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복지센터, 노정협의기구 등 노동의제 논의도 ‘삐걱’

[기획] 박원순 식 ‘비정규직 대책’에 드리워진 그늘 (2)

서울시가 내놓은 비정규대책이 분명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박 시장의 친노동 시정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후보시절부터 진보진영의 통합 후보로, 특히 노동계와 소통을 해 왔던 만큼 아직 대화의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박 시장의 노동 정책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견제를 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지향이 박 시장의 지향과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양 측이 구상하는 노동정책의 수위 또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시장의 비정규대책을 두고, 노동계 내부에서는 ‘기대’와 ‘침묵’, 또는 ‘비판’ 등 다양한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대책을 비롯한 노동 현안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서울시의 줄다리역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 박원순 공식 홈페이지]

서울시 비정규직 정책, ‘기대’와 ‘실망’의 사이에서

정책 계획이 뚜렷하게 수립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이후 서울시가 전향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도 존재한다.

서울시는 오는 2월부터 7월까지 약 1억 원의 예산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할 인력의 규모와 집행 예산, 일정 등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연구용역을 통해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규모를 파악해 직접고용과 무기계약직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관계자는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이야기할 시기가 아니며, 현재 서울시와 협의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의 경우 “서울시가 실태조사를 철저하게 한다면, 문제제기할 이유가 없다”며 “인천시의 경우, 용역노동자까지 직고용하는 방침을 시행하고 있는데 서울시의 경우 인천시보다 정책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문제는 예산 확보가 필수적인 만큼, 지자체가 아닌 중앙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예산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서울시의 비정규직 대책은 정부와 여당의 공공부문 무기계약직화 정책보다는 높은 단계의 정책”이라며 “한나라당의 정책은 지속, 상시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에 대해 직무평가를 실시해 무기계약직화 하겠지만 것이며, 몇 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지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또한 서울시의 경우, 무기계약직화가 이뤄질 경우 단계적으로 호봉제 도입이나 ‘무기계약직’이라는 직제 폐지 등의 후속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견도 나오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서울시 비정규직 정책에 대한 의문과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서울시가 노동의제에 대한 원칙적인 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만큼,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눈가리고 아웅’ 식의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과 전혀 차별성이 없다”며 “비정규직 실태라도 먼저 조사해 이에 맞는 계획을 내놓아야 하는데, 느닷없이 서울시 비정규직의 1/10도 안 되는 인력을, 그것도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하겠다는 방침을 왜 내놓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적어도 박 시장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진정성이 있었다면, 최소한 민간위탁 노동자에 대한 정책 방향과 비전 제시가 있어야 했다”며 “또한 우선적으로 실태조사가 선행되고,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비정규직 차별시정에 대한 비전도 제시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복지센터, 노정협의기구 등 노동의제 논의도 ‘삐걱’

한편 서울시와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노동복지센터, 노동협의기구 등의 노동의제 논의에서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서울본부는 박 시장의 후보시절부터 지지입장을 표명하며, 후보 측에 △서울시 산하기관 해고노동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정협의기구 설치 △노동복지센터 건립 △서울시 산하기관에 노동조합 참여 등 13대 요구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서울시는 지난 11월 23일 첫 면담을 시작으로, 노조의 요구안을 포함한 노동 현안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 하지만 최근 양 측은 노조 측 요구안인 노정협의기구 설치와 노동복지센터 건립 등에서 이견차이를 보이며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경우, 지금까지 정규직화 투쟁의 한계로 작용했던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위해 ‘노동복지센터’ 건립을 핵심 사업으로 꼽고 있다. 25개 모든 구마다 노동복지센터를 건립해, 중소영세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서울시와 논의를 거듭하고 있는 서울본부는, 서울시가 지향하는 노동복지센터가 건립될 경우 예산낭비만 초래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재웅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애초 서울본부는 25개의 센터를 요구했지만, 서울시에서는 6~10개 정도의 센터건립을 추진하겠다고 한다”며 “심지어 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청에서 입찰을 받고 인사권을 가져가는 형태로 구상되고 있어, 자신들의 인맥으로 뽑힌 상근 운영자 임금 지원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예산낭비식 정책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본부장은 경총이 노동복지센터 건립과 관련한 비판성명을 내면서, 서울시가 입장을 선회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경총은 지난 12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노총이 노동복지센터를 주도하는 등 서울시가 노동계 편향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며 비난한 바 있다. 이 본부장은 “경총이 성명서 한 번 발표하자 서울시는 바로 꼬리를 내린 격”이라며 “차라리 노동센터라고 이름을 짓지 말고 ‘구청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노정협의기구 설치와 관련해서도 이견이 드러나고 있다. 사실상 서울본부와 박 시장 측은 당선 전부터 이에 대한 의견을 달리해 왔다. 당시 서울본부 측은 “선거대책본부의 민주당 측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만들어진 노사민정기구 참여를 요구했고, 노조 측은 그런 형태의 들러리 기구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밝힌바 있다.

이재웅 본부장은 “서울시는 여전히 노정협의회를 못한다는 입장이고, 이에 본부가 대책으로 노동특보 구성을 내놓았지만 그 마저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예상보다 너무 빨리 박원순 시장의 우경화된 정체성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정책을 위해 이제 싸움에 나서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 관계자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현재 2개의 근로자복지관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위탁하고 있는 것처럼, 자치구는 노동전문단체 등에 센터를 민간위탁할 예정이며 서울시는 운영비를 지급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노정협의기구 설치의 경우, 노사민정협의회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고민과 함께, 별도로 노정협의기구를 두는 것이 효율적인지 고민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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