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진상규명과 망루에서 죽은 철거민들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 10월 29일 용산참사 1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검찰의 손을 들어주고 철거민 7명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은 여전히 철거민들에게 멍에로 남아 있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이 죽었지만 재판부는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에게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를 물었다. 이들 7명의 구속자들은 1월 6일 부터 항소심 재판을 통해 법정에서 진실을 가려낼 예정이다.
이날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앞 협상타결 기자회견장에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고 이상수 씨 유가족 권명숙씨는 “아직은 공식타결이라고 말을 못한다. 애초 요구했던 열사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안됐다. 지금부터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구속자 석방까지 다시 투쟁해 나갈 것”이라며 “개운치는 않지만 냉동고에 더 이상 그분들의 시신을 두고 있을 수 없어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고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께 열심히 은혜를 갚으며 진상규명 투쟁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고 양회성 씨 유가족 김영덕 씨도 “총리의 사과만으로 이분들을 보내드릴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추운 냉동고에 둘 수 없다는 뜻에서 장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 이상림 씨의 유족 전재숙 씨도 “반쪽의 합의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남편의 시신을 더 냉동고에 둘 수 없는 유족들의 마음이 여러 미해결 문제 앞에서도 장례를 결정하게 한 가장 큰 배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홍석만 용산범대위 대변인은 “장례가 용산참사의 해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7명의 철거민들은 아직도 구속되어 있고 망루에서 있었던 일은 의문사로 남아있다. 검찰은 여전히 수사기록 3천 쪽을 은페 하고 있어 아직 용산참사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범대위위와 여러 사회단체들이 주장해온 무분별한 뉴타운, 재개발 정책의 문제점도 역시 큰 과제로 남았다. 이번 합의문에는 철거민들이 생업 중단 상태에서 받았던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대한 위로와 생계비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 참사 당일 부상자 치료와 장례비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난색을 표해왔던 임시상가 등의 생계대책도 포함되어 있다. 김태연 용산범대위 상황실장은 “만족하지는 않지만 임시상가에 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정운찬 총리는 이날 사과문에서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제도적인 보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개발사업 재도개선 대책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홍석만 대변인은 “2009년 용산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이름이었고, 민주주의의 보루였고, 자본의 탐욕에 맞선 인권의 보루였다”며 용산투쟁이 남긴 과제의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