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중단할 명분만 남은 한미FTA 협상

- 한미FTA 4차협상 개시에 즈음하여

한미FTA 4차협상이 시작되었다. 제주도에서 23일부터 진행되는 4차협상은 양국 협상단 외에도 한미FTA 반대진영과의 예상되는 격돌 속에서 제주도가 벌써부터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제주도경의 무리한 대응으로 제주도민과의 충돌이 있어왔던 터에 육지에서 1만이 넘는 전투경찰이 동원돼 협상장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다. 여기에 제주도민은 물론 한미FTA 반대시위대 수 천명이 속속 제주도로 향하고 있어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말해주듯 이번 4차협상은 한미FTA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참세상은 한미FTA 협상중단을 주장해왔다. 한미FTA가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파괴하고 삶의 조건을 약탈해 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3차 협상까지의 결과는 우리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쟁점이 되었던 의약품 분야와 지적재산권 확대는 물론 농산물 및 상품, 금융, 공공, 미디어 영역 등 거의 모든 협상분과에서 경제적으로나 권리의 측면에서 노동자 민중에게 유리한 것이 없다. 3차 협상의 결과로도 경제적인 대차대조표 작성은 끝났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한미FTA 협상의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부시 미대통령이 “한미FTA는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 한 바 있듯이 한미FTA는 애초부터 경제적 고려뿐 아니라 정치적, 전략적 고려 속에서 진행되었다. 현재 북의 핵실험으로 인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한미FTA는 경제의 문제에서 안보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확인하듯 바티야 미무역대표부 부대표는 21일 "최근 사태는 한미간의 굳건한 유대관계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면서 한미FTA가 향후 장기간에 걸쳐 "아주 강력하고 굳건한" 관계를 설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논의는 그 자체로 한미동맹의 시험대이며, 동북아 문제의 중요한 변수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이후 북에 대한 일본과 서구제국주의 국가들의 압박이 한층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FTA가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는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현재의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타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면 미국의 동북아 개입전략에 힘을 실어 주게 되어 핵 위기의 고조와 대미 종속적인 관계를 더 악화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한편, 최근 한-중-일 재계 인사들이 모여 3국간 조속한 FTA타결을 주문하였듯이 동북아 관련국들과의 자유무역협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현실적으로 나타날 경우, 북에 대한 경제압박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와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가중시키게 된다. 때문에 어떤 형태가 되었건 한미FTA는 물론 동북아 국가들과의 FTA추진은 한반도 정세에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제 한미FTA 협상을 접어야 할 때다.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인 측면 중 어느 면에서도 의미가 없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계산이 끝났고, 정치적으로는 한미FTA 체결로 부시의 시녀노릇을 할 뿐이며, 전략적으로 미국의 동북아 개입력을 더욱 확장시켜 한반도 위기상황을 가중시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100보 양보해서 정부가 한미FTA를 통해 경색된 대북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했다하더라도 이제는 그럴 이유도 명분도 없어졌다. 미국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 자체를 문제시하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의 원산지 인정문제는 불을 보듯 뻔하다.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위기는 오래전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한나라당이나 보수세력이 잘해서 닥친 위기가 아니다. 선거 때 여당의 패배나 정부에 대한 낮은 지지율로 위기가 나타났지만 그것이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무엇에 의해서, 누구에 의해서 진행되는 위기인지가 분명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11월에 정권의 위기를 만든 진정한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한미FTA 4차협상 이후 11월 민중총궐기가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 뿐 아니라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의 분노, 노동관계법의 개악시도를 통해 권리를 압살당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분노 속에서 11월 민중총궐기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정부를 압박할 것이다.

접을 수 있을 때 접어야 한다. 때를 놓치면 몰락을 자초할 뿐이다. 한미FTA 4차협상. 노무현 정부로서는 이 위기를 만회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