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으로 코로나19 사회의 ‘공공 사회서비스’ 앞당기기

[기고] 사회서비스원 돌봄노동자가 말하는 새로운 세상의 돌봄노동

여러 사업장과 업종이 모인 공공운수노조가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관통하며 하나의 목소리를 모아가고 있다. 바로 코로나19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직시하며 ‘함께 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그리고 그 세상은 사회공공성 강화를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꼭 어려운 말을 쓰지 않더라도 사회서비스 노동자이자 돌봄노동자라면 누구나 현장에서 늘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을 요구다.

최근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남은 병상이 몇 개고 중증환자는 몇 명인지,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이 연일 시급하게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돌봄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관심과 대응책 마련 분위기가 좀처럼 형성되지 않고 있다. 때때로 어느 요양원에서 무더기 확진이 됐다는 단신만 눈에 띄고, 그 사이사이로 우리보다 더 무서운 감염 확산세에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 독거노인들과 시설입소 노인들이 얼마나 안타깝게 희생되었는지가 조용히 전해질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서비스 공공성이나 돌봄노동자의 안전과 권리에 관한 이야기는 설 자리를 잃는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코로나19 사회에 접어들며 돌봄노동자 스스로 우리 노동을 재평가해야

그래도 돌봄노동에 대해 조금씩 새로운 이야기들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사회공공연구원이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감염 위험이 높은 직군들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 보건의료복지 부문이 통째로 고위험 직군에 들어갔다. 여기에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장애인활동지원사 같은 돌봄노동자들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돌봄노동자가 정서지원 과정에서 많은 감정노동을 하게 된다는 점이나 평소 근골격계 위험을 달고 산다는 점도 점차 부각되는 참이다. 이런 사정에 걸맞은 사회적 대우를 돌봄노동자가 직접 주장하는 활동들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동시에 돌봄노동자 스스로가 새로운 감염병 위기 사회에서 우리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어떤 자세와 요구를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함께 새롭게 고민해야 할 때라는 생각도 든다. 단지 위험하니까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이번 코로나19 재난을 계기로 우리 일의 가치를 스스로 돌아보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예컨대 요양보호사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정부나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몇 년 새 꾸준히 높았다. 그런데 이 얘기는 마치 지금은 아무나 대충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다는 것처럼 속상하게 들릴 때가 많다. 돌봄노동자의 전문성 강화라. 정부는 교육도 더 시키고 대학과정도 만들겠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돌봄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자성을 인식하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다.

내 주변 요양보호사나 장애인활동지원사 중에는 돈벌이보다는 봉사나 좋은 일을 하려고, 때론 장애인운동 활동의 일환으로 이 일을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꽤 있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두려워하신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좋은 일’로만 나의 돌봄노동을 바라봐서는, 돌봄노동자 주도로 우리의 노동권과 전문성을 키우는 흐름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우리의 노동은 그냥 ‘좋은 일’이 아닌 꼭 필요한 사회서비스!

가장 안타까운 때가 그날그날 이용자의 컨디션과 요구에 따라 동료들의 자존감이 흔들리는 걸 볼 때다. ‘좋은 마음으로 갔는데 그냥 파출부 부리듯 하더라’며 힘 빠져 하는 동료의 모습이 그렇다. ‘너희는 대변이나 치우는 사람들’이라는 비하 발언도 때때로 귀에 박힌다. 그러나 거동이 힘든 어르신이나 청각장애자가 집안 이것저것을 치우는 행동을 1시간이라도 하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노동은 ‘그냥 파출부 일’이 아니라 요양보호가 되고 활동지원이 된다. 게다가 ‘그냥 파출부 일’도 그 이용자에겐 얼마나 소중한 지원이며, 배변 처리는 또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내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는 이런 생각을 튼튼히 키워야지만 흔히 ‘진상 고객’으로 불리는 까다로운 이용자를 대하기에도 더 수월해진다. 내 일의 가치를 스스로 잘 알수록 이용자에게 무엇이 꼭 필요한 지원이고 무엇이 부당한 요구인지도 더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중심을 잡고 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 사회는 돌봄노동자들이 내 일의 가치를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을 전혀 지원하지 않았다. 자부심을 키울 근무환경을 제공하지 않았고, 그 핑계로 우리 노동이 저평가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니 어쩌면 어떤 돌봄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좋은 일’이자 ‘봉사’로 포장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해줘야 한다. 우리 돌봄노동자들은 봉사자도 아니고 ‘아무나’도 아니다. 우리는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집안일과 배변 처리를 해내는 돌봄노동자이고, 사회적 지원이 꼭 필요한 동료시민들에게 정서적 돌봄 제공자가 되고 보호자가 되기도 하는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다. 특히나 감염병 위기 속에서도 절대 멈춰져선 안 되는 노동의 주체들이다.

돌봄노동자의 자부심과 역량을 키워주는 공공기관 ‘사회서비스원’

우리는 더 큰 사회적 역할도 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부심과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와 조합원들의 직장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 시급이 아닌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이용자와의 ‘일대일 매칭’으로 흩어져 일하는 게 아니라 여러 동료와 팀을 이뤄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공공이 직접 운영하는 첫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인 이곳 사회서비스원에서 마침내 확인하고 있다. 이런 환경을 세팅하고 그 효과를 기다려줄 수 있는 사회서비스원의 존재가 우리 사회 전체로 보아도 참 소중한 이유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보건복지부는 지금 전국에 4개 설립된 사회서비스원들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돌봄단’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서울시사회서비스원도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 긴급돌봄을 시행하기는 했으나 당시엔 서울시 확진자가 많지 않아 실제 이용사례는 극히 소수였다. 다행스러운 일이고, 또한 긴급돌봄을 처음으로 노사간 협의하고 준비해본 당시 경험을 부디 필요한 때 잘 살릴 수 있기를 우리 지부도 바라고 있다. 이처럼 감염병 위기로 인한 돌봄 공백을 메우는 사업은 수익성이나 편의를 주로 따지는 민간 기관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행보다. 민간이 책임질 수 없거나 책임지지 않는 사회서비스를 공공이 나서서 책임지겠다는 지금 이 계획을 시민들이 직접 경험하고 꼭 눈여겨 봐준다면 좋겠다.

“어쩌다보니 노동조합?” ... ‘공공 사회서비스 체계 확립’에 가장 앞장서다

지난 해 10월 출범한 우리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는 어느덧 조합원 백 명을 넘긴 노동조합이 되었다. 사회서비스원 자체가 민간의 반발과 여러 정책과제 제기 속에 세워진 화제의 기관이다 보니 우리 지부도 정말 많은 것을 고민하고 또 문제제기하며 지난 1년을 보냈다. 최근엔 더 나은 재가서비스 매칭표 편성을 위한 협의를 사측에 요청하며 내부논의를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우리의 지난 1년간의 경험을 모아 노동조합 토론회를 열었다.

또한 외부에서 요청한 자문회의들에도 열심히 참석하며 현장 노동자의 입장을 직접 알리고 있다. 정말이지 사회서비스원이란 기관을 정부와 서울시가 만드는 건지, 우리 노동조합이 만드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정신없는 1년이었다. 매번 의견을 모아주시는 우리 조합원들도 민간에선 기대도 못했을 월급제와 서울시생활임금에 만족하며 그저 시키는 출퇴근만 하며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노동조합을 시작하고야 말았다는 심정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모범적인 사회서비스원으로 주목받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 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지부의 모든 활동이 우리 사회에 ‘공공 사회서비스 체계’ 확립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민간 소속이 절대다수인 전국 70만 명 사회서비스 노동자 중 단 백여 명인 ‘공공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바로 우리 지부다. 이 숫자로 나타나는 자부심 못지않게 큰 사회적 책무를 느끼며 우리 지부 조합원들 모두 ‘더 안전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자는 9월 19일 공공운수노조 총회 안건에 ‘당연한 것’이니 함께 하자며 투표할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코로나 이후 더 평등하고, 더 안전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코로나19 위기, 공공성 강화와 노동자 고용‧생계 보장을 위한 사회적 요구안 채택 및 공동행동 채택’ 단일 안건으로 9월 19일 전 조합원 총회를 연다. 23만 명 조합원은 사업장, 업종을 넘어 공동의 사회적 요구, 공동 행동을 결정하는 동시 투표(총회)를 오는 9월 14~18일 집중해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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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선

    사회 돌봄의 일이 그저 좋은 일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문적 일로 격상시키고 자부심을 갖자는 말씀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