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후 2시 열린 공개변론은 3년 전인 2019년 11월, 에이즈예방법에 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위헌법률 심판 제청에 따른 것이다. 공개변론 대상인 에이즈예방법 19조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며, 이를 위반하면 같은 법 벌칙조항 25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앞서 에이즈예방법은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대회에 참가하는 외국인들로 인해 국내 HIV 전파가 늘어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를 통해 제정됐다. 그리고 지난 수년 간 전문가로부터 치료 약 복용으로 HIV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음에도, 여전히 '전파매개행위죄'는 국내에 남아있다. 심지어 이로 인한 낙인은 HIV 예방에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위헌을 촉구하는 이들의 지적이다.
공개변론을 두 시간 앞두고 전파매개행위죄의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46개 단체의 주최로 헌재 앞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당사자 대리인과 공개변론 참고인 등이 참석했으며, 참가자들은 "감염인의 섹스는 범죄가 아니다", "전파매개행위죄 폐지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파매개행위죄,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을 수도"
기자회견에서 한가람 당사자 대리인단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사건 당사자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고 있는 감염인으로서 콘돔의 사용 없이 이른바 유사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은 이 사건을 재판하던 중 2019년 11월, 이 전파매개죄가 위헌이라는 상당한 의심이 있다며 직권으로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기에 이르렀다"라며 "제청 법원 역시 지적했듯 전파 매개 행위라는 법 조항의 문구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모호해, 헌법상 기본권 제한에 요구되는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다"라며 위헌법률 심판이 진행 중인 이유를 설명했다.
대리인은 현행 '전파매개행위죄'가 자칫하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을 수 있고, 국제인권법 위반으로 공식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유엔에이즈(UNAIDS) 등 국제기구들에서 법률을 통해 HIV 감염인을 처벌하는 것이 인권 침해일 뿐 아니라, HIV 예방과 공중보건 증진에 기능하지 않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앞서 한국의 외국인 강제 HIV 검사 정책도 "2015년 유엔 인종차별 철폐위원회, 2018년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개인 통보 사건들에서 모두 국제인권법 위반으로 판단 받아 이를 없앤 바 있다"라며 이 역시 "위헌적인 법 정책을 제때 철폐하지 않아 벌어진 한국의 위상에 부합하지 않은 무책임하고도 부끄러운 일"이었다며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공개변론 참고인인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해당 법령은 현재의 의과학적인 현실을 보면 잘못된 대상에 대해서 정해진 법률이고 또 감염인들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비 감염인들이 건강을 더 지키지 못하고 검사받는 것을 제한하는 법령"이라며 실제 "감염인들의 치료 접근성을 막아, 지금도 많은 분이 병원으로 오기를 어려워하고 있다"라고 위헌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은 HIV 감염인에 대한 혐오로 인해 실제 감염인들이 건강상의 불이익을 경험하는 사례들이 있다며 "전 세계 19개국에서 이뤄진 유엔에이즈의 낙인 조사에 따르면, HIV감염인이 비 감염인에 비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가 2.4배 많다"라며 "같은 의료진으로서 부끄럽지만, 한국에서도 일부 의료진이 전파 위험이 거의 없는 감염인에 대해서도 부당하게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들이 최근까지도 나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위원은 전파매개행위죄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는 과학적·의학적 상식에 근거해서라며 "감염인에 대한 치료는 물론 노출 전 예방요법, 노출 후 예방요법도 다 개발돼 있다. 심지어 제도만 좀 더 잘 정비되면 한국의 의료 체계는 이런 것들을 보편적으로 제공할 역량도 이미 갖췄다고 생각"한다며 "적절히 치료받는 감염인이 타인에게 옮길 위험도 극히 희박하다. 앞서 U=U(바이러스 미검출은 곧 전파 불가)는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된 세계적인 합의다. 이제 HIV는 더 이상 무지의 베일에 쌓인 어떤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U=U(Undetectable = Untransmittable) 캠페인은 105개 국가, 1,099개의 단체에서 연명하는 전 지구적인 캠페인이다.
HIV, 만성질환이라 전파매개행위죄가 필요하다?
HIV 바이러스 치료로도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치가 아니라는 전파매개행위죄 찬성 측 주장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의료인류학자인 서보경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부교수는 "1980년대 이후 분자생물학의 발전을 통해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많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발견"했다며 "HIV를 비롯한 수만 개의 다양한 바이러스가 만성 감염을 일으킬 수 있고, 만약 한 사람의 몸 안에서 특정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만을 완치라고 정의한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바이러스 감염에서 완치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법은 유독 HIV에 관해서만 차별적인 조치를 강제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 부교수는 만성질환을 불치병으로 여기고, 질환에 대한 공포를 유지하는 것은 질병에 대한 '예방'이 아니라며 이 낙인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깨끗한 것과 오염된 것,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을 가르는 기준은 보편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사회문화적 가치 체계를 공유하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라며 "낙인을 없애는 데 가장 본질적인 해법은 개인적인 자유의 권리를 빈틈없이 강조하고 모든 시민에게 법의 동등한 보호를 확고히 보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단체들은 "(HIV에 대한) 엄벌주의와 낙인이 온존하는 한, 시민들은 HIV 검진을 피하게 될 것이고, HIV 감염인이 차별 없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권리와 그 환경은 침해될 것"이라며 또 "HIV 감염인에게 성적 낙인을 가하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에이즈 예방·관리와 그 감염인의 보호·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건강 보호에 이바지하겠다'는 에이즈예방법의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편, 통상 헌재에서 공개변론이 진행되면, 판결까지는 1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