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서야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눈물겨운 싸움 끝에 쟁취한 승리이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지난한 투쟁이었습니다. 그동안 추위와 더위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싸웠던 유족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진정한 이웃이 되어 아픔을 같이 했던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 식구들이 아니었으면 이 외로운 행진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천주교 사제단과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한 종교인들의 기도는 고통당하는 이들의 절규를 대신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분향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성금과 물품을 보내 주어 따뜻한 정을 나누었습니다. 참사 현장 남일당에는 눈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래와 춤, 시와 그림 그리고 진정한 소통과 나눔이 어우러진 희망의 자리였습니다.
용산참사는 현재와 같은 재개발과 뉴타운 사업이 서민들을 위한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공권력은 권력과 힘에 아부하지 말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철저히 지켜야 된다는 것을 생생히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가 목표하는 선진국이 되려면 균형적인 성장과 횡포 없는 공권력, 공정한 재판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준 것입니다.
우리사회의 모순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국민 다섯 명이 철거를 당해 농성을 하다 공권력 진압 과정에서 죽었는데 1년 가까이 장례도 못 치르고 있었다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찾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다시 힘을 모아야 하고살인적인 재개발 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하겠습니다.
참사 발생 345일 만에 타결 되었고 장례는 355일 만에 치러지게 되었습니다. 2010년 1월 9일은 차디찬 냉동고에 있는 다섯 분의 열사들의 주검이 우리 곁을 떠나는 날입니다. 참사 일 년이 다 되도록 외면하고 무시하고 억압했던 정부의 모습에 유족들은 큰 상처를 이중적으로 받았습니다. 이러는 동안 국민들도 서로의 입장에서 상처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번 장례를 통해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진정한 화해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열사들과 같이 저항하다 구속된 이들과 특히 고 이상림 열사의 아들 이충연 씨도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넉넉함이 있어야 합니다.
유족들도 장례를 통하여 그동안 가슴에 멍울진 한을 조금이라도 푸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동안 보여 주셨던 용기로 명예롭게 당당히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곁에 있습니다.
이번 장례식에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이 참여 하기를 호소합니다. “우는 사람과 같이 우는” 따뜻한 사회를 가꾸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주장으로 분열된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여 통합의 길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이들은 희망을 갖고 부자들은 배려하여 살맛나는 세상을 열어가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마음은 있었으나 여의치 못하여 함께하지 못하셨던 분들은 마지막 열사들의 가는 길에 동참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른 의견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신 분들도 죽은 자에게 예를 갖추는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줍시다. 그래야 먼저 가신 이들의 소망대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우리 모두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1월 9일 장례식 때 존경하는 여러분들을 뵙기 원합니다. 죽음의 그림자로 애통하며 보낸 2009년이라면 2010년 새해에는 하늘의 위로가 넘치는 축복의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