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바르 플라자, 출처: Micho, Unsplash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관계가 겉으로는 ‘정상화’된 듯 보이지만, 그 밑에는 뚜렷한 힘의 비대칭이 자리하고 있다. 주류 국제언론의 논평가들조차 분석의 출발점에서 미국이 델시 로드리게스(Delcy Rodríguez) 대통령 권한대행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는 비유를 꺼내며, 이는 사실상 차베스주의 운동 전체를 향한 압박을 뜻한다고 본다. 우고 차베스(Hugo Chávez)가 시작하고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가 이어온 이 운동은 대체로 로드리게스 뒤에 결집해 있다.

1월 3일 미국의 공격으로 100명 넘게 숨졌고,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Cilia Flores)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청원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정권교체나 국가 붕괴를 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헌법적 권력 이양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볼리바르 혁명을 떠받치는 강력한 풀뿌리 조직들도 건재하다.

차베스주의 지도부는 앞으로의 투쟁을 위한 후방기지로 국가를 보존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호세 A. 아메스티 리베라(José A. Amesty Rivera)는 《레수멘 라티노아메리카노(Resumen Latinoamericano)》에서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는 살아남는 것 자체가 저항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썼다. 따라서 핵심 질문은 베네수엘라가 양보했느냐가 아니라, 그 양보가 항복을 뜻하는지 아니면 극심한 압박 속에서 주권을 지키기 위한 전략인지를 묻는 데 있다.

평화의 외교

차베스주의 지도부는 미국과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피했다. 그런 충돌이 벌어졌다면 수만 명, 심지어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핵심 기반시설이 파괴되며, 국가가 의존하는 석유산업도 장기간 파괴적인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로드리게스가 옳은 일을 하지 않으면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아마 마두로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할 수 있을 만큼 역내에 막강한 미군 군사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워싱턴은 쿠바, 푸에르토리코, 온두라스,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아루바, 퀴라소에 군사기지와 시설 또는 군사적 접근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플로리다에도 수많은 군사시설을 두고 있다. 파나마와 가이아나에서도 군사적 접근권과 안보 협정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이 정당성도 합법성도 없는 군사공격을 베네수엘라에 가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의 의사결정에 강압적 압력을 행사해 왔다. 특히 석유, 금, 가스 등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천연자원을 둘러싼 압박이 두드러졌다. 이는 지금까지는 실패한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미국의 공격정책에서 핵심을 이룬다.

이런 강압적 조건에서 베네수엘라 지도부는 조기 충돌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결정들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카라카스에 대한 지배를 강요하려 하지만, 워싱턴은 여전히 베네수엘라 정부와 협상해야 한다. 이런 비대칭적 힘의 균형 속에서 차베스주의 지도부는 볼리바르식 평화외교를 통해 베네수엘라와 미국 사이의 역사적 모순을 관리해 왔다.

석유 ‘협정’

트럼프는 미국과 베네수엘라가 최근 체결한 석유 협정에서 이런 힘의 비대칭을 활용하고 있다. 이 협정 자체가 미국의 군사공격이 직접적으로 낳은 결과다.

비판자들은 이 ‘협정’을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협정은 베네수엘라가 어떤 양보를 했는지와 동시에 그 양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

협정 대상에는 오리노코 벨트(Orinoco Belt)의 신규 개발사업 8곳을 포함해 모두 17개 유전이 들어간다. 이 지역에는 확인매장량 650억 배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기간은 베네수엘라 법에 따라 25년이며, 트럼프가 주장한 100년이 아니다. 다만 갱신할 수 있다. 이 사업은 10년 동안 1,000억 달러의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으며, 기업들이 투자비용의 약 70%를 부담한다. 배럴당 유가를 65달러로 가정하면, 현재 유가는 100달러를 넘지만, 베네수엘라는 16%의 로열티와 34%의 소득세를 받아 생산·판매한 원유 1배럴당 약 19달러를 확보한다. 베네수엘라는 자국 석유산업에 대한 소유권과 주권을 유지한다.

가이아나가 최근 엑손모빌(ExxonMobil)과 체결한 협정과 비교하면 베네수엘라의 조건은 역내 기준을 크게 웃돈다. 가이아나는 로열티로 2%만 받고, 석유 컨소시엄이 비용의 75%를 회수한 뒤 남은 이윤을 엑손모빌과 50 대 50으로 나눈다.

베네수엘라에 훨씬 유리한 이번 석유협정은 2026년 1월 국회가 통과시킨 새 탄화수소법(Hydrocarbons Law)에 따라 운영된다. 이 법은 마두로 대통령 시절 이미 도입한 생산방식을 법제화했다. 새 법은 미국의 제재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석유 수출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투자재원을 동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셰브런(Chevron), 렙솔(Repsol), ENI, 셸(Shell), BP 등 주요 석유회사들과도 비슷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 석유회사들과의 기존 협정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제국주의 포위 관리하기

워싱턴의 강압은 베네수엘라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지도, 국내 정치체제를 붕괴시키지도 못했다. 1월 3일 사건 이후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을 비롯해 마두로의 2024년 재선을 인정하지 않았던 점점 더 많은 국가들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받거나 관계를 다시 회복했다. 브라질과 트리니다드토바고는 로드리게스를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했고, 칠레, 파라과이, 도미니카공화국은 관계 복원 또는 확대 쪽으로 움직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현 볼리바르 정부와 관계를 재개하면서 2019년부터 동결했던 약 49억 달러 규모의 특별인출권(SDR)과 준비자산 포지션에 대한 베네수엘라의 접근권을 복원했다.

로드리게스는 9월 23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워싱턴과의 관계를 극도로 신중하게 다루면서 제재가 베네수엘라의 발전에 미친 파괴적인 영향과 자유를 잠식한 효과를 강조했다. 베네수엘라 국회는 유엔총회에서 로드리게스가 걸어온 “어려운 외교 노선”을 옹호했으며, 전국 곳곳에서는 그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 비대칭적 ‘정상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말하기 어렵다. 차베스주의 지도부는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하고 있으며, 트럼프는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끌어내려 하고 있다. 친차베스 성향의 베네수엘라 매체 《미시온 베르다드(Misión Verdad)》는 로드리게스와 트럼프의 회담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이 회담은 지속적인 동맹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균형의 계기를 뜻한다. 이는 통제할 수 없는 혼란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워싱턴의] 비대칭적 강압과 [베네수엘라의] 전략적 적응이 교차하는 최소한의 게임 규칙을 세운 것이다.”

[출처] Venezuela’s Battle for Sovereignty Continues – CounterPunch.org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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