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홍콩통신'을 마치며]
준비 없이 홍콩으로 달려가 검토도 없이 글을 보냈습니다. 홍콩취재로 6월까지 마감을 하려고 했던 ‘이소선 회고록’은 뒤로 미뤄졌습니다. 한국에 돌아왔더니 이소선 어머니가 껴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줍니다. 취재비로 날린 넉 달 치의 생활비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다시 씁니다. 김석원 한영희 이남신 김애수 박동식 서강봉 권미정 이선아 한지원 이성욱. 그리고 다시 불러봅니다. 유인물 한 장 함께 나눠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땀을 흘릴 때 손수건을 건네기는커녕 카메라를 들이밀어 죄송합니다. 한 발 건너 서 있는 동안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 필자 주
여기가 홍콩인지 한국인지 아직도 가물가물하다. 칠박팔일의 뉴코아 이랜드 노동자의 홍콩원정투쟁은 ‘승리’하였다고 쓰며 연재를 마무리할까 한다.
원정투쟁단이 돌아온 다음날(8일), 이랜드차이나홀딩스의 홍콩증시상장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공모가가 예상에 미치지 못해 상장을 연기하였다고 한다. 일반 공모 마감일까지 예상 공모액의 1%에 그쳤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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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투쟁단의 활동은 회사의 돈 줄을 끊는 일이 아니라, 이랜드 그룹이 건강한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하는 활동이었다. |
뉴코아 이랜드의 홍콩증시상장 저지를 손가락질 하는 이들도 있다. “당신의 일터가 돈줄이 막혀 망하면 당신들의 일자리도 사라지는 거 아니냐”
원정투쟁단이 홍콩 투자자와 상장 주관사에게 한 말은 “이랜드는 마피아이고 갱스터다”였다. 어떤 투자자가 불법적인 행태에 자신의 돈이 투자되는 걸 원하겠는가. 원정투쟁단은 “투자된 돈이 용역경비들을 동원해 노동자를 폭행하는데 사용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데 사용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데 사용 된다”고 알렸다. 또한 “불법주류거래, 카드깡, 재고상품을 신상품으로 판매하는 불법에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산 주식이 “마피아나 갱스터”와 같은 범죄 집단에 사용되는 걸 원하는 투자자들은 없을 것이다. 뉴코아 이랜드 노동자도 자신의 일터가 건강한 기업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원정투쟁단의 활동은 회사의 돈 줄을 끊는 일이 아니라, 이랜드 그룹이 건강한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하는 활동이었다.
또한 국내 기업이 국제시장에서 망신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활동이기도 하다. 이랜드 베트남 공장에서 파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홍콩노총의 한 활동가는 이랜드의 중국 공장에서 아웃소싱과 해고를 일삼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주의 깊게 감시하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세계화 시대에 노동조합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부도덕한 상거래를 한 국내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은 다른 국내기업의 국제화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 뻔하다.
이번 이랜드차이나홀딩스의 증시상장 연기는 홍콩증시의 침체와 낮은 예정 공모가에 있다고 한다. 그 뒷면에는 원정투쟁단이 상장 주관사와 홍콩 금융감독원, 증권거래소에 이랜드 그룹의 진실을 밝힌 항의서한 전달과 면담도 작은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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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이국땅에서 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 밥을 굶어가며 거리에서 잠을 자겠는가. 노동자에게 일터는 생명이다. |
뉴코아 이랜드 노동자는 이번 기회에 이랜드 그룹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건강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노동조합과 대화를 하고, 직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고,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지킨다면 생계비조차 없는 노동자들이 비싼 돈을 들여 홍콩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증시 상장을 저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가 이국땅에서 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 밥을 굶어가며 거리에서 잠을 자겠는가. 노동자에게 일터는 생명이다. 노동자는 죽고 기업만 산다면, 소비자를 속이고 기업만 돈을 번다면, 누가 그 기업에 투자를 하겠는가. 이랜드 그룹은 이번 일을 계기로 노동자와 함께 번영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취재를 하며 참 많이 울었다. 마지막 출국기자회견 날에는 목에 칼을 거는 퍼포먼스를 하지 않겠다고 한영희 조합원이 말을 했다. 카메라를 들고 나온 십 수 명의 홍콩 기자들을 가리키며 써야한다고 강요(?)했다.
한영희 조합원은 칼을 썼다. 사진기자는 한영희 조합원의 얼굴에 수없이 많은 플래시를 터뜨렸다. 나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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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희 조합원은 칼을 썼다. 사진기자는 한영희 조합원의 얼굴에 수없이 많은 플래시를 터뜨렸다. 나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
갑상선 암 수술을 받은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단식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계속 치료약을 먹어야 하는데 단식을 하면 약을 먹을 수 없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단식을 말릴 수 없었다. 감히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에게 그 순간 그 말을 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계단을 오르며 삼보일배를 하고, 힘든 영어로 기자들의 비꼬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하고, 길바닥에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하고.....
이들이 원하는 것이 뭐 그리 거창한 거였나, 이들이 바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다니던 일터에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밖에 없다.
자신이 일하던 일터에 쭈그려 앉아 일을 하고 싶다고 외쳤다고 경찰서에 연행되고, 알량한 적금통장에 가압류가 붙어야 했다. 월급을 이백만 원을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자그마한 키에 굽은 허리로 말도 통하지 않은 홍콩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건네려고 안간힘을 쓰는 김애수 조합원을 보고 있자면 화가 치밀었다. 손에 든 유인물을 빼앗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여기서 물러서세요, 무릎 꿇고 간청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한 발 물러서서 취재수첩이나 뒤적이고, 사진기나 들이미는 내 자신이 모래알보다 작아졌다.
홍콩노총과 ARMC, UNI와 같은 홍콩 활동가들과 진행한 이번 원정투쟁은 세계노동운동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적어야 할 정도다. 한 사업장의 문제로 국가를 뛰어넘어, 지지와 연대를 넘어, 공동 행동을 이룬 것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제 마무리를 할 때다. 홍콩 언론에 원정투쟁단을 비난하는 기사가 실렸다면 홍콩에 주재하는 보수 언론사 기자들이 국내 신문에 난리를 치는 기사를 실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기사는 없었다. 홍콩 언론과 세계적 통신사들이 몰려들어도 국내 보수언론의 홍콩 주재 기자들은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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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농민 집회 때 한국 농민을 보호하지 않았던 영사관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원정투쟁단 곁에 오지 않았다. 그 당시 영사관을 대신해 농민들을 보증해 주었던 교민 장대업 씨는 ‘혹시나’하는 염려에 이번에도 함께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는데도. 왜 해외에 외교관을 파견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오기는 왔다. 아주 멀리 떨어져 일거수일투족을 구경(?)하였다.
혹 국제관례에 어긋난 행동이라도 원정단이 벌였다면 그때는 나서 욕이나 하겠지. WTO 농민집회 때 거리에서 농민들이 연행되기 직전 영사관 직원들이 한 말을 홍콩기자들과 섞여있던 나는 분명히 들었다. 과연 내가 낸 세금으로 해외에 나와 있는 한국인인지가 의심스러웠던 그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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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코아 이랜드 노동자의 홍콩원정투쟁은 노동자의 해외원정투쟁사례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승리”로 마무리 하였다. 이 승리가 뉴코아 이랜드 노동자가 안정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승리로 이어지고, 모든 비정규직이 보호받으며 일할 수 있는 승리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랜드 홍콩통신'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