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유도제, 어디쯤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슈] 규제하거나 방치하거나…제약사의 독점적 이익도 문제

‘낙태죄’ 폐지와 함께 빠르게 도입될 것이라 예상됐던 유산유도제.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오기 전인 2017년엔 낙태죄 폐지와 함께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 합법화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한 달 만에 23만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로 만든 ‘국민청원 2호 답변’에서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미프진 도입 요구에 대해선 “자연유산 유도약의 합법화 여부도 이런 사회적, 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짧게 밝혔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낙태죄가 법적 효력을 상실하고 그해 3월 현대약품에선 영국제약사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포함한 ‘미프지미소’에 대한 독점 공급계약을 맺고 7월엔 시판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자료 보완 요청과 현대약품의 심사 연기 요구 등으로 허가심사는 끝없이 늘어지고 있다. 약물적 임신중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관련 약물을 필수의약품 핵심 목록으로 지정할 만큼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도입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공개되고 있지 않다. 식약처가 허가 지연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업계에선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태아와 산모를 대결시키는 구시대적 논의를 이어가는 일부 의료계의 입김이 컸으리라 짐작하는 상황이다.

한편, 식약처는 이미 온라인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유산유도제들이 거래되고 있고, 여성들이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를 강요받는다는 현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산유도제의 안전성을 검토하거나 도입을 위한 준비보다 온라인 유통망을 막는 데 집중했다. 대표적으로 ‘위민온웹(women on web)’ 사이트의 차단을 신청한 것이다. 위민온웹은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과 낮은 의료접근성, 사회적 낙인 문제로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없는 전 세계 각국의 여성들에게 임신중지 관련한 정보와 상담을 제공하고, 최소 90유로(약 12만 원)에 달하는 후원비 명목의 값을 받고 여성들에게 유산유도제를 보내주는 활동을 하는 국제 비영리단체다. 네덜란드의 의사 레베카 곰퍼츠에 의해 설립됐고, 각국의 전문가, 산부인과 의료진과 협력해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여성들도 위민온웹을 이용해 미프진을 구하곤 했다. 브로커들에 의해 중국산 가짜 약이 판치는 상황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선택지가 몇 가지 없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2019년 3월 11일 약사법에 위반하는 약물을 배포한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에 위민온웹 사이트의 차단을 요청했고, 방통심의위가 이를 받아들여 사이트 전체 접속을 차단했다. 위민온웹은 인터넷주소(URL)를 변경해 사이트에 대한 접근권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12월 13일 동일한 이유를 근거로 다시 전체 웹사이트를 차단했다. 위민온웹과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인권단체들은 올해 3월 사이트 접속 금지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방통심의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 사이 스페인 대법원은 위민온웹이 제공하는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위민온웹 사이트 차단 명령을 해제하라는 판결을 내려 방송심의위의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현대약품의 조치만 기다려야 하나

유산유도제 도입이 기업의 주도로 이뤄지는 것 자체도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의 유산유도제의 도입 지연 사태는 현대약품이 식약처가 추가로 요구한 허가 자료 제출을 미루는 것이 표면적인 원인이다. 현대약품은 산부인과 질환 의약품 및 일반의약품에서 강세를 보이며 산부인과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데, 산부인과 학계와 의사회는 임신중지에 대한 꾸준한 반대 목소리를 내며 약물적 임신중지에 대해서도 계속 위험성을 주장하고 있다. 현대약품에서 주 고객층의 눈치를 보는 것도 당연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만약 식약처의 허가 승인이 나더라도 문제는 지속된다. 해외에선 30년 이상 이용되고 있는 약이지만 한국에선 신약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기에 현대약품이 ‘자료독점권’을 갖게 된다. 자료독점권은 신약의 시판허가를 얻기 위해 제출하는 임상시험자료에 대해, 허가 이후 일정 기간 다른 업체들이 이를 원용하지 못하도록 배타적 지위를 인정해 결과적으로 판매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제네릭(1)업자의 무임승차를 방지해 연구개발 소외 질환에 대한 치료제 개발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필수의약품의 경우에서도 자료독점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여성들의 의약접근성과 관계없이 제약사의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만 가격을 설정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라며 “의약품 접근권에 매우 중요한 허가, 건강 보험 급여, 가격 모두 제약회사의 결정에 의존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건강보험 적용을 통해 약가 협상을 하면 자료독점권과 상관없이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라며 “미프지미소의 급여화가 현재로선 가격을 낮추고 여성의 의약접근성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나서야 할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미프지미소 허가와 동시에 복지부가 직접 건강보험 적용을 신청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형법상 낙태죄 폐지 이후의 ‘입법공백’을 이유로 복지부가 직접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인공적 임신중절이 가능한 임신주수가 아직 법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입법공백 핑계 대는 복지부에 쏟아지는 질타들 “일해라 복지부!”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의 대응을 해나가야 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지속적으로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제도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임신중지·모자보건법 관련 업무는 인구정책실 산하 출산정책과에서 전담하고 있는데 임신중지를 여성의 건강이 아닌 저출산 문제를 주요하게 대응하는 인구정책 부서에서 담당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법령이 미비해 (‘낙태죄’ 폐지 이후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다. (...) 국회에서 여러 의견을 종합해 많은 사회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혜를 모아 좋은 입법과정을 거쳐주길 바란다”(2)라며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직접 복지부를 찾아 면담을 신청하고,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9월 28일 모임넷(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맞이해 ‘권리보장 버스’를 타고 복지부를 찾아가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과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했다.

복지부를 향한 요구는 명확하고도 구체적이었는데 우선 식약처에 미페프리스톤 허가 승인을 담당하는 팀을 지정하고 진행 상황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도입을 진행했던 것과 같이 필수의약품인 내과적 임신중지 의약품에 대해서도 그 노력을 하라는 요구였다.

그리고 유산유도제 도입 지연으로 발생하고 있는 건강 피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주문도 나왔다. 모임넷은 “현재 의료기관에서 미소프로스톨 외에도 메토트렉세이트 등의 약물을 임신중지에 사용하고 있는데 메토트렉세이트는 현재 임신중지에 더 이상 권고되지 않는 약물”이라며 “올바른 내과적 임신중지 의약품 처방과 정보 제공을 위해 최신의 의학적 근거에 기반해 약물적 방법을 포함한 가이드라인을 펴내고,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의 질 관리 대책을 마련하라”라고 요구했다.

(1) 신약으로 개발한 약이 특허기간이 만료돼 동일성분으로 다른 회사에서 생산하는 약
(2) (사)바른인권여성연합이 주관한 “건강한 여성의 삶을 다시 생각하다” 낙태법 개정 입법 세미나 중 최영준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 출산정책과장 발언, 202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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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혜

    국회와 복건복지부, 식약처는 명백하게 위법행위를 하고있다....헌법재판소의 판결결과를 바로 입법과 정책으로 반영해야함에도 아직도 산부인과의사단체의 밥그릇 지키기에 눌려 소임을 방기하고있다....헌법재판소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하였으면 이미 낙태죄는 무효화된 것이며,,,,바로 낙태 관련 정책을 시행햐야됨...유산유도제 미프지미소의 허가도 즉시 이뤄져야할 것임.....직무유기,직무태만으로 처벌을 받아야할 자들임

  • 혜진

    미프지미소
    https://heylink.me/ed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