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바일 화면에 뜬 NYT의 헤드라인 팝업 화면 |
지난 5월 10일 월요일 <뉴욕타임스>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을 속보로 띄웠다. “가자지구 무장세력의 로켓 발사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국경경찰과 팔레스타인 시위대 간의 다툼으로 갑작스레 폭력이 고조되면서 이스라엘이 안절부절 하고 있다.” 예루살렘 시간으로 오후 7시경이었다. 이날 저녁 가자지구 집권세력 하마스가 예루살렘에 로켓을 발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헤드라인은 같은 날 오전 8시 이스라엘 국경경찰이 사원을 공격한 사실이나 오후 6시까지 하마스가 알아크사 사원과 셰이크 자라에서 철수를 요청한 사전 경고는 담지 않았다.
‘가자지구 무장세력’이 ‘로켓 발사’를 하기 전 10일 아침 이스라엘 국경경찰은 무슬림의 3대 성지인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모스크에 들이닥쳤다. (참고로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위반하며 1980년 동예루살렘을 불법 병합한 상태로 이 지역에 대한 그 어떤 합법적 통치권도 갖고 있지 않다.) 몇 주 전부터 동예루살렘에서 2km 떨어진 셰이크 자라 마을에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세우는 문제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가 열리던 도중, 일부 시위대가 모스크로 피신하자 이스라엘 국경경찰은 별다른 절차 없이 모스크를 포위한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던 예배자 무리에 무차별적으로 고무 총알과 섬광탄, 최루 가스를 투하해 최소 330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를 지켜보던 하마스는 이스라엘 국경경찰이 모스크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며 “18시까지 철수하지 않을 시 공격하겠다”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군은 이 시간을 기다리며 ‘대응 공격’을 준비했다.
하마스가 로켓 발사를 감행하기까지, 서구 주류 언론은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수년째 맞닥뜨려온 인종 청소의 패턴을 심도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강제퇴거를 합법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불법 유대 정착민들이 사법제도를 이용했으며, 특히 이번 사태 발발 몇 주 전부터 더욱 극심해진 침탈 행태에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던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도발에 일부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이 가시화되면 이스라엘은 이에 ‘반응해’ ‘반격’을, - 본격적인 학살을 - 가했고 바로 그 지점부터 ‘뉴스’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들 뉴스 기업 대부분의 창업주나 소유주, 데스크 포지션에 이스라엘 국적을 지닌 인력이 포진해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AJ+≫의 프로듀서 사나 사에드(Sana Saeed)의 보도에 따르면(1) 1984년 이래 모든 <뉴욕타임스>의 예루살렘 지국장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한 팔레스타인 인종청소 ‘나크바’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이 강제로 쫓겨난 서예루살렘의 가옥을 제공받아 거주해왔다. <타임>지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을 다루는 다양한 층위의 기자들은 자식들을 이스라엘 방위군(IDF)에 입대시킨 부모이기도 했다. 이러한 구도에서 지속적이고도 구조적인 이스라엘의 일상 속 폭력이 보도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편향적인 보도 관행은 오랜 시간 기반을 닦아왔다. 지난 19일 발표된 신규 논문 <뉴욕타임스, 팔레스타인 투쟁을 왜곡하다 - 1차, 2차 인티파다 당시 미국 뉴스 보도에 나타난 안티-팔레스타인 편향성 사례 연구>(2)는 이러한 경향이 적어도 1980년대 후반부터 뚜렷이 확인돼왔으며 2000년대 들어 더욱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는 <뉴욕타임스>가 1차, 2차 인티파다(각각 1987년, 2000년에 일어난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당시 사건을 다룬 3만3천여 기사를 머신러닝 기법을 동원해 팔레스타인에 얼마나 더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수사를 사용해왔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얼마나 더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했는지를 살폈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을 언급할 때 1.5배 이상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이 한 행동은 2배 이상 수동적이거나 부정적인 어법으로 표현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점령국 이스라엘의 책임을 최소화하며 ‘양측’이 동등한 폭력을 행사하고 마찬가지의 아픔으로 ‘분쟁’을 견뎌내고 있다는 고질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해왔다.
이스라엘 국경경찰의 모스크 공격은 ‘충돌’과 ‘긴장’으로 둔갑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 점령과 구조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분쟁’으로 납작해진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을 갖춘 채 중동 지역 유일한 핵무장 국가로 군림하는 이스라엘이 육·해·공을 봉쇄한 가자지구에 가하는 공격은 어엿한 ‘전쟁’이 된다. 사상자 수만 해도 10배 이상 차이 나는 이 ‘전쟁’을 전달하는 데 있어 서구 언론은 의도적인 문법적 오류를 반복한다. 이스라엘인들은 대개 ‘죽임을 당했지만(killed)’ 팔레스타인인들은 그저 ‘죽었다(died).’(3) 사건의 본질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 점령은 희미해지고 ‘본능적으로 야만적인’, ‘증오심과 복수심이 가득한’, ‘인간성이 말소된’ 팔레스타인만 또렷해진다. ‘괴물‘, ’테러리스트’로 묘사되는 팔레스타인에 연민을 느끼고 이들의 절규에 공감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간의 흐름을 바꾸는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2007년과 2017년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 특별보고관 2명이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 인종차별정책) 국가라고 규정한 데 이어 올해 초 이스라엘 인권단체와 국제 인권단체 역시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로 규정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그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서구의 정치인이나 활동가에 비해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젊은 팔레스타인 작가, 활동가, 변호사들의 목소리 또한 각종 소셜미디어를 타고 재생산되고 있다.
셰이크 자라 출신의 팔레스타인 작가 모하메드 엘-쿠르드(Mohammed El-Kurd)가 ≪CN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보여준 대화가 대표적이다. 앵커는 묻는다. “당신은 당신과 당신의 입장에 있는 다른 가족들과 연대하면서 일어난 폭력적인 시위를 지지합니까?” 서구 언론의 ‘화이트워싱’에 단련된 엘-쿠르드는 의연하게 응수한다. “당신은 나와 내 가족에 대한 폭력적인 박탈을 지지합니까?” 어색한 침묵 후 앵커가 ‘폭력적인’이라는 단어를 뺀 채 다시 같은 질문을 건넨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이러한 연대 시위를 지지하느냐는 겁니다.” 그제야 그는 대답한다. “네, 저는 인종청소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저항을 지지합니다.”
팔레스타인 청년 활동가 아흐마드 이브사스(Ahmad Ibsais)는 5월 10일에서 13일 사이 서구 언론들이 발표한 헤드라인을 팔레스타인의 내러티브로 첨삭한 포스팅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헤드라인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헤드라인이 가능했다면 사람들의 상황 인식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었을까? 왜 여전히 가능하지 못한걸까?
▲ 팔레스타인 활동가가 팔레스타인 내러티브로 수정한 뉴스 헤드라인. Instagram @ahmad.ibsais |
뉴욕타임스
Israel Hits Gaza With Airstrikes as Hamas Increases Rocket Fire.
이스라엘, 하마스가 로켓 폭격을 증폭시킴에 따라 가자 지구 공습
(팔레스타인 내러티브)
Israel Bombs Civilian Neighborhoods in Gaza as Palestinians Resist Seven Decades of Genocide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인들이 70년 간의 집단 학살에 저항함에 따라 가자지구 민간인 지역 폭격
▲ 팔레스타인 활동가가 팔레스타인 내러티브로 수정한 뉴스 헤드라인. Instagram @ahmad.ibsais |
워싱턴포스트
After Jerusalem erupts, deadly strikes and clashed spread across Israel and th Palestinian territories
예루살렘에서의 폭발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 전역에 치명적 격파와 충돌 이어져
(팔레스타인 내러티브)
After Palestinian worshippers were gassed by Israeli forces in Jerusalem, colonial violence accelerates across all of occupied Palestine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예배자들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최루 가스에 휩싸인 후, 점령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식민지 폭력 가속화해
▲ 팔레스타인 활동가가 팔레스타인 내러티브로 수정한 뉴스 헤드라인. Instagram @ahmad.ibsais |
AP
Rockets kill 2 Israelis; 28 die in Gaza as Israel hits Hamas
로켓으로 이스라엘인 2명 살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강타하면서 가자지구에서 28명 사망
(팔레스타인 내러티브)
Israeli airstrikes kill 28 Palestinians in the Gaza open-air prison, retaliatory rockets kill 2 Israelis
이스라엘이 지붕 없는 교도소 가자지구를 공습해 팔레스타인인 28명 살해, 보복 로켓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2명 사망
▲ 팔레스타인 활동가가 팔레스타인 내러티브로 수정한 뉴스 헤드라인. Instagram @ahmad.ibsais |
메트로
Gaza tower block explodes as 31 people killed in escalating Israel crisis
이스라엘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가자 타워 블록이 폭발하면서 31명이 사망
(팔레스타인 내러티브)
Gaza tower bombed by Israeli missiles as 28 Palestinians and 3 Israelis killed in attempted ethinic cleansing
인종청소가 추진되는 가운데, 가자 타워 블록이 이스라엘 미사엘에 폭격되면서 팔레스타인인 28명과 이스라엘인 3명이 사망
▲ 팔레스타인 활동가가 팔레스타인 내러티브로 수정한 뉴스 헤드라인. Instagram @ahmad.ibsais |
도이치벨레
Jerusalem tensions: Rockets fired as unrest spirals - As it happened
예루살렘 갈등 : 불안이 급증한 가운데 발사된 로켓
(팔레스타인 내러티브)
Rockets fired in defense of Israeli massacres against Palestinians in occupied Jerusalem
점령당한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학살을 막기 위해 발사된 로켓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지난 21일 현지 시각 오전 2시를 기해 휴전에 합의했다. 지난 11일 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아동 66명을 포함해 총 248명이 사망했고, 1900여 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에서는 12명이 사망했고 3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폭격만 멈추었을 뿐 점령과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것은 아니다. 700만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여전히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추방당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48년 팔레스타인 땅) 전체 인구 중 20%는 엄연히 팔레스타인인인데도 이스라엘 의회 크네셋은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권익을 우선으로 한다’는 취지의 ‘유대민족국가법’을 통과시켰다. 3백만 명 인구가 사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는 70만 명의 불법 유대 정착민들이 이주해 이스라엘군의 보호 아래 살고 있다. 정착촌과 정착촌을 잇는 도로 건설과 정착민들의 안전을 위시한 지속적인 검문소 설치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국제사회가 책임론을 퍼붓는 ‘하마스’를 처단하는 것과 관계없이 남겨지는 문제이며, 팔레스타인의 박탈당한 자유와 존엄, 침해당한 인권을 되찾는 것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견지해야 할 관점과 행동은 명료하다. 팔레스타인을 문제 해결의 중심에서 지우려는 자들이 누군지, 팔레스타인인들의 발언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왜곡 없는 내러티브가 전달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날카로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이 그들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 미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전제돼야 하는 충분조건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각주
(1) AJ+, https://twitter.com/ajplus/status/1395887296944263171
(2) Holly M. Jackson, http://web.mit.edu/hjackson/www/The_NYT_Distorts_the_Palestinian_Struggle.pdf
(3) AJ+의 프로듀서 사나 사에드(Sana Saeed)의 보도 내용 중 일부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