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성희롱 피해자 부당해고 항소심 "나쁜 선례되지 말아야"

피해자 "임원의 성희롱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활동하고 싶었다"

충북청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부당해고 관련 항소심 재판을 앞둔 가운데, 재판부가 "피해자를 부당하게 해고한 단체에 성찰·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지난 7월 15일 원심 재판부는 충북청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충북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의 해고무효 소송을 각하했다. 해당 사건은 2020년 5월 충북경실련에서 성희롱당한 피해자들이 조직에 문제를 제기하고 6개월 뒤 해고를 통보받은 사건이다. 그 과정에서 중앙경실련은 충북경실련을 사고지부로 지정했다. 재판부는 충북경실련이 4인 이하 사업장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따를 이유가 없고, 민법상 해고 절차에 하자가 없다고 판결했다. 또 성희롱 사건이 사고지부 지정의 발단이 된 것은 맞지만, 이에 따라 해고됐다는 증거·사정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 지지모임(피해자 지지모임)은 원심판결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조직 내에서 성차별이나 성폭력에 소리 내면 쫓겨날 수 있다'는 나쁜 신호"를 보냈다고 비판하며 항소하기에 이르렀다.

피해자 지지모임은 오는 23일 항소심 재판을 앞둔 가운데, 15일 오전 서울 서초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경실련의 책임을 강조하며 재판부에 상식적인 판단을 요구했다. 중앙경실련의 충북경실련 사고지부 지정이 성희롱 사건을 무마하려는 목적이었다는 것이 피해자 지지모임 측의 핵심 주장이다. 이들은 재판부가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모든 권한을 행사한 중앙경실련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피해자 지지모임은 "중앙경실련은 자신들은 피해자의 고용·해고·복직에 아무런 권한·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중앙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의 결정으로 해고됐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충북경실련은 자신들은 중앙경실련에 의한 비대위 구성으로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면서 "사고지부여서 근로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재판 대응을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사고지부 지정 이후 2년이 지났지만, 충북경실련은 해체하지 않았다. 이는 피해자가 문제 제기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 해고의 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경실련의 충북경실련에 대한 개입은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고 3개월 뒤인 2020년 8월, 조직 실사를 진행하면서 시작됐다. 피해자의 요청으로 진행된 충북경실련 차원의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조직 실사가 진행되고 며칠 뒤 중앙경실련은 '충북청주경실련의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사무실을 폐쇄하며 상근자들에게 출근 정지를 통보했다. 이어 그해 11월 중앙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는 피해자에게 사과문을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충북경실련을 '사고지부'로 지정하고, 상근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피해자들은 해고통지서를 보낸 주체도 중앙경실련이 구성한 비대위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앙경실련의 충북경실련에 대한 사고지부 지정은 피해자 모두를 해고하는 결과를 낳았다. 성희롱 사건 발생 당시 충북경실련에는 3명의 상근자가 있었는데, 그중 2명이 피해자였다. 나머지 한 명인 사무처장은 조직 갈등을 사유로 징계받고 사임했다. 해당 사건의 가해자들은 충북경실련의 임원으로, 상근자가 아니다.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 A씨는 기자회견에서 "제가 원했던 것은 임원들의 성희롱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활동가로서 활동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었다며 "사법부는 사고지부 결정이 성희롱 피해자들의 해고로 귀결됐음에도 의도적인 증거를 찾기 어렵다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서울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가 내린 부정의를 용인하고 부추기는 나쁜 판결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가 해고되는 것은 부당하다. 1심에서 부정당했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 말을 증명하기 위해 항소했다"라고 밝혔다.


선지현 피해자 지지모임 활동가는 이번 판결이 나쁜 선례로 남겨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심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고 할지라도 피해자 해고에 대해 직접적인 증거를 밝히지 않으면 부당한 해고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법을 왜 제정한 것인가. 해당 법은 피해자에게 해고를 포함한 징계 등의 불리한 조치를 절대로 취할 수 없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그 법은 피해자를 지켜주지 않았고, 피해자는 해고됐다"면서 "4인 이하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하는 시민단체가 어떻게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변화, 정의를 말할 수 있겠나. 여성들이 차별, 성폭력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해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피해자와 함께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진희 민주노총 충북본부 수석부본부장(여성위원회 위원장)은 "충북경실련 성희롱 사건은 단순한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위계적이고 성 차별적인 조직문화가 묵인됐던 결과였다. 피해자들은 이를 바로 잡기위해 문제 제기 했으나, 조직은 사건을 축소, 왜곡, 은폐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해고했다"면서 재판부에 "삶과 일터에서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라고 요구했다.

한편, 피해자 지지모임은 충북경실련 성희롱 피해자 부당해고 무효 소송에 대한 탄원 서명을 받고 있다. 기한은 오는 18일까지다.

*<탄원동의서> 경실련 성희롱피해자 부당해고무효소송 탄원서명(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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