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경찰에 의해 봉쇄된 서울시청광장 주변을 시민들이 서성이고 있다 |
우리는 패배했다
왜 패배했다고 하는지 궁금해 그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지난 5일(국민승리 선포의 날) 행진을 마치고 청계광장으로 돌아왔을 때 캔맥주와 소주병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많이 지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패잔병 같았다”고 김승현 씨는 대답했다.
이창호 씨도 “지금처럼 하면 50일, 100일 촛불을 들어도, 100만 명이 들어도 부질없다. 시청에 텐트 다 철거되고, 시청 주변에서 경찰이 불심검문하고. 이건 아니다”라며 더 이상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할 수 없는 촛불의 ‘위기’를 이야기했다.
중고등학생 중심으로 5월 2일 촛불을 처음 들어 촛불집회가 이어진지 두 달이 훌쩍 넘어갔다. 그동안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을 포함해 아침 해를 보면 끝마친 촛불집회는 그 횟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정부는 끝내 6월 26일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했고 미국산 쇠고기는 유통이 시작됐다. 지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지난 5일 이후 촛불의 규모는 축소됐고,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집중집회만 주최하되 다양한 단위들이 촛불집회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많이 모였을 때 나름대로 뿌듯하고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런 게 있었는데. 문화공연하고 해산하고. 결국 남아서 싸운 시민들만 다쳤다. 지금에 와서 ‘평일에는 시민 여러분 알아서 하라’는데 인정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대안을 내라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라고 이창호 씨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안 나와야지 하다가도,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결국 나오게 된다”며 피로함과 투쟁전술에 대한 불만에도 촛불을 계속 들게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일어날 수 없는 삶이 촛불의 땔감
시민들은 아직까지도 끈질기게 촛불을 지키고 있고,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한 단체들은 촛불을 지속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에서 시작된 촛불이지만, 이제 촛불 자체가 화두가 되었다. 무엇이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내는 것일까.
건설 일용 노동자인 천태곤 씨는 “누가 나오라고 해서 나온 게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살기 힘들어 나온 사람도 있다. 그런데 다 살기 힘들어서 나온 거다.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이 얼마냐 많은가. 건설노조가 아직도 파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거리가 없다”고 답했다.
천태곤 씨와 대화를 나눌 때 네 명의 건설일용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10년 동안 일당이 5만 원 선에서 크게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나마도 용역비와 차비 등을 제하면 만 원 정도가 빠지고, 비가 오거나 용역회사에 일감이 없으면 공쳐야 하는 날이 많아 한 달에 100만 원 벌기도 빠듯하다. 그러다보니 일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실업의 경계선에 서 있는 그들이었다.
옆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던 박용현 씨는 “잘사는 사람은 계속 잘 살고, 없는 사람은 없는 데서 일어날 수가 없다. 더 망가지면 망가졌지. 하루 벌고 먹고 사는 게 체계적으로 되니까. 일을 안 하려는 게 아니라 인건비가 안 오르니 남는 게 없어 못 한다.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이 없으면 (거리로 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고 말을 이었다.
이 때 대화를 나눈 이들이 낯이 익었다. 기억을 돌이켜보니 행진할 때 항상 선두에서 경찰과 대치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날 수 없는’ 삶이 그들을 전투적으로 만든 것이다.
촛불은 진화한다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조 모 씨는 “이명박이 하는 정책이 너무 어이가 없으니 가끔 노무현이 그립다. 하지만 노무현이 잘 해서라기보다 이명박이 너무 어처구니없이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양극화를 심하게 만든 신자유주의 정책을 김대중 대통령도 펼쳤고, 그게 너무 안 좋게 만들었다”면서 ‘정치집단’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어 그녀는 “촛불을 들면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 같다. 나라를 위해, 떳떳하기 위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다. 처음에는 고시준비 때문에 안 나오려고 하다가 나왔다. 이제는 촛불집회 나오는 게 행정고시 준비하는 이유와 힘을 주고 있다”고 거리에서 정치를 말했다.
‘촛불집회에 왜 나오냐’는 질문에 미국산 쇠고기만을 이야기하는 시민들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 김승현 씨는 “조중동은 촛불집회가 변질됐다고 하지만 진화한 것이다”라며 촛불이 거리정치의 시공간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송환’의 주인공이었던 장기수 김영식 씨는 “촛불집회하는 거 피곤하지. 그렇지만 여기서 끝내야 돼. 후대에게는 좋은 나라를 물려줘야지”라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했다.
방식은 변해도 촛불은 진행형
7월 5일 이후 누구는 승리했다고도 하고, 누구는 할 만큼 했다고 하고, 누구는 패배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촛불을 지키고 있는 시민들이 있다. 누구나 알고 싶어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촛불의 향방,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김승현 씨는 “재협상은 안됐지만 30개월 이상 소도 수입 안 하고, 국민여론에 의한 것이라는 단서가 있기는 했지만 민영화도 안 한다고 했다. 대통령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피곤해서 더 이상 못나오겠다. 하지만 정부가 약속을 어기면 전면적으로 정권퇴진을 걸고 다시 나올 것이다”라며 이제는 생활 속에서 정부를 감시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장기수 김영식 씨는 “어떤 방식을 하던 촛불은 계속 끌고 가야 돼.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안정되게 하면 안 돼”라고 계속적인 투쟁을 주문하기도 했다.
조 모 씨는 “촛불의 시작을 시민이 알아서 했듯이 끝도 알아서 할 것이다. 난 단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지금도 촛불을 드는 거다”라고 한 후 “너무 원론적이죠”라며 웃음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