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5월과 6월은 특별한 정치적 시간성을 부여한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시민’이 역사로부터 호명돼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이란 호명은 점점 몰역사적이고 탈정치화된 의미가 돼가고 있다. 과거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주체화하며 나타났던 시민은 현재의 시민과 어느 정도의 연속성을 갖고 있는가. 서로를 태극기 부대와 조국기 부대라고 조롱하는 광화문과 서초동의 시민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쪽에는 산업화 시대로부터 태어난 시민들이고, 산업부흥과 국가 발전의 공적을 내세우는 시민들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민주화 시대로부터 태어나 혁신주의로 무장하고 글로벌 금융자본주의로의 선도적 진입을 유산으로 내세우는 시민들이 있다.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두 축 사이에서는 어느 쪽의 광장에도 자신의 자리가 없는 사람들, 공론장도 없고 국가도 없는 ‘비시민’들이 점점 늘어가는 중이다.
시민사회, 시민운동, 시민단체 등을 통해 가시화된 ‘시민’이 그 자체로서 진보성을 담지하던 시기가 있었다. 80년대까지 독재정권에서는 강력한 억압에 의해 시민 사회 자체가 ‘불허’됐고, 시민사회도 시민 운동도 모두 불법이고 비합법이던 시기에는, ‘시민’이란 개념 또한 강력한 정치적 저항 주체를 표상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 자체가 불온한 정치적 상상력이었으므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교수, 대학생, 언론인, 변호사, 대학생들은 정치범이 돼 감옥에 갔고, 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죽임당하거나 삼청교육대 같은 교화시설로 끌려갔다. 재벌도 군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무자비한 보복을 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던 때였다. 보수와 진보가, 자유민주주의부터 사회민주주의까지 나아가 더 급진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까지, 다양한 분파들이 모조리 군부에 의해 전체적으로 억압돼 하나의 폭압적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독재의 종식을 공통의 목표로 공유하며 87년 민주화 투쟁의 다양하고 광범위한 시민 연대의 전선이 만들어졌고, 독재로부터 해방돼 나오면서 비로소 한국에서 시민 사회라 할 만한 영역이 탄생했다. 반독재 민주화라는 단일 목표 안에 뭉쳐있던 다양한 분파 운동들이 분출돼 나오는 과정에서 시민운동의 갈래와 저변이 확산됐고 정치적으로도 세력화할 수 있었다. 시민 사회와 노동계급,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의 관계가 재설정돼야 했고, 민주화 운동의 내부 또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등 다양한 민주주의 간의 경합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정치적 분화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곧바로 글로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덮쳐왔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IMF 체제라는 폭력적 방식으로 수립되는 과정에서 시민 운동과 민주주의 운동은 노동운동과 결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반하면서 굴절되고 왜곡됐다.
문민정부의 지배전략은 이전의 군부통치와는 다른 성격을 띠었다. 노동운동은 파괴하고 시민운동은 포섭하는 이중전략이었다. 노동자 민중은 때리고, 시민은 통치의 파트너로 포섭하는 강압통치와 문화통치의 이중전략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졌고, 더 심화됐다. 군부독재가 사용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기술이 군대와 경찰을 장악해 가시적 국가 폭력으로 공포 정치를 통해 복종시키는 것이었다면, 문민 정부는 미디어, 법률, 지식, 제도, 문화 등 비가시적이고 구조화된 폭력과 문화적 정교화를 통해 그것을 달성했다. 이 영역에 포진한 언론인, 학자, 지식인, 전문가들이 광범위한 중간 관리계급을 형성했고, 이들 중간 관리계급을 통한 지배 권력의 위임통치 형식은 당시 유입된 ‘거버넌스’라는 신국가 경영론을 통해 정당화됐다. 국가 권력은 관리계급을 시민사회로부터 충원하거나 할당했다. 이 인력풀은 자본도 공유하는 인적자원이 됐다. 오늘날 자본을 대리하거나 국가 관료를 대신해 정책 용역을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과 실행단위로서의 시민사회가 한 세트로 제도화된 시민관료주의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초국적 자본도 국가 내에서 지배의 인프라를 구축해줄 내부의 공모자와 협력자를 필요로 한다. 국가 안에서 국제적인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일국의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자본의 지역관리자들은 주로 국제 NGO 네트워크나 전문가 집단을 통해 충원됐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출신의 관료를 양성해 식민지 민중을 위탁 통치한 것처럼, 글로벌 자본주의는 동일한 방식으로 내부 관리자를 통해 제국적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했다. 구 식민통치와의 차이가 있다면 국가 상층부가 직접 매판권력이 됐던 것과 달리 신식민지적 통치에서는 관료기구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라는 영역이 적극 동원되고 활용됐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반독재 민주화 세력을 표방하는 정부가 시민사회를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적극 유입하고 시민운동을 장려하면서 전 사회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초기 시민사회는 오랜 투쟁의 대상이었던 군부 독재에 대한 감각에 비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과두정에 대한 저항 감각은 부족했다. 시민사회 원로와 명망가들은 초심을 잃어가는 민주 정부에 대해 일정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이들 새로운 지배자들과 여전히 피억압자로 남아있는 노동자 민중 사이에서 타협적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용하거나 자임했다. 이러한 중재 권력은 다시금 시민사회 정치력의 기반이 됐다.
국가 내부의 계급 변동 및 양극화는 시민사회 내부의 양극화도 촉진했다. IT산업과 지식시장 등 신산업 분야에서 지분을 선점 하며 부상한 전문직 고소득 자산가층과 몰락하는 제조업 분야의 소자본가 계층이 분리 분해되며 중간계급도 양극화돼, 한편에서는 상층부로 이동하고, 다른 한편은 하층부로 탈락됐다. 상층부 시민들의 문화적 생활양식은 서구 중심부 시민들의 제국주의적 생활양식과 점점 유사하게 수렴됐고, 민중의 생활 세계나 생활 감각과 유리된 ‘세계시민적’ 시민문화가 국내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했다. 서구 중심부 국가의 시민들과 인식론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점점 동질화돼 가는 시민 즉 ‘세계시민’과, 다른 나라의 하층화된 노동계급과 경쟁하면서 거대한 잉여노동을 구성하는 ‘잉여시민’으로 양분된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전자의 시민들에게는 자본의 영토 어디서나 통용되는 세계적 시민권이 보장되지만, 후자의 시민들은 노동시장의 세계화된 경쟁으로 내몰리며 자국 내의 시민권도 축소·박탈된다. 글로벌 시민권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따른 소유권의 세계화를 통해 확장된 반면,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전 세계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협상력과 단결권을 약화시켰고, 노동권의 약화와 함께 노동권에 기반한 시민권도 지속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난 30년간 시민은 점차 개인의 자격, 신분, 권리와 결부돼 특권화 해왔고, 다른 한편으로 이 특권화는 그 반대편에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광범위한 비시민적 존재를 양산했다. 특히 노동권의 축소와 시민권의 축소는 분리 불가능한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 하고, 그동안 우리는 노동의 해체와 시민의 해체를 연결해 생각하지 못했다. 노동자와 시민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됐고, 이러한 분열은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사회의 양극화 및 계급 분화 속에서 동일한 양상으로 시민의 분화, 해체, 재구성도 동시에 전개됐던 것이다. 노동시장 에서 안정적인 정규직 고소득 노동자와 불안정한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의 간극은 시민사회에서 상승한 소수의 완전 시민과 하층화된 다수의 불완전 시민 사이의 간극과 일치한다. 시민공론장은 주로 전자의 시민들로 충원되며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전문가 중심의 부르주아 공론장은 공적인 국가기구의 하위 체계로 편입되어 거버넌스라는 방식으로 지배 권력과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반면에 후자의 시민들에게 정치 참여는 구조적으로 봉쇄된다. 그 결과 지금 한국의 시민사회는, 근대 부르주아 정치 사상가들이 ‘시민의 자격’ 으로 옹호했던 ‘부와 여가를 가진’ 능력 있는 시민들과, 그들이 ‘무리, 떼, 인구’로 호명했던 ‘돈도, 시간도, 능력도 없는’ 인민 대중으로 다시금 이분화됐다. ‘가진 것은 몸뚱이뿐’ 이라는 의미의 프롤레타리아는 프레카리아트의 신체를 통해 재탄생했다. 군부독재의 억압 아래 평평하게 짓눌렸던 피억압자들의 관계 역시 경쟁과 위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에 의해 수직화됐다. 군부독재는 어느 한 놈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짓밟았지만, 자본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튀어나와야만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어디서부터 지배계급이고 어디서 부터가 피지배계급인지도 나눌 수 조차 없는, 더 강한 자가 더 약한 자를 착취하는 연쇄 착취의 구조 속에서 시민은 ‘더 시민’과 ‘덜 시민’으로 위계화되면서 양극화됐다. 지금 한국에선 부자일수록 ‘더 시민’이고, 빈자일수록 ‘덜 시민’이다. 서울·수도권의 중심부와 가까울수록 ‘더 시민’이고, 지방·농촌의 주변부로 갈수록 ‘덜 시민’이 된다. ‘더 시민적’ 존재라는 것은 더 입법적 주체가 될 수 있고, 국가의 정책과 제도에 더 개입할 수 있으며 영향력을 더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정책이나 한국형 뉴딜 정책에서 보듯이 이 시민들은 언론 플레이를 통해 또는 정부의 관직이나 민관협력 위원회에 직접 참여를 통해 시민공론장을 자기(계급)의 사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해관계자자본주의’는 시민사회를 해체하고 사회를 오직 이해관계들의 집합체로 환원한다.
누가 누구의 위나 아래에 있지 않으며, 지배받으면서 동시에 지배하는 자가 된다는 평등성을 내세웠던 정치적 시민사회의 원리는 해체되고, 동질성의 원리에 따라 구성되는 시민사회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촛불시민’은 ‘동질적 시민사회’의 대표적 사례다. 87년의 시민이 표상하는 것은 ‘민주 시민’이었지만, 지금 시민은 ‘진보적 자산가’ 들이 대표한다. 낸시 프레이저는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에서 ‘반동적 신자유주의’와 ‘진보적 신자유주의’를 구분한다. 트럼프가 반동적 신자유주의를 대표한다면 클린턴과 오바마의 민주당은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에 뿌리를 두고 인정정치의 영역에서만 진보를 상징투쟁에 동원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 집단이다. 진보적 상징과 정당화의 논리를 제공하는 이들은 바로 오랫동안 정부와 결탁하여 정부의 지원금으로 활동하며 몸집을 키워온 시민단체와 운동가, 전문가들이다. 이러한 시민사회 내부의 계급적 변동과정을 간과하고, 87년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부르주아적으로 전유한 상징투쟁의 기호로 이용되는 시민이란 호명은 공허하며 현실의 존재와 일치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촛불 시민은 그때의 민주시민과 등치될 수 없다.
‘성 안 시민’과 ‘성 밖 시민’이라는 구분은 정치적 존재로서의 시민이 다시 특권적 신분으로서의 성민(城民)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꿰뚫고 있는 표현이다. 이런 특권화를 통해 시민은 한편으로는 다시 ‘부족화’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화(파편화)’됐다. 소위 ‘문파’를 자처하는 시민들은 고대의 혈맹적 부족사회처럼 정치적 가문을 중심으로 한 이익집단의 구성원으로 퇴행한 결과다. 시민사회 명망가들은 아가멤논이 부족의 명예를 위해 자기의 시민들(백성들)을 진두 지휘하며 싸우듯이 민주 적통 세력의 장수가 되어 시민을 가문의 싸움에 동원한다. ‘문파’나 ‘달빛기사단’이라는 이름은 그런 인식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진영을 대표 하는 장수들은 가문 휘하의 백성들이 그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도록 날마다 영웅 서사와 성전의 수사학을 개발한다. 이들이야 말로 존재는 철저히 신자유주의 지배동맹에 두고, 인식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 머물러 민주세력의 적통 후손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반동적 신자유주의자’들과 인정정치의 영역에서 상징투쟁에 과몰입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자’들이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라는 말에 올라타서 진보의 문양이 그려진 깃발과 방패를 들고 민중의 삶터를 폐허로 만들면서 싸우는 꼴이다. 부족화의 반대편 에서는 시민을 인구로 환원하는 반정치가 시민정치를 참칭하고, 시민참여가 곧 민주 정치인 것처럼 호도된다. 그러나 예전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나 최근에 나오고 있는 ‘기후 시민의회’ 같은 모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민참여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주거지, 성별, 연령 등 인구대표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인구로부터 시민사회를 표본화해 추출하는 방식이다. 어떤 정치적 입장도 갖지 않은 ‘순수한’ 인구 집단으로 부터 추출해 표집된 개인들로 일종의 시민 사회 모형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결정된 것을 ‘사회적 합의’로 둔갑시킨다. 이것은 다시 특별한 개인들 즉 사회원로나 명망가들로 구성된 원로회 형식의 시민의회 모형을 구축하는 방식과 결합한다. 이것은 ‘지혜로운 자들’로 호선되는 원로회와 ‘누구나’로 무차별적으로 호출되는 병사회로 구성되는 고대 귀족적 부족사회의 전형적인 통치 모델 이다. 예컨대 탄소중립위원회가 전자라면, 기후시민의회는 후자를 반영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런 반민주주의적인 가부장제적 정치 모델이, ‘추첨이라는 방법’, ‘숙의라는 절차’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추첨제 민주주의’니 ‘숙의 민주주의’니 하는 ‘상징 조작’을 통해 진보적 외피를 둘러쓰고 민주 주의로 둔갑한다. 이런 개념의 조작은 친환경 물질이 들어갔다고 선전하는 친환경 상품 이나 유기농 사료를 먹였다고 친환경 유기농 우유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기만적이다.
반동적 신자유주의와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모두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동맹을 통해 권력을 분점하고 지배체제를 유지한다.
프레이저는 새로운 대안의 정치의 길을 내려면 양자의 헤게모니 동맹에 대항하는 ‘대항 헤게모니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더 시민’은 지배층으로 편입돼 이익을 공유하는 반면, ‘덜 시민’은 시민적 삶의 조건들을 점점 더 박탈당하고 종국에는 시민사회의 외부로 축출되고 있는 상황 이라면, 시민공론장의 재구성과 새로운 시민 주체의 형성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 필요한 시민운동은 ‘시민된 자들의 권리 운동’이 아니라 추방당한 비시민들의 ‘시민-되기’로서의 시민사회 재구성이 아닐까? 머리를 갈아치우거나 오른쪽과 왼쪽을 교체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변이와 변종은 민중의 특기다. 시민이 아닌 자들이 시민을 다시 상상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완전히 다른 시민을 창조해낼 수 있다. 현재 기득권화된 시민운동 내부로부터 균열을 내는 페미니즘 운동, 청소년·청년 운동, 장애인 운동, 동물권 운동 등이 모두 그런 종류의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궤도에서 벗어난 플랫폼 노동자와 실업자 운동, 해고자 운동도 마찬가지다. 특히 근래 뚜렷이 부각 되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장 투쟁은 주목할 만하다. 하나의 투쟁을 통해 교차하는 노동, 페미니즘, 환경 이슈를 연결하고 사회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관점을 제공하며, 여기에 결합하는 기록노동자들의 기록투쟁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정치에 동시에 맞서는 민중 담론과 노동자의 서사를 복원해내고 있다.
그러나 몫이 없는 자들의 몫을 요구하는 투쟁은 20세기의 노사정 합의정치와 같은 형식을 통해 국가 내의 정치적 지분과 이익 공유로 해석돼선 안 될 것이다. 서구의 노동자들이 자국 내의 노동계급의 권익 향상을 위해 자본의 세계 식민지와 착취를 용인한 결과가 종국에는 다시 내부의 계급정치로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던 것을 기억하자. 지금 필요한 시민사회 재구성은 제도화된 시민사회 내부에 참여의 지분을 요구하는 투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민중공론장의 재구성과 시민의 재구성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노동권 없는 노동자, 주권 없는 인민, 권리 없는 시민은 모두 연결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