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에 나타난 퀴어 애즈 포크, 마포 레인보우 주민연대

[인터뷰] 마포구청 성소수자 플래카드 철거 항의 마레연 회원 ‘오김’

드라마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에는 바빌론이라는 공간이 등장한다. 게이들의 공동체. 바빌론은 술 마시고 춤추는 어두운 클럽이지만 소수자로 살아온 그들이 서로를 의지하거나 추억하고 때로는 탐닉하는 그들의 공동체다. 그들은 그곳에서 싸우고 사랑하고 살아간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친구사이, 레즈비언상담소. 한국사회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에게 척박한 땅이지만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어려운 상황에도 차곡차곡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비록 지금 다시 위기에 처했지만) 학생인권조례에는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려는 노력이 담겼다. 커밍아웃 이후 방송에서 퇴출됐던 배우는 얼마 전 인기 토크쇼에 출연,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토로하며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 사회가 여전히 호모포비아의 땅인 것은 분명하지만 유의미한 과정들이 쌓여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성애자들이 ‘동네’에 나타났다.

오랫동안 터부시돼온 동성애는 당당히 바깥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들이 모이는 술집이 어디에 있다더라, 어느 집의 누가 동성애자더라.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카더라’통신으로 전해졌고, 그들이 모여있다는 공간은 비밀의 장소인 것처럼 소문으로만 떠돌았다. 그러나 ‘우리 동네’에도 동성애자들이 살고 있음을, 같은 마을버스를 타고 같은 수퍼를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선언한 동성애자들이 있다. 마포 레인보우 주민연대. 마레연이다.

마레연은 인권운동단체가 아니다. 동성애자 당사자들의 모임인만큼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권익보호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어디까지나 본질은 어디에나 있는 지역주민 모임이다. 다만 가입조건은 동성애자이거나 혹은 그들의 당당한 삶을 응원하는 지지자이거나. (사실 따지고보면 부녀회나 조기축구회도 성별과 연령에 따른 가입조건을 두니, 특별히 다를 것도 없어 보인다)

마포에 사는 동성애자들이 모여 수다떨고 밥 먹던 마레연은 얼마전 비교적 큰(?) 사고를 쳤다. ‘여기 성소수자가 살고 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관할구청인 마포구청으로부터 제지를 당한 것. 마포구청은 마레연이 내건 현수막을 ‘청소년 유해 문구’라며 철거해버렸다. 마레연으로서는 우리 동네에 내가 살고 있다는 주장을 부정당한 셈이다. 마레연 회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마포구청 앞에선 매일같이 1인시위가 이뤄진다. 마레연 회원이거나 마레연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지지자들은 언론과 SNS를 타고 번진 마포구청의 만행(?)에 분개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1인시위는 어느새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마포구청 1인시위 [출처: 마레연]

마레연은 2011년 지방선거 당시, ‘마포 레인보우 유권자모임’이라는 성소수자 유권자모임에서 출발했다. 마포에 사는 성소수자들이 지방자치에 참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다. 지자체 선거가 끝나고 이들은 헤어지지 않고 그대로 지역주민모임으로 전환했다. 만나서 밥먹고 이야기하는. 동네에서 오며가며 지나치는 얼굴들, (놀거리 많은) 동네에서 놀러 가면 마주치는 사람들이었다.

1인생활 가구가 많은 지역적 특성과 주변에 대학가가 많다는 특징도 성소수자 주민연대가 자연스레 형성될 수 있는 배경이었다. 홍대주변에는 레즈비언 바도 많이 있다.

모임이 꾸려지고 한동안은 주말마다 ‘밥상모임’을 갖고 바자회를 여는 평온한 일상들이 이어졌다. 주변에 자리잡은 여성단체나 인권단체(마포에는 단체 사무실도 참 많다) 활동가들과도 안면을 익혔다. 작년에는 지역의 비혼여성들과 함께 ‘보트피플’이라는 총선 토크쇼도 열었다. 어려울 것도 괴로운 것도 없는 활동들이었다. 현수막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혐오가 더욱 무섭다

마포 민중의 집에서 만난 마레연 회원 오김은 “처음으로 지역민들과의 고리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일이 거부당했다”고 말한다. 오김은 “마포구청은 우리보고 너희끼리 그냥 조용히 살라는 것 아니겠냐”고 한다. 마포구청은 마레연의 현수막에서 ‘여기 성소수자들이 살고 있다’는 문구를 문제 삼았다.

마포구청에 항의하며 1인시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혹시나 그/녀들을 모로 흘겨보는 주민들이 있지는 않을까, 혐오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어 물었다. 그러나 오김은 그런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히려 혐오범죄 사례나 1인시위 과정에서 부닥치는 어려움에 대해 기자에게 말해줄게 없다는 점에 겸연쩍어 하기도 했다)

“오히려 성소수자라는 말의 의미를 몰라서 물어오는 주민들도 있고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이들도 있어요. 물론 싫어하는 주민들도 있겠지만 1인시위 한다고 혐오감을 드러내지는 않아요”

오김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최현숙 진보신당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에서도 활동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폭행이나 욕설같은 직접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는 혐오”에 대해 경계했다.

“지난 봄 남산에서 발생한 트랜스젠더 폭행사건이나 2011년에 발생한 종로의 호모포비아 폭행사건 같은 것들을 보면 특정한 공간이나 목표를 가지고 행해지는 직접적인 혐오범죄지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혐오범죄가 드러나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마포구청의 행위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혐오감이 더욱 큰 문제죠”

군대에서는 아직도 ‘계간’이란 반인권적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드라마에 동성애를 의미하는 듯한 장면이 나타나면 다음 날로 방송사 홈페이지는 작가와 감독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흘러넘친다. 얼마전 퀴어영화 ‘백야’를 찍은 이송희일 감독은 영화제작에서 가장 어려웠던 작업으로 ‘캐스팅’을 꼽았다. “우리 아들에게 게이 역할을 맡길 수 없다”는 배우의 부모님들과 “호모가 싫다”며 도망가는 배우들이 아마 우리사회에 아직도 만연한 성소수자, 동성애 혐오증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겠다.

  동성애 혐오범죄를 다룬 영화 '백야' [출처: 백야 공식 블로그]

마포구청은 마레연의 반발이 거세고 여론의 주목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꼼짝않는다. 오김은 마포구청을 “똥고집”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지적을 하는데도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마포구의 슬로건은 ‘더불어 사는 복지 마포’다.

동네 언니들 모여 수다떠는 모임

현수막 사건으로 언론에는 마레연이 마치 ‘인권단체’처럼 비춰졌지만 오김은 마레연은 ‘지역주민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연대에 열심인 구성원들도 많고 생태문제나 페미니즘에도 관심을 쏟는 이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정형화되지 않은 지역주민 모임”을 표방하고 있다.

어찌보면 최근 유행(?)하는 지역운동의 또다른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인터뷰가 이뤄진 곳도 ‘마포 민중의 집’이었다. 오김도 마레연의 활동이 지역운동에 대한 고민으로 진행될 수 있길 바란다는 의중을 보이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활동에 다양화가 이뤄지고 활동들의 성과가 생기고 역사가 쌓이며 공동체를 살피는데 관심과 고민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말.

마레연은 지역 내 문제인 홈플러스 입점반대 투쟁을 함께하거나 강정마을에 지지와 연대의 현수막을 보내기도 했다. “정형화된 운동단체”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사회적 연대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 오김의 말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만큼 마레연의 진도는 더디다. 현수막 사건이 발생하고 기자회견을 한 번 여는 것도 대응 방법을 결정하는 것도 회원들의 오랜 토론과 숙의가 있고서 결정됐다. 그러나 천천히 돌아서 가는 만큼 낙오자 없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마레연 현수막 도안


퀴어 애즈 포크는 ‘동성애자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사실 동성애자들의 마을은 없다. 마레연의 현수막처럼 이 길을 걷는 10명 중 1명은 성소수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바로 퀴어 애즈 포크다.

성소수자, LGBT는 대단한 인권 운동가들도 아니며 하물며 그들의 모임은 거창한 비밀조직도 아니다. 마을 다방에 모여 잡담하고 밥 먹는 동네 언니들. 마레연과 그들의 현수막은 사소해서 더욱 소중한 존재선언이다. 마포구가 정말 ‘더불어 사는 복지마포’가 되려면 그 동네 언니들을 유령취급해선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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