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 산하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 공익위원들이 27일 발표한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의 문제점이 시간이 갈수록 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처음 노사정위가 발표할 시점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공익위원들이 ‘보호’라는 명분으로 발표한 내용들이 분석되면서 오히려 불법 파견에 대한 면죄부와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내용들만 뒷북으로 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애림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은 “‘사내하도급을 도급관계에서 원사업주의 사업장 내에서 수급사업주가 주로 노무를 이용하여 위탁받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여, ‘사내하청=도급’이라고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노사정위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이 노리는 바와 문제점’이란 보고서에서 강조했다.
원래 파견과 도급 사이에는 불법과 합법의 미묘한 경계가 있다. 그리고 그 경계엔 위장도급이 이라는 조잡한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파견업은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과 일을 시키는 기업이 다른 경우로 일종의 근로자를 공급하는 사업이다. 애초 노동자를 물건처럼 사고파는 것은 허용이 안 됐지만 98년 파견법으로 일부 업종에 한해 노동자를 공급하는 파견업이 허용됐다.
현행 근로자 파견법은 파견 대상업무를 32개로 제한하고 있어 그 외의 업무에서 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를 사용하지 않고 타 회사의 인력을 사용하면 불법이다. 이 업무에 간접 고용을 사용하려면 도급이나 용역을 사용해야 한다.
파견 가능 업종이 아니더라도 업무 계약을 통해 사실상 파견처럼 인력계약을 하는 방식이 도급이다. 도급은 A(원청)기업에 필요한 일의 일부를 B(하청)기업에 도급계약을 통해 맡기는 방식이다. 문제는 B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일터가 A기업 안에 있을 때(사내하도급 방식) 도급과 파견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심지어 이런 곳은 원청 기업의 관리자가 하청기업 노동자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노무관리를 하는 일이 많아 명백한 불법파견임에도 도급계약으로 위장했기 때문에 위장도급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번 노사정위 공익위원 안은 이미 노동부와 검찰이 불법 근로자 파견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던 요소마저도 ‘사내하도급’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가져와 합법 도급으로 판단하는데 지장이 되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윤애림 팀장은 이런 식의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을 두고 “정부와 자본은 이제까지 (불법)파견이 아니라 합법도급이라는 소극적 대응방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 아무리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 판결을 해도 사내하도급을 써야만 기업경쟁력이 사는데 이것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맞느냐는 방향으로 공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즉 이제까지의 불법파견 논란에서 벗어나 ‘사내하도급’은 파견이 아닌 사실상 도급인 어떤 새로운 영역이라는 근거를 마련하고 노동법적 규제가 아니라, 원.하청기업이 자율적으로 따라야 할 지침 수준으로 풀어주자는 의도라는 것이다.
윤애림 팀장은 그 근거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사내하도급이 결코 진정한 ‘도급’이 될 수 없음을 반증하고 있다”며 “‘사회보험, 최저임금 등 변동이 도급대금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는 안이 그 반증이다. 진정한 도급이라면 그 대가는 ‘일의 결과’에 따라 산정돼야 하지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기초로 산정된다면 그것이 바로 도급이 아니라는 반증”이라고 반박했다.
또 “수급사업주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실시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의 협력을 원사업주에게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을 놓고도 “진정한 도급이라면 수급사업주가 자신의 근로자에 대한 교육․훈련․배치 등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합리적 사내하도급을 위한 조치’ 전반을 놓고는 “전반적으로 원․하청에게 불법파견 논란을 피해갈 수 있는 요령을 제시하고 있다”며 “특히 ‘생산품의 품질을 제고하고 통일성을 유지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 원사업주와 수급사업주가 사전에 협의한 경우에는 원사업주로부터 시설·부품 및 소모품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나 ‘작업의 특성상 불가피하거나 도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작업방법·작업량·작업속도 및 근로시간에 대하여 수급사업주에게 개선 또는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등의 내용은 기존 노동부․검찰의 지침이나 대법원 판례를 통해 불법파견의 요소로 인정된 것마저 ‘도급’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또 ‘사내하청 업체가 변경되는 경우 고용승계, 사내하청 업체가 다른 공정으로 계속 고용’과 같은 안을 두고는 “사내하청․청소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되어 있는 경우 이미 관철시키고 있는 관행들로 실효성이 없거나 기존관행으로 생색내기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윤 팀장은 “가이드라인은 실효성 여부에 대한 논란보다는 이것이 만연한 위장도급(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라는 점에 맞추어져야 한다”며 “파견법, 노동법을 지키고는 기업을 못하겠으니, 파견법의 규제는 다 없애고 파견법․노동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내하도급이라는 치외법권 영역을 보장해달라는 자본의 요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도 31일 성명서를 내고“식칼테러와 업체폐업이라는 가공할 원청 자본의 탄압에 맞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이 10년 가까이 이어진 결과, 업체가 교체될 경우 고용승계가 기본이 되어 있고 노조탄압을 위한 업체폐업은 원청의 부당노동행위가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때로는 목숨을 걸고 수천 명이 해고와 구속을 당해가며 싸운 성과를 두고 ‘사내하도급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내어놓는단 말이냐”고 규탄했다.
또 “2004년 12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1만명 전원을 불법파견으로 판정 한 전후로, 사내하청을 비롯한 간접고용이 ‘파견인가 도급인가’를 놓고 노동과 자본 사이에 거대한 전투가 벌어져왔다”며 “작년 7월 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 파견으로 판단한 판결이 나오자, 이제 자본 측은 전략을 수정하고 파견과 도급 사이에 ‘사내하도급’이라는 제3의 영역을 새롭게 설정하여 규제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라고 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