 문화재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줄 것"을, 국민들에게는 "노숙인에 대한 편파적인 견해를 버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노숙인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