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한 30대에 들어서고, 얼마 전부터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전혀 아프리라고 짐작할 수 없던 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수영을 시작했지만 노화라고 봐야할지 아직은 잘 판단할 수 없는 몸의 변화는 계속 됐다. 생리 주기가 부쩍 짧아져 한 달에 두 차례 생리를 하게 됐을 때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평균이라고 얘기되는 28일 주기도 짧다고 느껴지건만, 21일까지 짧아지니 생리 자체에 분노가 치밀었다. 물론 여성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신체 활동이지만, 여러모로 불편을 동반하는 거추장스러운 계륵 같은 것이었다.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는데, 어쩌다 규칙을 찾게 되니 생리 시작 일주일 전이 그랬다. 일하기 싫을 때 짧게라도 하루를 메모하는 습관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다. 몇 년 전 그 규칙을 찾은 후론 나도 ‘PMS(월경전증후군)를 씨게 겪는 사람이구나’ 하고 나를 더 잘 알게 됐다. 그리고 이유 없이 부정적인 기운이 올라올 때마다 ‘호르몬 때문이야’ 라고 조금 더 의연하게 넘길 수 있었다.
산부인과에 가지 못하고 있다는 압박감이 고조되던 지난 9월 초, 국내 최초 성·재생산 건강 전문의원이 곧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이하 셰어)’의 연계클리닉으로, 셰어의 기획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최예훈 씨가 곧 개원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셰어는 “누구나 차별이나 낙인에 대한 걱정 없이 성 건강과 재생산 건강 관련 진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병·의원 모델을 확산시키고자 문을 열었다”라며 “생애주기의 관점에서 지정된 성별에 제한 받지 않고 스스로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진료와 상담,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진료 내용을 살펴보니 ‘월경 관련 생애주기적 상담과 관리’가 눈에 띄었다. 2년을 미루던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할 때가 온 것이라고, 기사까지 쓸 계획을 세우고 병원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색다른의원’과의 첫 관계 맺기였다.
▲ 색다른의원 |
‘3분 진료’가 뭐죠? 무엇이든 물어보살
그리고 지난 10월 20일 서울시 동작구 장승배기로에 위치한 색다른의원을 찾았다. 9월 22일 개원하고 약 한 달이 지난 때였다. 장애인 이동권을 고려한 건물과 동선 때문에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그동안 나와 같은 이유로 산부인과를 가지 못했던 이들이 한 번에 몰리진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기우였다. 최예훈 원장은 아직 환자가 많진 않다고 했다. 환자들 중에서도 여성화 혹은 남성화 호르몬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적은 쪽지를 보며 진료 및 상담을 시작했다. 개인적인 진료가 아닌 보도를 위한 다른 질문들은 그 후에 하기로 했다. 그는 환자의 불안을 끌어올리지 않는 의사였다. 조금 튀긴 해도 내가 정상 범주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그럼에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을 차분히 알려줬다. 상담시간은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기본 진료와 상담에서만 30분을 쓰니 환자인 내가 더 초조해졌다. 내가 너무 오래 붙잡는 건 아닐까. 컵라면에 비유되는 한국 병원의 ‘3분 진료(실제 더 짧음 주의)’ 관습을 깨겠다는 최 원장의 의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 선생님 다른 환자들도 이렇게 오랫동안 상담해주시나요? 제가 취재왔다고 더 오래해주시는 건 아니죠?
최예훈 원장: 좋은 진료를 하려면 충분한 상담 시간을 가져야 해요. 그런데 제가 진료실에서 상담 시간을 30분씩 쓰면 하루 종일 환자를 얼마나 볼 수 있겠어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죠. 처음엔 정성들여 한 사람 한 사람 보다가 환자가 많아지면 (상담) 시간을 줄이고, 줄이고, 그러면 병원은 또 유지가 되고. 이전에 다녔던 병원에서도 그랬거든요. 충분한 상담을 담보할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까에 대한 고민을 개원 전부터 상당히 많이 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누구와 함께 어떤 목적으로 운영하느냐가 가장 중요했죠.
최 원장은 현재 혼자 상담하고 있지만, 현재 함께 일하는 두 명의 간호사를 상담 인력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간호사들은 최 원장이 색다른의원을 구상할 때 함께 일하기를 제안한 사람들이다. 문보라 간호사, 이혜림 간호사는 각각 경력 19년차, 15년차의 베테랑으로 해외 파견 근무 등 여러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고 최 원장과도 같은 곳에서 일했었다.
▲ 색다른의원의 최예훈 원장(오른쪽)과 이혜림 간호사(왼쪽) |
최예훈 원장: 간호사 선생님들이 1차적으로 전반적인 상담을 담당할 예정이에요. 이 상담에서 진료 범위를 좁혀주면, 제가 진료실에서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춘 상담을 하는 거죠. 지금은 선생님들과 합을 맞춰보고 있는 단계에요. 선생님들이 제 진료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가 어떤 진료를 하는지, 어떤 용어를 쓰는지, 어떤 태도로 환자를 대하는지 학습하고 있죠. 호르몬치료나 임신중지와 같은 특수한 임상 경험을 쌓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임신중지에 있어서 의료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의료기관에서의 차별이나 인권침해가 여성의 재생산 건강과 관련한 건강추구 행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지금도 임신중지와 관련한 상담에서 곧잘 불쾌함과 차별적인 시선을 느끼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모낙폐(1)가 진행한 임신중지 경험과 관련한 심층 인터뷰에서 N씨는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여자’로 인식되고 싶지 않아 매번 진료마다 병원을 계속 바꾸는 ‘산부인과 노마드’가 되었다”라고 이야기했다. N씨가 ‘산부인과 노마드’가 된 것도 지난 임신중지 경험에서 의사의 한숨, 시선 회피, 딱딱한 말투 등 싸늘해진 반응을 느꼈기 때문이다.
최예훈 원장이 생각하는 진료는 문제 질환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선 교육과 상담까지 포함한다. 현재 강조되고 있는 포괄적 성교육에서도 ‘즐거움’이라는 가치가 빠지지 않듯, 의사 또한 환자와 그 즐거움에 대해서 편하게 상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 원장은 퇴근 후 간호사 선생님들과 섹스토이샵에 들러 몇 가지 물품을 사기로 했다며, 진료실에 두고 환자들과 상담하는 데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그가 셰어와 함께 만든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엔 ‘편견없는 성교육 워크북’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위험과 원칙만을 강조했던 구시대적 성교육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찾아가는 성교육을 강조한다. 또 나의 경험과 만나는 성교육, 다양한 관계와 성관계 방식을 알아가는 성교육, 몸과 감각에 대해 편견 없는 성교육을 지향한다. 포괄적 성교육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필요하지만, 형식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성교육에 노출되는 10대들에게 더욱 필요하다.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2)’에서도 일했던 최 원장으로서는 청소년 환자들이 그래서 더 반갑고, 소중하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병원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최예훈 원장: 최근 청소년이 사후피임약을 처방 받으려고 왔었어요. 색다른의원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전혀 없었고, 지도에 검색해서 가까운 산부인과로 온 건데 우연히 저희 병원이었던 거죠. 상담을 쭈욱하고 있는데 ‘빨리 약이나 먹고 싶은데 저 선생님은 왜 이렇게 말이 길지. 왜 나를 안 내보내주지’ 딱 이 표정인 거예요(웃음). 부작용뿐만 아니라 피임에 대한 설명도 하고 싶었는데 그 눈빛을 보고 거기서 얘기를 끊었어요. 우리 병원이 괜찮으면 나중에 또 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이런 분들이 꽤 있어요. 제 설명이 어려워서 일수도 있고, 재미가 없거나, 관심이 없을 수도 있죠. 어떻게 하면 환자의 주의를 모을 수 있을까 나름 고민도 많이 해요. 의학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은 트레이닝 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상담자의 태도, 환자에게 전달되는 언어, 쉬운 이해 같은 게 중요한데, 진짜 중요한 것을 배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소년들은 사후피임약으로도 불리는 응급피임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부모의 동의나 동반을 요구받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의 이러한 요구는 법적인 규정도 없을뿐더러,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 병원 이용 문턱이 높다보니 브로커를 통해 약을 구하기도 하고, 높은 가격을 부르는 병원에서 처방을 받기도 한다. 사후피임약은 비급여로 분류되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다. 특히 주말엔 응급실이 아닌데도 처방에만 10만 원을 요구하는 병원도 있다. 최예훈 원장이 색다른의원을 소개할 때 셰어의 연계 클리닉임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도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고, 자유롭고 건강하게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누릴 것을 강조하는 셰어는 사회적 소수자의 성·재생산 건강과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고민과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
최예훈 원장: 2019년 9월 셰어가 설립되고, 청소년, 성소수자, HIV/AIDS 감염인, 장애, 이주, 노동, 빈곤, 여성 등 8개 영역에서 간담회를 진행했어요. 간담회를 통해 셰어가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을 들을 수 있었어요. 셰어의 활동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죠.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거예요. 사회적 소수자들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병원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셰어가 만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고, 저도 그 시기에 ‘이제는 개원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셰어 활동에 진심인 사람이어서, 셰어의 활동을 병원 운영에도 많이 담고 싶어요. 셰어에겐 소중한 현장이 생긴 거거든요. 셰어가 어떤 정책이나 제도를 제안할 때 그 토대를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할 수 있겠죠. 병원 한 개로는 부족하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환자풀이 어느 정도 생기면, 연구 기획을 할 수도 있고요. 이밖에 교육도 하고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등등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병원을 좀 안정화한 다음으로 미루고 있어요.
임신중지는 왜 두려운 일이 됐을까
▲ 색다른의원의 검사실. 진료의자에 앉으면 코알라 인형을 쥐어주신다. |
사실 질경을 넣어 질 안쪽의 자궁을 보는 본격적인 검사는 두 번째 방문에서 진행됐다. 여전히 규칙적이지 않은 생리를 병원 예약 당일에 하게 됐기 때문이다. 혈흔이 함께 묻어나오면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생리를 하지 않는 시기에 검사가 이뤄진다. 일명 ‘굴욕 의자’로 알려진 전용 의자에 앉게 되면 간호사 선생님이 코알라 인형을 안겨주신다. 피어싱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부드러운 인형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 긴장된 몸이 조금은 풀어졌다. 이미 의료진과도 구면이고, 짧지 않은 상담을 통해 신뢰하는 마음도 커졌지만 여전히 몸이 경직돼 있었나 보다. 아주 작은 솔로 자궁 경부를 쓸어내린다는 친절한 설명에도 몸이 굳어 긴장을 풀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더욱 세게 코알라 인형을 안았다.
초음파 검사 중 모니터에 뜨는 내 자궁을 이리저리 살피는 일은 꽤 벅찬 감정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자궁 안에 근종이 있는지, 난소는 제대로 박혀 있는지, 질벽은 현재 어떤 상태인지 꼼꼼하게 들을 수 있었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듣고선 안도하게 됐다. 지난해 받았어야 했지만 못 받았던 자궁경부암 검사, 성매개 감염 질환 검사도 했는데 며칠 뒤 메일로 검사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미뤄왔던 숙제를 마쳤으니, 다음 검진까지는 안심하게 됐다.
한편, 색다른의원은 약이나 시술을 통한 임신 9주 이내의 초기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제 막 운영을 시작한 병원이라 ‘9주 이내’로 잡았지만, 병원이 좀 더 안정화되면 이는 유동적으로 점차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임신 중기부터는 의료적으로 위험부담이 커지기에 현재 색다른의원의 규모에선 진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 이후 임신중지 관련한 공적 시스템 마련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고, 현장에서도 이를 혼란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임신중지 시술을 제공한다는 병원이 쉽게 검색되지만, 박리다매식 선전을 하는 병원이 많아 선뜻 선택이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의 선택에 의한 임신중지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다보니,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수술비도 천차만별이다. 비용도 깜깜이지만 임신중지가 가능한 의료기관, 임신중지 방법에 대한 정확한 방법이나 이후 관리 등에 대한 정보도 쉽게 구할 수 없다. 출산과 양육을 선택했을 때보다 정보와 공적 지원이 훨씬 제한적이고 부실하다.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여전히 여성에게 엄혹한 현실은 설문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11월 19일부터 12월 6일까지 15~49세 여성 85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실태조사를 했는데 여성들이 인공임신중절과 관련한 정보를 매우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만큼 해당 정보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임신중절과 관련한 정보나 상담이 얼마나 필요했냐는 질문에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한 의료기관 정보가 매우 필요했다는 응답이 46.0%, 임공임신중절에 드는 비용 정보가 매우 필요했다는 응답이 47.2%, 임신중절 관련 방법·부작용 및 후유증 관련 의료적 상담이 매우 필요했다는 응답이 42.9%를 차지했다. 필요한 편이었다는 응답까지 합하면 10명 중 8명꼴로 임신중지와 관련한 정보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현재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유산유도제 미프지미소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로 구성된 약이다. 임신 초기에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의 성공률은 미소프로스톨만 사용할 때보다 더 높다. 지금까지 미페프리스톤은 국내에 도입되어 있지 않아, ‘싸이토텍’ 등의 상품명으로 알려져 있는 미소프로스톨만 사용이 가능했다. 미소프로스톨 역시 유산 유도의 목적으로는 사용이 허가되어 있지 않다.(3)
최예훈 원장: 미소프로스톨은 유산 유도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산부인과에서는 늘 옆에 두고 쓰는 약이에요. 약값도 싸고 활용도가 높죠. 분만 후 출혈이 계속되거나 자연유산에서 내용물 제거를 위해서도 자궁 수축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자연유산이든 임신중지든 배출하는 원리는 똑같기 때문에 임신중지 목적으로도 쓰이고 있거든요. 제가 처방해보면 미소프로스톨만 썼을 땐 (임신중지) 실패율이 꽤 있거든요. 자궁만 수축시키면 아무래도 효과면에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죠. 이걸 보완하기 위해 자연 유산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호르몬 조절약인 미페프리스톤이 필요하다는 거고요. 미소프로스톨은 습도에 되게 약한데, 여성들이 블랙마켓에서 이 약을 구하면 가짜약일 수도 있고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죠. 병원에 오는 환자들 중에 약을 먹고 전혀 반응이 없진 않은데 애매하게 출혈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이럴 때는 약의 보관이 잘못돼 있을 수 있겠다는 추측은 해요. 제대로 된 사용 방법만 지키면 여성의 몸에 수술보다 부담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 간단한 방법을 여러 핑계를 대고 승인을 안 하고 있으니까 답답하죠. 사실 수술도 진짜 간단해요.
최예훈 원장은 임신중지 기구를 직접 가져와 수술 방식을 설명했다. Ipas MVA Plus라는 이름의 모델은 모서리진 부분 없이 둥글둥글하게 생긴 스포이드와 유사한 흡입관이었다. MVA(Manual Vacuum Aspiration)는 수동 음압 임신중지 기구로, 초기 임신중지에는 전기 펌프를 이용하는 EVA(Electric Vacuum Aspiration)과 비교해 여러 장점이 있다.
▲ 임신중지 기구를 설명하는 최예훈 원장 |
최예훈 원장: 진공상태를 만들어서 쭉 빨아들이는 거예요. 임신 초기 단계에선 내용물도 굉장히 적고요, 걸리는 시간도 5분 정도로 짧죠. MVA의 장점은 자궁경부에 국소마취만으로 환자와 이야기하면서 시술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엔 진정제 등을 같이 투여해 마취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약물적 임신중지 방법과 수술적 임신중지 방법에 대한 설명을 의료인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것만으로 ‘임신중지’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조금 더 벗어난 듯했다.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임신을 중단할 수 있고, 그 방법 또한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조금 덜 불안한 생활이 가능할 것 같았다. 색다른의원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같은 불안을 덜고 가길 바란다.
(1)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지난 8월 17일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모임넷)’로 확대·재편했다. 건강권, 성·재생산 권리, 사회적 권리로서의 임신중지 보장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 여성 청소년에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성폭력, 성병, 임신, 성매매 등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여성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 회복을 위해 서울시가 2013년 설립한 센터.
(3) <상담자와 의료인을 위한 임신중지 가이드북 곁에 함께>, 셰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