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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인기] |
동틀 무렵, 노량진역 광장에 구수산시장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새벽 추위를 막고자 두꺼운 겨울옷 위로 붉은색 앞치마를 둘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국을 강타하는데도 설마 행정대집행을 할까?”
“장사가 안 돼 너무나도 힘든 세상인데...”
걱정과 우려 섞인 말들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제철거가 시작됐다. 2월 21일, 서울 동작구청은 노량진역 1번 출구 앞 기습 철거를 단행했고, 약 20여 개의 포장마차를 부수고 압수해 갔다. 구청 직원 300여 명과 용역업체 직원 300여 명, 이 밖에도 대형 트럭 7대가 동원됐다. 집게 차와 포크레인 2대 그리고 견인차 등이 투입돼 동작대로를 막아섰다. 그 주변을 경찰 4중대가 촘촘히 둘러쌌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상인과 연대단체 약 100여 명도 집결했다. 어떤 상인은 허겁지겁 포크레인 위로 올라갔고, 어떤 이는 차 안으로 기어들어가 집행을 막으려 애썼다. 경찰은 노량진역을 봉쇄했다. 용역이 활동할 수 있도록 유리하게 동선을 짜는 일은 공권력의 몫이었다.
“집회 장소다. 용역은 퇴장해 달라”는 목소리는 허공의 메아리가 됐다. 동작대교까지 차량이 밀려 출근 시간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차선의 절반을 용역과 경찰이 점거했다. 물리적 충돌로 민주노련 중앙간부를 비롯해 약 6명의 상인이 상처를 입었고 2명은 인근 병원으로 실려 갔다. 덩치가 산만한 젊은 용역들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지옥 같은 강제집행은 오전 9시 해가 뜰 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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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인기] |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는 서둘러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동절기 강제철거는 매우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예외적인 행정행위라는 것이다. 특히 컴컴한 한밤중에 폭력이 수반되는 강제철거는 심각한 안전상의 위협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규탄했다.
‘민중공동행동’ 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촛불 항쟁으로 들어선 새 정권 아래, 왜 여전히 이토록 처참한 강제 철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인가? 빈민들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수협의 태도가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와 동작구청 그리고 수협을 상대로 그 책임을 물었다.
노량진구시장 윤헌주 지역장은 중앙도매시장을 부동산개발을 통해 사적 이득을 편취할 목적으로 현대화사업을 추진했다며 분노했다. 정부가 지원한 국민 혈세 1,540억 원을 어디에 썼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공영도매 시장은 서울시민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성은 생명이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에서도 서울시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지 않은가? 상인들 조끼에는‘한겨울 강제철거가 없을 것’이라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손글씨가 적혀있다. 빛이 바랜 글씨는 희미해지고 있다.
지금도 노량진구시장 상인들은 지하철이 다니는 육교 위 2만5천 볼트 고압선위에서 농성을 한다. 이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고립된 섬’위해 표류해 있다. 수십 년 동안 장사하며 노량진수산시장의 상권을 함께 일군 사람들이다. 생계터전에서 밀려나는 일은 눈 뜨고 못 볼 일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