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에 살해당한 팔레스타인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 [출처: 트위터 내 쉬린 아부 아클레 추모 계정 @ShireenAbuAkleh] |
“이스라엘 점령군이 제닌 난민촌에 들이닥쳤어요. 취재 마무리되는 대로 추가 내용을 보낼게요.”
이 짧은 메일이 26년 차 베테랑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Shireen Abu Akleh)가 동료에게 전달한 마지막 보도가 됐다. 침울하고 당혹한 마음으로 고인을 깊이 애도하며 명복을 빈다.
프레스 조끼와 헬멧을 피해 조준한 살해
팔레스타인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11일 이른 아침, 서안지구 도시 제닌 난민촌 공습을 취재하던 〈알자지라〉 특파원 쉬린이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PRESS(프레스·언론)’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조끼와 헬멧을 쓰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M16 돌격소총에서 사용하는 5.56mm 총알이 방송용 이어폰을 장착하고 있던 그의 귀 뒷면에 발사됐다.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숙련된 저격수가 아니면 조준하기 어려웠을 만큼 정밀한 위치였다. 헬멧과 이어폰 기기 사이 좁은 틈을 명중시킬 수 있는 저격수라면, ‘PRESS’라는 글씨를 못 봤을 리 없었다. 쉬린이 쓰러진 뒤에도 이스라엘군은 발포를 멈추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다른 기자들은 눈앞에서 쓰러진 동료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위독한 상태로 제닌에 있는 병원으로 급히 이송된 쉬린은 한 시간 뒤인 오전 7시 15분 보건당국으로부터 사망 판정을 받았다.
현장에서 역시 총알에 맞아 상처를 입은 또 다른 〈알자지라〉 기자 알리 알 사무디는 “이스라엘군은 우리에게 떠나라거나 촬영을 중단하라는 요구도 없이 바로 우리를 쐈다”라고 증언했다. 쓰러진 셰린 바로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지역 언론인 샤타 하나이샤도,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당시 현장에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의 총격전은 없었으며 이스라엘군이 언론인들을 집중 표적 삼아 발포했다”라고 말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당일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이스라엘 정부와 점령군이 쉬린의 살해에 책임이 있으며, 국제 사회에 이스라엘 점령군이 쉬린을 의도적으로 표적으로 삼고 살해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규탄하고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군부는 즉각적으로 쉬린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을 수 있다고 했다가, 저녁이 되자 아직 사안을 파악 중이고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물러섰다. 또한 사건 당일 저녁만 해도 조사팀을 최대한 빠르게 꾸릴 것이라 발표했다가, 일주일여 만에 이스라엘 군인을 용의자로 취급하는 조사가 이스라엘 사회 내 반대를 불러올 것이라며 조사를 실행하지 않겠다고 번복했다. 그리고는 팔레스타인 측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조사 포기 명목으로 삼았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죽음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오랜 역사를 알기에 쉬린의 시신에서 회수된 총알 파편을 증거로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다. 또한 그간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이 인정된다 해도, 이스라엘은 이를 수행한 군인들에게 가벼운 형벌이나 경고만 내렸다. 이스라엘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요식행위에 시간을 허비하거나 그들이 조사에 임하고 있다는 보여주기식 홍보 공세를 거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독립적인 조사 결과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이관할 예정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 평론가이자 정책분석가 디아나 부투는 조사의 진행 여부나 밝혀질 정황과 관계없이 바뀌지 않을 단 하나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1 강조한다. 이스라엘 점령군이 그날 새벽 제닌에 가지 않았더라면, 쉬린은 지금 살아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없었으면, 점령군이 서안지구의 제닌에 갈 일도, 쉬린이 이스라엘의 범죄를 보도하기 위해 제닌에 가지도, 살해당하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팔레스타인 알-꾸드스(예루살렘)에서,
쉬린 아부 아클레였습니다.”
아랍 전역을 통틀어 쉬린의 위 대사를 모르는 자는 아마 없을 거다. 매번 보도 끝에 ‘이름-알자지라-도시명-팔레스타인’을 꾹꾹 눌러 말하는 멘트는 팔레스타인 소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거울 앞에서 리모컨을 움켜쥐고 따라 해본 대사였다. 심지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조차 그랬다. 2002년 팔레스타인에 징벌적인 통행금지령을 내린 이스라엘군은 지프차를 타고 마을을 돌며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에…. 그러니까 다들 집 안에 계시라는 뉴스입니다. 라말라에서, 알자지라, 쉬린 아부 아클레입니다. 하하” 조롱일지언정 그의 존재감과 영향력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독보적인 아이콘이었다.
팔레스타인 및 아랍 세계가 사랑한 국민 저널리스트 쉬린 아부 아클레는 1971년 1월 알-꾸드스에서 태어났다. 천주교 신자였고 어릴 적 잠시 뉴저지에도 살았기에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다 저널리즘으로 방향을 틀어 요르단의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다. 졸업 후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지역 뉴스 채널에서 몇 년을 일했다. 그러다 1996년 카타르에 본사를 둔 24시간 뉴스채널 〈알자지라〉가 개국하면서 1997년부터 〈알자지라〉에 합류했다. 이후 아랍어 채널 최초의 특파원 중 한 명으로 내리 26년을 일했다. 여성 특파원으로서는 특히나 상징적이었다.
팔레스타인 전역의 스타 기자로 떠오른 건 2000년 가을,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때였다. 당시로서는 주류 미디어가 잘 다루지 않던 팔레스타인인 시각에서 사건 전후 맥락을 전하는 그녀의 보도는 생소하고 특별했다. 거의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가 전 세계에 전해지고 있다는 느낌과 희망을 줬다. 그리고 이어서 2002년 제닌 학살이 터졌다. 탱크로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이 라말라를 필두로 서안지구 A 지역 전체 도시를 습격한 사건. 제닌에서만 팔레스타인인 52명을 살해하고 불도저로 남은 집과 죽은 자들을 모두 밀어버린 끔찍한 사건을 쉬린은 사태가 지속된 한 달이 넘게 보도했다. 2008년, 2009년, 2012년, 2014년에는 가자지구 폭격 현장으로 달려갔고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도, 최근 2021년 9월 6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가 이스라엘 감옥을 탈출한 순간에도 쉬린이 있었다.
▲ 이스라엘에 살해당한 팔레스타인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 [출처: 트위터 내 쉬린 아부 아클레 추모 계정 @ShireenAbuAkleh] |
그는 특히 아랍의 예비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훌륭한 멘토였다. 2000년 초 TV를 틀면 방방곡곡 현장을 누비는 쉬린이 나왔다. 아마도 팔레스타인인들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본 최초의 여성 특파원이었을 것이다. 현재 팔레스타인 젊은 여성 세대는 TV 속 그녀의 목소리와 존재감을 보고 자랐다. 동시에 아랍의 부모들 또한 여성이 활동적인 직업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편견을 누그러뜨리고 언론인의 길을 가겠다는 딸들을 응원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기자란 “위험지역으로 목숨을 걸고 온”,
“시위의 강도를 높이는 존재”
국제인도법은 언론인과 같이 전투에 가담하지 않는 민간인의 보호를 명시한다. 3차 제네바협약과 제1 추가의정서에 따르면 ‘국제적 무력 충돌에서 언론인은 민간인으로 간주돼 민간인에게 제공되는 모든 보호와 권리를 받을 자격이 있다’. 언론인은 직무 특성상 충돌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기에 군사작전에 수반되는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고의적인 공격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는 명백한 국제인도법 위반이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장에서 정확하고 공정한 진실을 보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첨병이자 보호받아야 할 공익이다.
그러나 속상하게도, 이스라엘군이 기자 신분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은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를 취재하는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 기자들을 죽였고, 수백 명을 상처 입혔고 투옥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점령지에서 최소 30명의 언론인이 살해됐으며, ‘귀환대행진’ 시위가 시작된 2018년 3월 이래로 언론인에 140건의 폭력을 행사했다.
귀환대행진을 취재하던 중 이스라엘 저격수에게 총에 맞아 숨진 가자지구의 젊은 팔레스타인 기자 야세르 무르타자 또한 ‘프레스’라고 적힌 파란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생명을 앗아가지 않았다고 해서 기자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8년 3월 30일 ‘귀환대행진’을 취재하던 프리랜서 사진기자 유세프 알 크론즈는 두 다리에 총을 맞아 왼쪽 다리를 부분 절단했다. 2019년 팔레스타인 언론인 무아스 아마르네는 이스라엘군이 쏜 고무 코팅된 강철 총알을 맞아 실명했다. 한편 국제언론인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s)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언론인을 조직적으로 표적 삼는다며 지난 4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공식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렇다면 언론인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식적 ‘면피’는 무엇일까.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쉬린이 살해된 후 발표한 성명2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총격을 가하는 지역이나 그 부근에 들어가거나 머무를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강조해왔습니다.” 이스라엘이 평소 공식 주장이나 법정 증언으로 공공연하게 드러내 온 견지를 감안한다면 그리 놀랍지 않은 발언이다.
이스라엘의 인권 변호사 이타이 맥에 따르면, ‘IDF는 언론인에 대한 공식적, 비공식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경계가 모호하다’.3 IDF의 공식 언론인 대응 지침에 따르면 기자는 “특정 장소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는 예외적인 이유가 없는 한 이동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타이 맥은 그간 법정 소송에서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들의 증언을 예로 들었다. 이스라엘 군인은 “이들 언론인은 충돌 중인 것을 알면서 이 마을에 왔기 때문에 결백하다 볼 수 없고, 스스로 자기 목숨을 건 행위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2년 이스라엘 군인에게 상처를 입은 사진기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군인들과 장교들은 “기자들의 존재는 시위의 강도를 높이고, 우리는 시위가 언론에서 알려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언론인들의 체포를 개시하고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었다” 등의 증언을 했다.
쉬린의 유산을 간직하는 법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라시다 틀라이브 미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태그해 이스라엘에 무조건적인 군사 자금을 지원하는 미국에 책임을 물었다. “끊임없는 살인과 고문,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아파르트헤이트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들과 이 세상은 도대체 언제쯤 ‘이제 그만하라’고 말할 것인가?”4
세계는 봤다. 쉬린이 쓰러진 순간부터 차가운 땅속에 안치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을 동원해 최소한의 연민도 허락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야만’을. 쉬린의 시신이 담긴 관이 예루살렘의 병원을 나서 묘지로 향하던 순간. 마지막 인사를 하러 거리로 나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깃발을 흔들며 ‘팔레스타인’을 연호했다.
▲ 지난달 13일 팔레스타인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의 장례식이 예루살렘에서 치러진 가운데, 이스라엘 경찰이 참가자들을 진압했다. 상여꾼들이 균형을 잃으면서 자칫 관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한 순간도 포착됐다. [출처: 트위터 내 쉬린 아부 아클레 추모 계정 @ShireenAbuAkleh] |
같은 시각 예루살렘 경찰청장은 쉬린의 장례식에서 팔레스타인 국기가 휘날리는 것을 막고 그들이 본 모든 팔레스타인 국기를 압수하라는 명령을 경찰관들에게 지시했다.5 국가적 행사로 경건하게 장례식을 치르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검은 옷을 입고 헬멧과 보호 장비를 착용한 수십 명의 이스라엘 경찰이 에워쌌다. 기도문을 읊는 챈팅과 팔레스타인 국가 등의 노래를 멈추라는 경고 직후 이스라엘 경찰은 진압봉을 휘두르며 팔레스타인 깃발을 찢었다. 행렬을 해산시키려 섬광탄을 터뜨렸다. 심지어 관을 들고 있던 상여꾼에게도 무차별적인 폭행이 자행됐다. 상여꾼들이 균형을 잃으면서 자칫 관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한 순간도 포착됐다.
최소 1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상처를 입었고 경찰관을 공격했다는 혐의로 6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체포됐다. 이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 미디어의 전파를 탔다. 한 필자는 이 광경을 두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경험하는 점령과 굴욕의 가장 극단적인 시각적 표현 중 하나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세상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일말의 죄책감이나 주저함이 없는 가해자를 우리는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지난 2월, 국제앰네스티가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규정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평론가 디아나 부투가 이스라엘의 반응을 해석했던 내용이 떠오른다. “이스라엘은 겉으로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오명이 불쾌한 척 반발했지만 사실 내부적으로는 하품이나 하고 있었을 겁니다.”
지루한 하품이 발등에 떨어진 충격으로 바뀌려면, 결국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되고, 구체적인 제재나 제도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그 지난한 일의 시작은 어쩌면 쉬린이 평생을 바쳐 해왔던 것처럼, 우리가 목격한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 더 잘 이야기하기 위해 끊임없이 찾아보고 질문하는 일일 것이다.
다음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하면 분리 장벽 한쪽에 환하게 웃고 있을 쉬린의 초상화를 마주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쉬린의 살해를 둘러싼 뉴스 사이클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런 환한 미소가 아닐까. 그 미소로 이 사이클이 쉬이 끝내지 않는 일이지 않을까. 그리고 종국에는 사이클 자체를 우리의 힘으로 끊어내는 것일 테다. 쉬린이 남기고 간 마지막 유산을 온전히 이어가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 이스라엘에 살해당한 팔레스타인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 [출처: 트위터 내 쉬린 아부 아클레 추모 계정 @ShireenAbuAkleh] |
[각주]
1 IMEU 팟캐스트 〈This is Palestine〉, Remembering Shireen Abu Akleh: A Beloved Palestinian-American Journalist Killed by Israeli Soldiers. 2022.05.12
2 https://www.timesofisrael.com/idf-chief-says-he-regrets-journalists-death-still-unclear-who-shot-her/
3 https://www.independent.co.uk/voices/shireen-abu-akleh-journalist-israel-b2077534.html
4 https://twitter.com/RashidaTlaib/status/1524380880399130624
5 https://www.haaretz.com/israel-news/.premium-jerusalem-police-chief-ordered-palestinian-flags-taken-at-journalist-s-funeral-1.1080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