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벌이다 수감됐던 철거민 김재호(57) 씨, 김대원(43) 씨가 연일 개발 광풍으로 허허벌판이 된 터를 찾았다. 용산참사 4주기를 앞두고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가 계획한 강제퇴거 현장순회단 버스에 몸을 실은 이들은 서울 중구 순화동, 고양시 덕이, 김포시 신곡지구를 돌아본 뒤 “막막하다”고 말했다.

“예전에 연대하면서 갔던 자리, 밥 먹던 자리가 생각났어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남아있는 세입자들 참 힘들겠구나 싶었습니다.”

이곳 주민들 역시 용산 재개발이 추진되던 비슷한 시기에 강제 철거로 몸살을 앓았다. 철거민이 살아남기 위해 연대하며 발버둥쳤던 철거촌은 언제 재개발 공사가 다시 시작될 지 모를 기약 없는 곳으로 변했다. 4년 전 강제 진압으로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일당 용산참사 현장도 펜스에 둘러싸인 주차장만 남았을 뿐이다.

빈터와 같이 마음도 황량했을까.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김재호, 김대원 씨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았잖아요”라고 말한다. 구속자가 사면되고, 철거민들이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아닌 평범한 장사꾼으로 기억되면 세상 더 바랄 게 없다는 이들을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문 옆에 설치된 농성촌에서 만났다.


길고 긴 시간...“그래도 우린 살았잖아요”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26일 ‘교정의 날’ 특별 사면자로 가석방된 이들은 사실 감옥서 더 빨리 나올 줄 알았다. 경찰을 죽였다는 혐의로 징역 4년형을 받은 두 사람이지만 감옥서 사귄 사람에게는 테러리스트로 안 보인 모양이다.

불합리한 재판이 온갖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유가족 및 시민사회단체의 울부짖음이 알려질 때마다 감옥에선 “이번엔 빵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마디씩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참사 구속자 사면을 요청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어도 옆에 동료들이 이제는 빵에서 나갈거야... 분위기가 좋다고, 계속 그렇게 말했어요.”


하지만 3년 9개월 동안 갇혔고, 함께 투쟁했던 동료는 아직 감옥에 있다. 갇혀 있는 것도 억울하지만 재호 씨는 특히 재판받을 때가 힘들었단다. 진실을 가리기 위한 재판은 오히려 누명을 뒤집어 쓰는 재판으로 변해갔다.

“아, 재판할 때마다 나가기 싫어가지고. 꼭 묶여 차 타고 가는 게 얼마나 싫었는데요. 들락날락 할 때마다 수갑 채우고, 밧줄 묶고... 재판 탁 끝나니까 안 나가서 진짜 편했어요. 조사 받을 때 ‘아니다’고 해도 어찌나 추궁하고 교묘하게 심리전으로 몰고가던지 말도 못해요. 우리같은 평범한 장사꾼들이 검경 조사 받아봤나?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화가 났지요.”

억울했다. 살려고 망루서 뛰어내렸는데, 사람을 죽인 걸로 되어 버렸다. 김재호 씨는 “감옥에 가둬버리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약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며 아픈 속을 혼자 달랬다고 했다. 대원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가족과 밖에서 싸우고 있는 유가족, 동료 때문에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았잖아요. 그게 유족에게 너무 죄스럽고... 항상 그 생각을 했어요. 밖에서는 용산참사 해결될 때까지 주장하고, 싸우는데. 그 생각하면 오히려 우린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힘들게 고생하는 걸 안에서 신문, TV로 보며 너무 미안했죠.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2009년 1월 20일 새벽, “뛰어!”

자연스럽게 2009년 1월 20일 새벽이 떠올랐다. 망루에 오르고 하루만에 남일당 건물 위로 경찰의 컨테이너가 내려왔다. 용역업체 직원들의 협박, 폭력에 지쳐 석 달 정도 버티면 뭔가 해결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서울 용산4구역서 눈에 띄고 높았던 5층짜리 건물에 올랐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직장생활 경험도 없고, 장사 말고 달리 해본 것도 없는 우리가 하루 아침에 쫓겨난거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건물에 오르는 것밖에 없었어요. 솔직히 용역깡패가 너무 드세서 우리가 맞기도 수없이 맞아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괴롭힘 당하지 않고 빨리 대화로 해결하려고 올라간 거죠.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바로 경찰이 투입된다고 하고, 여러 매체에서 우리를 테러리스트, 전문시위꾼으로 몰아갔죠. 그렇게 몰아가야지만 빨리 강제 진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원 씨가 그때를 회상하며 “서울에 있는 경찰병력이 다 온 것 같았다”고 하자 유가족 전재숙 씨가 “전국에 있는 경찰들이 다 몰려왔다”고 맞장구친다. 날이 밝아오면서 끝없이 에워싼 경찰병력만 보였다.

“경찰이 마이크 잡고 내려오라고 소리치며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고, ‘야... 느낌이 안 좋다’ 했죠. 우리는 전날 밤에도 잠을 자지 못했는데, 추운 겨울에 용역깡패가 막 물 뿌려대니까 피곤해서 쉬고 있었어요. 새벽에 막 밀어부쳐 우린 졸지에 당한 거죠. 정신없었어요.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소리지르고.”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경찰청장이 된 이튿날, 남일당에 대화는 없고, 강제 진압만 있었다.

“강제 진압이 우선이었나봐요. 협상을 주선해 줘야 하는데, 우리가 본때를 보여주기 위한 본보기였던 것 같아요. 김석기 경찰청장도 과잉충성하려고 했을 거야, 아마.”

망루 4층에 있던 대원 씨는 “경찰 컨테이너가 내려올 때, 이미 경찰이 옥상의 망루 주변을 다 점거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 “뛰어!” 하는 소리를 듣고 망루를 벗어나 옥상 위로 뛰어내렸다. 재호 씨는 건물을 에워싼 경찰들을 향해 “여기 안에 사람이 있다”고 소리쳤다.

“불은 분명 4층에서 났는데 3층에 있던 우리 때문이라며 사람을 죽인 걸로 몰아갔죠. 근데 불이 막 그렇게 났으면 우리는 뛰어내리지도 못했을 거예요 아마. 최루가스 때문에 밖에서 숨 쉬고 내다보고 있었는데 ‘뛰어!’ 그래서 뛰었죠. 그때가 불이 나기 직전이예요. 만약 불 난 걸 보고 뛰었으면 다 죽었을 거예요. 불을 안보고 뛰어내렸으니까 살은 거지. 모든 게 앞 뒤가 하나도 안 맞는 거예요.”

‘딸바보’ 재호 씨, 노모를 모신 대원 씨의 고백

‘딸바보’인 재호 씨는 지금 9살에 헤어져 13살이 된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우선이다. 43살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어렵게 얻은 귀한 외동딸은 아버지의 부재와 생계 때문에 집을 계속 비워야 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우울증을 겪기 시작했다. 재호 씨가 갓난쟁이 때부터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며 키운 부녀지간이었다.

“구속되고 7개월 지나면서 처가 아이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했어요. 집안에서 뭘 막 던지고, 깨고. 병원갔더니 바로 치료 받아야 한다고 했대요. 아이가 혼자 컴컴한 방에 앉아 우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엄마에게 보내기도 했대요. 그럼 엄마가 환장하는 거지요. 처는 그런 고통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했어요.”

재호씨는 아이와 만화 편지를 써 소통하기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는데, 금은방을 운영하면서 취미생활로 종종 초상화만 그려왔다. 만화로 아빠의 심경을 전했고, 엄마의 일을 도와주라고 당부했고, 자기 방 정리는 어떻게 하는지 그렸다. 외동딸에게 부친 만화 편지 400여 통은 ‘꽃피는 용산, 딸에게 보낸 편지’란 제목의 책으로 발간된다.

“귀한 딸이죠. 항상 자전거도 같이 타고, 한강으로 멀리 자전거 타고 다닐땐 제 자전거와 끈으로 묶어서 같이 타고. 아빠와의 관계가 끊어져 버리니까 아이가 충격을 받은 거죠. 출소하고, 내가 보냈던 만화 편지를 정리해 방에서 아이에게 읽어줬는데, 그때 진짜 많이 울었어요. 아빠의 심정을 아이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아빠의 사랑을 알았을까. 재호 씨는 아이가 차츰 회복되고 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아이에게 라면 끊이는 법도 가르쳐 주며 3년 9개월의 공백을 메워가고 있다.

“아직까지 산만하죠. 정리정돈도 못하고. 그동안 헤어져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잘못한 게 많은 것 같아요. 라면을 자기가 처음 끓였는데, 사진을 보내줬어요. 아빠랑 같이 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노모를 모시고 사는 대원 씨도 출소했을 때 기뻐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걱정하시지만 일단 출소한 것만으로도 안심이다. 투쟁할 때 항상 “몸조심”하라던 어머니였다.

“감옥에 있을 때, 어머니가 혼자 계시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어요. 그것 말고는 걸리는 게 없었죠. 전주교도소까지 면회와서 10분 보고 가시는데, 그 뒷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어쨌든, 어머님 생각하면 살면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제가 간 거잖아요. 교도소에 일단 안 가는 게 좋죠. 자식된 도리를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용산참사 해결되지 않으면 편안히 지낼 수 없어요”

재호 씨는 아내가 노래방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출소해도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혼자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 했던 아내다. 더 이상 장사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지만, 감옥에 있는 그로서는 힘껏 말리지 못했다. 얼마되지 않은 보상금으로 생계가 막막하지만 당장 할 일이 있다.

“용산참사가 해결되지 않으면 편안히 지낼 수 없어요. 개인적인 생활도 힘들 거예요. 막막하긴 하지만 개발 중단을 위해 노력할 겁니다.”

대원 씨도 바램이 있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평범한 장사꾼’이란 명칭을 되찾는 것이다. 재호 씨는 25년 가까이 용산4구역에서 ‘진보당’ 금은방을 운영했고, 대원 씨는 16년 동안 중국집 ‘공화춘’을 운영해 장사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용산참사 구속자 중 제일 먼저 출소한 이들이 이제 정부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구속자 석방이 제일 바라는 거예요. 사면이 되어야 억울하게 쓴 누명도 벗길 수 있으니까요. 신임은 안 가지만, 정부는 당장 구속자를 석방해야 합니다.”

“같은 생각이예요.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아예 귀를 닫아버리니까 문제죠. 대통령이 되고 나면 원래 자기가 한 말도 엎어버리죠. 시장에 가서 떡볶이 사 먹으며 포즈 취해도 그때 뿐이란 거 다 알죠.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외쳐야 하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