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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방. 벗는 방송의 줄임말. 구체적으로는 인터넷 개인방송 사이트에서 여성 BJ(Broadcasting Jockey)들이 신체를 노출하는 방송을 말한다. 벗방은 시청자들이 BJ에게 ‘별풍선’ 같은 금품을 건네고 음란한 콘텐츠를 제공받는 형태로 운영된다. 시청자들은 BJ에게 아이템을 쏘며 윙크부터 가슴 근접 촬영, 신음소리 내기, 가슴 노출된 채로 토끼춤, 오일 가슴 마사지, 성기 가린 채 다리 M자로 벌리기 등의 원하는 리액션을 요구한다.
더 많은 아이템을 제공하는 시청자는 더욱 과감한 벗방에 참여할 수 있다. 이른바 ‘팬방’이라고 불리는 노출방은 아예 등급제로 운영된다. 실버방(100개), 골드방(300개), 다이아방(600개), VIP방(1,000개) 등 등급이 올라갈수록 BJ의 노출 수위가 강해진다. 이 같은 영상은 인터넷 개인방송 사이트에서 간단한 회원가입과 성인인증만 마치면 손쉽게 시청할 수 있다. 과거 웹하드에서 포르노물을 뒤적이던 시청자들은, 이제 이를 실제화 시키는 적극적인 가담자이자 생산자로서 움직이고 있다.
현재 인터넷 개인방송 시장 규모는 정확하게 집계된 것이 없다. 당연히 벗방 시장의 규모도 공식적이지 않다. 아직까지 인터넷 개인방송의 시장 및 법적 지위가 불분명하게 설정돼 있는 까닭이다.(1)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벗방 플랫폼 기업들이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PC나 모바일로 시청할 수 있는 이런 벗방은 OTT(over-the-top)(2) 서비스로 분류된다. 현재 세계 OTT 서비스 시장규모는 2017년 기준 약 570억 달러다. 연평균 27%씩 성장해 2020년에는 약 14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벗방 플랫폼을 가진 국내 모 기업의 매출 증가율을 보면 2017년 51%, 2018년 105%, 2019년 69%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벗방 발판 삼아 세계 진출
‘팝콘TV’는 국내 2위 규모의 개인방송 플랫폼이다. 팝콘TV의 운영사인 ‘(주)더이앤엠’은 벗방을 발판 삼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사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 이곳은 개인방송 플랫폼 사업 외에도 국내외 공연·행사 기획, 인터넷 뉴스, 디지털 음원서비스, 매니지먼트, 컨설팅, 모바일 메시징 사업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업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3분기에는 어닝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지난해 3분기 더이앤엠의 매출액과 영엽이익은 각각 172억 원, 26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팝콘TV의 하루 평균 방송 수는 무려 4,000여 개. 성인방송 플랫폼으로는 방송자 수, 방송 수, 발생 매출 면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다. 이들은 필리핀의 3대 방송국중 하나인 ‘TV5’와 개인방송 사업 제휴를 맺는 등 동남아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팝콘TV 가입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83만 명으로 1년 간 45만 명이 증가했다. 유료 시청자 1인당 월평균 결제금액(ARPPU)도 18만 원을 달성했다.
팝콘TV는 (주)더이앤엠의 수익을 견인하고 있다. '팝콘TV'로 대표되는 인터넷사업부문 매출액을 살펴보면 2016년 85억 원 흑자 달성 후 2017년 136억, 2018년 241억에 이어 지난해엔 310억 원을 벌어들였다. 전체 매출액에서 팝콘TV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100%, 2018년 86.67%, 69.23%로 감소추세이나, 여전히 매출의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주)더이앤엠 관계자는 올 초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팝콘TV는 구매력이 높은 30대 남성이 전체 회원 대비 약 50%에 이른다. 유료회원 수와 결제금액이 최근 3년간 연평균 약 30% 수준으로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며 “국내 온라인 유료 콘텐츠 플랫폼사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서비스 충성도가 타 플랫폼 대비 높다는 의미”라고 회사의 경쟁력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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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더이앤엠의 출발은 엔진부품 제조업체인 (주)현진소재다. 2013년 이후 (주)현진소재의 자회사이자, 파이프용 강관 제조업체인 용현BM은 매년 적자를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5년 중국 모바일 게임회사인 룽투게임즈의 한국법인인 ‘(주)룽투코리아’가 용현BM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용현BM은 520억 원의 자금을 수혈하며 기사회생 했다. (주)룽투코리아는 용현BM 지분 55.48%를 보유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듬해, (주)룽투코리아는 용현BM을 엔터테인먼트 전문업체로 변경했다.
이후 용현BM는 팝콘TV를 240억 원에 인수하며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용현BM의 사명은 더이앤엠으로 바뀌었다. (주)룽투코리아는 엔터테인먼트 사업 확장을 위해 언론사와 디지털 음원사 등을 인수했다. 양성휘 룽투코리아 대표는 2015년 말부터 ‘한국은 투자하기 좋은 나라다’, ‘다방면의 문화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종합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싶다’고 밝히며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한 바 있다.
지난해 말 (주)더이앤엠은 아시아 최초 e스포츠 전용 사모펀드 (PEF) 운영사인 모 회사와 손잡고 글로벌 e스포츠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리고 관련 펀드에 94억 원을 투자해 최대 출자자 지위를 확보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e스포츠 시장은 올해 1조 3000억 원에서 2020년에 3조 2000억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모 회사 측은 “(더이엔엠이) 투자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투자자로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38%의 지분을 획득하며 (주)더이앤엠의 최대 주주가 된 나비스피델리스 5호 조합은 다시 팝콘TV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성인 방송에 특화된 ‘팝콘TV’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은 올해부터 팝콘TV 벗방을 재가공해 국내 성인비디오로 제작하고 있다.
벗방 플랫폼, 합작 회사로 더욱 커지다
또 다른 개인방송 플랫폼 ‘팬더TV’는 팝콘TV보다 수위가 높은 벗방으로 알려져 있다. 자사 홍보 멘트도 ‘모두 풀어 헤친 여BJ들의 새로운 컨텐츠’다. 그러다보니 타 플랫폼에서 활동 제재를 당한 BJ들이 팬더TV로 이동해 활동하기도 한다.
팬더TV 운영사인 (주)더블미디어는 2014년 설립된 ‘캔티비 플랫폼’과 2017년 설립된 ‘풀티비 플랫폼’이 지난해 통합·합병해 만들어진 회사다. 캔티비 플랫폼을 운영한 (주)플래닛팡의 박 모 씨가 더블미디어의 대표를 맡았다. 풀티비 플랫폼을 운영한 (주)글로벌몬스터의 남 모 대표는 더블미디어의 감사를 맡고 있다.
박 씨는 2013년 11월 (주)플래닛팡 법인을 설립하고 IPTV, 케이블 VOD 등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포르노 100편을 만들어 한국 비디오물 주요신청사(2015년 영상물 등급분류 연감) 10위에 오르기도 했다. 플래닛팡은 2014년 캔티비를 런칭하고 온라인 실시간 방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5년 17억 2900만 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204억 9883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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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의 발자취는 웹하드기업 ‘기프트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박 대표는 2012년 기프트엠의 사내이사로 재직하다 사임했다. 2012년 10월 설립된 기프트엠은 쉐어박스, 미투디스크, 파일함 같은 대표적인 웹하드 사이트를 운영했다. 기프트엠은 웹하드 불법촬영물 유통 문제가 극심했던 웹하드 기업이었다. 2018년 불법촬영물 유통 단속 현황에 따르면, 불법촬영물 유통사례가 적발된 웹하드 50여 곳(사이트 100여 개) 중 쉐어박스와 미투디스크 등을 운영하는 기프트엠에서 불법 촬영물 유통이 약 2,500건으로 가장 많았다. 여성단체들에 따르면 쉐어박스는 2017년 경찰 수사 이후에도 피해촬영물 유통이 심각했던 웹하드사 중 하나였다. 2017년까지 10만 건 이상의 피해촬영물이 공공연하게 유통됐다.
한편 기프트엠의 사내이사를 역임한 A씨는 2018년 디지털장의업체 ‘뉴스케어’의 대표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디지털장의업체의 주소지는 기프트엠의 바로 옆 사무실이었다. 이는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던 웹하드업체 관계자가 불법촬영물 피해자들을 상대로 디지털 장의 사업을 벌이며 피해자를 이중으로 착취하는 ‘웹하드 카르텔’의 대표적 사례다.
현재 쉐어박스, 미투디스크는 팬더TV를 송출하고 있다. 이들 웹하드들은 벗방의 부흥을 계기로 등기부등본에서 사라졌던 운영진들과 다시 한 번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팬더티비의 또 한 축인 풀티비는 2017년 설립됐다. 풀티비의 운영사인 (주)글로벌몬스터의 매출액은 2017년 16억 7027만 원에서 이듬해 326억 8611만 원을 기록했다. 1년 새 20배 가까이 매출이 뛴 셈이다. 2018년 업계 1위인 아프리카TV의 매출액은 1266억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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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 크게 성장한 이 회사의 대표는 웹하드 논란이 한창이던 2018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과방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이목을 끌었다. 당시 신생 업체였던 풀티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정요구를 가장 많이 받은 곳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배 모 풀티비 대표는 국정감사에서 “자율규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실시간 방송이다 보니까 BJ분들이 어느 정도 한계가 조금 있는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여성 착취의 생태계, 벗방 BJ의 노동
여성단체들은 현재 ‘벗방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벗방 플랫폼이 하나의 거대한 사업으로 자리 잡은 만큼, 노동권과 성적자기결정권,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BJ들도 늘어나고 있는 까닭이다.
한 여성단체 활동가는 “여성 BJ가 자발적으로 방송한다고 해서 착취와 폭력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며 “남성 시청자들이 여성 BJ를 집단적으로 그루밍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루밍이란 취약한 상대방을 길들여 성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로서 주로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에서 논의되는 개념이다. 여성의 자발성을 기반으로 계약이 이뤄지고, 이럴 경우 피해를 주장하기 어려워 고용주 혹은 가해자는 ‘더 안전한’ 성적 착취가 가능해진다.
현재 다수의 벗방 BJ들은 엔터테인먼트 계약을 통해 일정한 지원을 받으며 방송을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불공정 계약의 문제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모 법률상담소에 올라온 사례들을 살펴보면 벗방 BJ는 수익 보장 및 향상을 위해 점점 높은 수위의 방송을 요구받는다.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해 빚이 쌓인 BJ들은 더 높은 수위의 방송을 ‘자발적으로’ 감내해야 한다.
BJ들에게 빚이 쌓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얼굴 성형 수술이나 가슴 확대 수술을 권유받고, 엔터테인먼트가 소개해주는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는다. 수술 후 회복 기간 동안 생활비와 생활공간(월세)을 지원해주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채무가 된다. 마이크, 카메라 등의 장비 대여를 무료라고 선전해 놓고, 정작 가장 중요한 컴퓨터 구매 비용을 BJ에게 갚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엔터테인먼트는 BJ를 보호한다는 의무조항도 지키지 않는다. 우울증 등의 병세 발견 시 적절한 치료를 할 것, 제3자가 연예활동을 침해하거나 방해할 경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사생활 보장, 인격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있지만 회사가 문제를 방관했다고 토로하는 사례가 많다.
한 BJ는 “시청자들의 심한 성희롱과 괴롭힘으로 여러 차례 고통을 호소했지만 회사 측 대응은 안일했고 이후 수면장애와 섭식 장애 등을 겪게 됐다”고 호소했다. 다른 BJ도 “시청자들의 폭언과 욕설 때문에 몇 달 동안 정신적, 육체적인 스트레스도 굉장히 많이 받은 상태라 그만두고 싶은데 회사는 나에게만 계약 파기의 책임이 있다고 한다” 고 밝혔다.
계약 외의 의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계약서엔 벗방 녹화분의 SNS 유통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업계의 관례라며 이를 강요하기도 했다. 벗방이 아닌 다른 장르의 방송으로 계약을 했지만, 수익이 낮다는 이유로 벗방을 강요받기도 한다. 하지만 BJ들이 이 같은 불공정 조항에 항의하기란 쉽지 않다. 계약서상 비밀 유지, 계약 파기 시 타 방송 출연 금지(6개월~48개월까지 다양), 위약금 납부 등의 조항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 BJ들의 ‘자발성’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노예계약으로 BJ를 착취하는 ‘벗방’은 또 다른 여성 착취 산업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각주>
1 〈인터넷개인방송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연구〉, 방송통신위원회, 2018.
2 전통 유료방송 서비스를 수신하는 데 필요한 '셋톱박스(set-top-box)' 없이 인터넷으로 방송과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