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산업 국영화, 이래도 안 되는 걸까요?

시대착오적 금융 주도 구조조정이 문제

  홍진훤

금융 주도 구조조정의 참담한 실패

‘폭삭 망하다’라는 뜻의 ‘폭망’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건 없을 것 같다. 한진해운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지만, 물류대란 해소는커녕 화물 주인들로부터 조 단위 대규모 손해배상을 당할 상황에 몰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지난 19일 한진해운 관련 긴급 간담회를 열어 “용선료 연체와 화주의 손해배상 청구로 한진해운이 최우선으로 갚아야 할 돈(공익채권)이 조 단위를 넘어서면 회생계획 수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한진해운은 새로운 매출이 없다. 게다가 해상에 발이 묶인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화물 가액만 140억 달러(약 15조 원)에 달해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

애초 정부는 현대상선 투입과 한진그룹 지원을 통해 물류난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물동량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곧 드러났고, 설상가상으로 한진그룹 주력사인 대한항공의 자금지원 여부가 수차례 난항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뒤 내지 않은 하역 운반비, 장비 임차료, 용선료, 유류비 등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물류대란 해소 최소 비용은 기존 1700억 원에서 2700억 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항공의 600억 원 자금 지원이 이뤄진다고는 하지만, 이미 한 달여 동안 불어난 비용만 이를 넘어섰다. 현재 한진해운이 확보한 자금은 내부 자금 200억여 원, 조양호 회장의 사재 400억 원, 최은영 전 회장의 사재 100억 원, 대한항공 지원금 600억 원 등 1300억 원뿐이다.

해운업계 관행에 비춰 약정된 운송 시기로부터 약 4주가 지나면 화주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법정관리 개시 시점 이후 발생하는 용선료나 손해배상 채권은 채권자가 법정관리 기간에도 채무 변제를 요구할 수 있는 ‘공익채권’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화주나 용선주의 선박 압류가 현실화될 경우 막대한 규모의 공익채권을 갚아줘야만 하역을 할 수 있어 물류대란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면 정부가 긴급자금을 투여한다고 해도 해결이 어렵다. 그래서 금융권 일각에선 하역 지연으로 신규 채권이 과도하게 불어나면, 법원 실사 결과가 나오는 11월 25일 이전에 파산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렇듯 해운 구조조정의 결말은 대규모 손배 소송과 물류대란의 장기화로 흘러갈 공산이 매우 커졌다. 금융 주도 구조조정의 참담한 실패라 할 수 있다. 이미 한진해운의 독자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누가 비용을 치르건 어디서든 돈을 가져와야 한다는 건 명확했다. 채권단은 한진그룹 차원에서 한진해운을 살리도록 종용했고, 한진그룹은 정부의 구제금융에 기대어 자신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려는 안일한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서로 치킨게임을 벌인 것이다. 결국, 이들의 안이한 판단은 기간산업의 한 축을 절벽 아래로 밀어 넣고야 말았다.

사태의 발단, 금융 주도 방식의 경영과 구조조정

도대체 이 사태의 원인은 어디서 시작됐고,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들은 2000년대 금융버블 시기에 고정자산 비중을 줄이려는 금융적 경영 행태 속에서 자기 배가 아닌 남의 배를 빌려서 운행하는 비중을 높였다. 비유하자면 임대(용선)로 사업을 벌인 것과 같다. 배를 사서 운항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빌리는 비용이 더 적다고 판단한다면 이런 선택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금융버블이 최고조였던 2006~7년에 비싸게 빌린 배들이 많은 게 문제의 화근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전 세계 해운산업은 곧장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는 세계적인 업황의 문제였기에 개별 회사들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용선료는 금융위기 전의 6분의 1로 떨어졌지만, 당시 대부분의 해운사가 장기계약을 했던 터라 여전히 지금도 비싼 용선료를 지급하고 있다. 그래서 해운업 구조조정에서 용선료 재협상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것이다.

그런데 해운산업이 이렇게 금융적 경영 행태를 취한 배경엔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있다. 재벌의 문어발 경영이 위기를 불렀다는 인식 때문에, 재벌의 지나친 차입 경영을 제한하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당시 정부는 대기업 부채 비율 200%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해운업은 구조적으로 부채 비율이 높기 마련이다. 자기 소유의 배가 있어도 그게 온전히 자기 자본인 건 아니다. 큰돈이 들어가는 물건을 살 때 할부를 하듯, 배를 짓거나 사들일 때도 큰돈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해운업 역시 부채 비율 200%를 맞춰야 했다. 결국 갖고 있던 배를 팔아 현금을 마련하고, 남의 배를 빌려 영업하는 구조가 새롭게 정착됐다. 그러다 보니 용선료 등락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는 셈이다.

현재 해운업은 사실상 정부의 전격적인 개입 없인 회생할 수 없다. 오랫동안 자산매각 등을 진행하며 버텼지만 사실상 별 뾰족한 해법이 되지 못했다. 고정된 용선 비용은 불변이기 때문이다. 이런 곤란함은 비단 국내 해운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덴마크)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일본의 국제 해운사들도 불황으로 휘청거렸다. 지금도 재무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국 정부의 강력한 자금 지원과 중재 아래 대형 선박을 확보하고, 조선사에 대한 발주뿐 만 아니라 채무 재조정도 원활히 진행하면서 재무 부담을 어느 정도 던 상태다. 정부의 전격적인 개입과 주도로 해운사의 부담을 덜어주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한국은 이와 달리 금융 주도 중심의 구조조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미 조선 해양 부실사태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산업은행은 정부 금융위원회의 지배를 받는 터라 운신의 폭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기간산업이 망가지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알았지만, 파국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걸 선택하고야 말았다. 이런 선택을 한 배경엔 금융시장 논리가 반영돼 있다. 금융위는 한진해운 구조조정 문제가 이미 상당히 시장에 반영돼 주식과 채권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은행 등 금융기관도 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손실을 고려하고 있어 추가적인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마디로, 한진해운을 날려도 국내 금융시장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해운산업의 몰락을 염려하는 지적에 대해선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인수하는 것으로 대처하겠다는 수준의 입장을 발표했다.

해운산업의 국영화

그러나 현대상선도 이제 겨우 구조조정을 마치고 산업은행 자회사로 들어간 상황이라 투자 여력이 없다. 올해도 영업적자가 7000~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자산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자금을 대줄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금을 출자전환 해 현대상선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결국, 산업은행이 돈을 대고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자산을 인수해야 한다. 한진해운에 직접 자금지원을 하나,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을 인수하나, 사실 그 돈이 그 돈인 셈이다. 이렇게 돌려막기로 지리멸렬하게 일을 처리할 바엔, 차라리 전격적인 국영체제로 전환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이들 두 해운업체의 주 채권자는 산업은행으로 국민이 주인인 국책은행이다. 주인인 국민을 위해 해운산업을 전격적으로 국영화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초 정부가 해운업을 중요 기간산업으로 정하고, 대형 컨테이너선을 국가자산으로 만들어 해운 업체에 임대했다면 지금 같은 비상식적인 용선료 문제로 인한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이 배들을 사들이는 데 엄청난 재정이 투여됐을 것이라고 지적할지 모르나, 문제 될 것은 없다. 그에 해당하는 국가 자산으로 더 많은 편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배를 국가 자산으로 만들 생각을 못 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미 대우조선을 국유화하고도 말이다.

앞서 지적한 부채비율 몇 %에 재무구조를 맞춰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금융 주도 구조조정 때문에 이 모든 사달이 났다. 여전히 이 기준을 부여잡고 기간산업 구조조정을 논하는 것은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어느 때보다도 전격적인 국유화, 국영화 플랜이 필요한 때다. 국가부채가 문제라고? 걱정하지 마시라. 한국의 국가부채는 어느 OECD 국가보다도 안정적이다. 심지어 국고채 10년 물 금리(1.46%)는 미국(1.54%)보다도 싸다!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할 건, 사실 돈이 아니다. 이미 국유화되어 있는,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될 지도 모를 잠재적 기업들을 어떻게 제대로 된 국가자산으로 만들고 민주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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